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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문자향

글씨

사라져가는 것들의 미세한 통증

by Binsom Lee


옅은 밑줄 위에 작은 새들이 옹기종기 앉아있는 듯
가지런히 쓴 글씨들을 읽던 때는 얼마나 좋았던가.
글씨가 그저 의미 위에 덧얹힌 문자들의 껍질일 뿐만이 아니라
사람의 표정과 기분이 함께 출렁이는 굽이였을 때는
얼마나 좋았던가.

사람마다 글씨가 다르다는 사실은
신기하고 아름다웠다. 마음 속으로 똑같은 모양의 글씨를
익혔을 텐데도 연필과 펜을 통해 흘러나오는 글씨는
저마다 달랐다. 남이 흉내낼 수 없는 자기 글씨가 있었다.
어떤 사람은 오목조목하고 어떤 사람은 서글서글하고
어떤 사람은 삐뚤빼뚤하면서도 힘차고 어떤 사람은
엉거주춤하면서도 웃음을 자아낸다. 어떤 사람은 소녀처럼
작고 귀여우며 어떤 사람은 여인처럼 미끈하고 세련되다.
또 어떤 사람은 퉁명스럽고 어떤 사람은 듬직하다.
글씨를 보면 사람됨됨이를 안다 할만큼 굽이굽이
인간의 체취를 물씬 풍기고 있지 않던가.





Leontine Reading, 1909.jpeg



우리가 기억하는 연애편지의 감동들은 많은 부분
글씨에 관한 추억이다. 나를 위해 정성껏 써내려간
오로지 나를 위한 문자들. 그 한 글자 한 글자가
가슴 속으로 안겨드는 듯 사랑스럽지 않았던가.
그녀의 수줍고 떨리는 마음같이 조심스러운
문자들이 행렬을 이루며 다가올 때 그것이 담은 내용이
어떤 내용이든 마음은 이미 뒤흔들릴 준비가
끝나있었다. 글씨들은 숨소리같았다. 종이를 눌렀을
필압을 점자처럼 더듬어 느껴보며 얼마나 야한
기분에 휩싸였던가. 하나의 사람이 문자에 녹아들어
그 문자가 다시 하나의 사람으로 번역되어오는
연애편지 한장의 공간은 어쩌면 사랑의 전 우주와
맞먹는 광활하고 생동감있는 공간이었다.

지금도 기억난다. 그 글씨 사이에 묻었던 볼펜의 먹뭉치들이
스친 종이에 약간 번졌던 자리, 말줄임표들이 제각기
다른 점을 이루며 점점이 찍혀나가던 모양새,
물음표의 아래에 찍혔어야할 점이 움푹한 자욱만 있어
마치 7자같이 보이던 인상, 나를 보고 "그대"라고
처음 썼던 날의 그 어색하고 부끄러운 글꼴, 혹은
다음장으로 넘어가는 자리에 그려져 있던 하트그림,
혹은 푸르른 이란 말을 푸르런 이라고 무심코 쓸 뻔 했다가
고친 흔적, 달빛이란 말을 돋을새기기 위해 그 글자만
붉은 펜으로 강조했던 자리, 이 모든 글씨들의 향연은
내 가슴에 사랑의 문신처럼 남아있다. 그날의 향기로운
분홍편지지들은 모두 사라졌지만 글씨들은 기억의
습자지 위에 아직도 머뭇거리며 미완의 연서를
적어내려가고 있다. 사랑은 글씨로 남는다.

우리가 어느 샌가 반쯤 잃어버린 것에
이 아름다운 글씨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우린 이 보배를 도둑맞는 지도
모르고 있었다. 내 글씨 대신 반듯하고 무표정한
글씨가 글쓰기를 대행한다. 추사 김정희는
문자향을 말했다. 글씨에 풍기는 향기라?
얼마나 글씨를 사랑했으면 글씨에서 돋아나는
향기를 느꼈으랴? 물론 옛 사람들이 쓴 글씨는
먹을 묻힌 것이었으니 먹의 깊고 독특한 향기가
왜 없었으랴? 하지만 추사가 말한 향기는 그것 만은
아니었으리라. 한 사람의 글씨씀씀이는 그의
몸과 마음과 삶의 씀씀이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리라. 그리하여 그것이 의미를 기표하는
껍질을 벗어나 스스로 향기를 내는 무엇이 되었을 때
그것이야 말로 진짜 글씨가 아니겠느냐고 생각한 것이리라.
그 글씨는 바로 인간의 육향(肉香)이며 내면의 담향(淡香)이기도
하리라. 우린 저 문자향을 내던져 버렸구나.
표정없는 쇳조각같은 글자굽이에 자신을 내맡기며
이제 기계같은 글쓰기를 하고 있구나. 이것이야 말로
편리를 위해 영혼을 팔아버린 타락이 아닌가.

글씨를 읽는 눈맛 또한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리의
살이를 풍성하게 했던 감미로운 질료였다.
한 사람의 살아온 내력과 습관이 묻어있을 뿐 아니라
글쓸 당시의 기분과 희망과 글쓰는 자세까지
거기에 묻어있었다. 급박하게 휘갈긴 글씨라면
어느 기차역 대기실이었는지 모른다. 왠지 뻣뻣하면서도
지쳐있는 듯한 씀씀이라면 여러번 썼다가 찢은 뒤
다시 정서한 글씨일 수도 있다. 처음에는
차분한 글씨로 걸어나가다 중반쯤에는 필획이 분방해지면서
마구 달음질치는 경우는 그 마음의 이동상황을 또렷이
보여준다. 그런 것들을 읽어가노라면 글씨는 숨결처럼
다가오는 속삭임이었다. 그 문자들을 대하는 시선은
저쪽 기분에 감염되고 그것에 따라 물결치고 있었다.
한 글자 한 글자 일필휘지로 써내려간 것이기에
거기엔 꾸밈없는 마음의 흐름이 드러났다. 글씨를
읽는 것은 내면의 정황을 읽어내는 것이었다.
한번 읽고 다시 읽어보면 그 글씨의 모양새는
다르게 느껴지고 그 글씨에 숨은 내용들도
전혀 다른 울림으로 다가오기도 하였다.

어느날 외숙모가 내게 보여준
외삼촌의 전사통지서는 누군가가 휘갈긴
열석자의 글씨였다. 외숙모의 평생은 그 열석자 위에서
얼마나 깊고 아득히 펄럭였을까. 슬픔도 기쁨도
그 열석자의 굽이에 모두 걸리는 느낌붙이였을 뿐이다.
아마도 수천번 읽었을 그 문자들은 외숙모의
마음 속에 돌에 새긴 문자보다 더 단단한
각인으로 몸서리쳤을 것이다.

아이들의 공책에 왜뚤삐뚤 적어놓은 글씨를 보며
새삼 놀란다. 녀석들의 글자가 옛날 나의 글씨를
닮아있는 것이다. 저 굽이의 비밀을 어디서 베껴왔을까.
내 글씨를 보지도 못했을 텐데? 글씨란 습관이 아니라
피에 섞인 무엇이었던가? 어쩌면 저렇게 쓰도록 되어있는
운명의 명령이 있단 말인가? 글씨가 과연 그런 깊은 복선 위에
새겨지는 것이었던가? 그러나 저 글씨 또한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이미 배우기 시작한 컴퓨터의 자판이
저 글씨들을 먹어버릴 것이다. 나처럼 말이다.

네모 칸칸이 못생긴 글씨들을 구겨넣고 있는 막내,
받아쓰기 공책 뒤쪽에 붉은 동그라미 갯수를 뽐내는 둘째,
짧은 글짓기에서 가령 <서울>이면 <나는 서울을 잘 모른다>는 식의
요령을 피우는 첫째.
그 모두가 어디선가 본 것 같은 풍경들이다.
갑자기 시골집으로 달려가 낡은 장롱 위에 얹혀있을
내 옛날 공책들을 꺼내보고 싶어진다.
한 시절, 한 시대, 한 존재의 이력서에
이토록 깊이 패이는 자국들을 쉽게
팽개쳐도 되는 건지, 문득 두렵다./빈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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