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처음 찾은 산은 덕유산이었다. 아버지와 함께했던 모든 산행이 소중한 추억이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어느 해 여름 덕유산에서 보낸 시간이 다른 어떤 순간보다 뚜렷하게 가슴에 새겨져 있다. 나란히 중봉에 올라 시원한 바람을 맞았을 때, 산행의 힘듦은 말끔히 씻기는 듯했고, 드넓은 덕유평전을 내려다보았을 때는, 세상 전부를 얻은 듯한 기분이었다. 하산 후 구천동 계곡에서 맛본 차고 싱싱한 송어회와 소주는 그와 함께한 시간을 더욱 소중하게 만들어주었다.
신부전증, 치매, 허리 디스크까지, 아버지는 오랜 병고 속에서 힘겨운 세월을 보냈다, 투병이 길어지면서 좋아하셨던 산행은커녕 가벼운 공원 산책마저 버거워했다. 활동량이 줄자 몸은 속절없이 야위었고, 잔병치레가 아버지의 일상을 집요하게 괴롭혔다. 급기야 폐렴까지 겹쳐 면역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아버지가 곡기를 끊었던 마지막 며칠, 우리 가족은 어렴풋이 마지막을 예감했다. 하지만, 그 고요했던 겨울날 아침, 그렇게 갑작스러운 적막한 이별을 맞이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마치 바위틈에 뿌리내린 소나무 같았다. 혼자 서 있기도 힘든 세상에서, 그 척박한 땅에 가족이라는 무게를 짊어지고 단단히 버텨내신 것이다. 오랜 농사일로 그의 등은 굽고 손은 거칠었지만, 가족을 향한 그의 손길은 더없이 따스하고 부드러웠다. 그가 내어준 그늘은 언제나 편안하고 시원한 안식처였다. 그런 분이 갑자기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슬픔과 회한을 삭일 곳이 필요했고, 그 순간 덕유산이 떠올랐다. 무작정 새벽길을 떠나 아무도 없는 등산로를 걸었다. 아버지와 함께 걸었던 그 길 어딘가에 그의 흔적이 있을 것 같았다. 동엽령에 오르자 매서운 추위와 바람에 눈물이 얼어붙어 눈을 깜빡일 때마다 따가웠다. 새로운 눈물이 얼음이 된 눈물을 녹이고 다시 얼어붙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마르지 않는 눈물처럼 나의 슬픔도 끝이 없었다.
먼동이 터오고 있었다. 이 아름다운 풍경을 더 이상 아버지와 함께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새로운 슬픔이 되었다. 그가 없는 세상인데도 여전히 태양은 떠오르고 새 하루가 시작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억울했다. 동엽령에서 덕유평전을 지나 중봉에 이르는 그 아름다운 길에서, 나는 하늘을 향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뭐가 그리 급해서 이토록 허망하게 내 아버지를 데려가셨냐고.
무거운 마음으로 중봉에 올라섰다. 그렇게 매섭게 휘몰아치던 바람이 잦아들었다. 아버지와 함께 서 있었던 그 자리, 겨울이었지만 우리가 함께 보았던 그 여름날의 푸른 모습이 겹쳤다. 부드러워진 바람은 마치 아버지가 나를 달래주시듯 속삭였다. “나는 때가 되어 간 것이다. 이제 슬픔을 거두고 어서 일상으로 돌아가라. 그것이 나의 바람이다.”
그 속삭임이 내 안에 맺힌 응어리를 다스릴 수 있게 해주었다. 마지막으로 낮고 길게 아버지를 한 번 더 불러본 후, 슬픔은 그곳에 내려놓고 소중한 추억을 지닌 채 일상으로 돌아섰다.
아버지가 그리울 때면 늘 덕유산에 오른다. 그때마다 나는 따뜻한 위로와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