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기암과 단풍의 '더티댄싱'

by 이창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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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천불동 계곡의 단풍>

내가 설악산에 처음 간 것은 가을이었다.

거칠고 우람한 기암괴석과 눈부시게 아름다운 단풍이 빚어낸 풍경을 본 순간, 대학교 1학년 때 보았던 영화 <더티 댄싱(Dirty Dancing)>이 떠올랐다. 스크린에 펼쳐진 격렬하고 관능적인 춤사위에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고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박동했던 기억이 되살아난 것이었다.


설악에서 만난 바위는 건장하고 단단한 청년 '조니(Johnny)'를, 붉고 노란 단풍은 그의 리드를 따라 공중으로 솟아오르는 '베이비(Baby)'의 열정적인 몸짓을 닮아 있었다. 두 주인공이 신분과 배경의 차이를 넘어서며 서로를 끌어안았던 것처럼, 설악의 거친 바위는 단풍이 더욱 화려해 보이도록 했고, 붉은 단풍은 바위를 더욱 강인하게 보이도록 했다. 이 극명한 대비가 빚어내는 눈부시고 역동적인 ‘조화(調和)’야말로 가을 설악의 본질이었다.


이러한 극적인 조화는 영화 주제곡인 '(I've Had) The Time of My Life'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거칠고 굵은 빌 메들리(Bill Medley)의 목소리와 청아한 제니퍼 원스(Jennifer Warnes)의 목소리가 어우러지듯, 설악산의 기암과 단풍은 상반된 매력으로 절정의 아름다움을 뽐냈다.


사진 3.jpg <영화 '더티댄싱'의 마지막 장면> (출처: Google Image)

발아래를 흐르는 계곡물은 옥빛으로 빛났고, 마치 클라이맥스 직전의 긴장감처럼 주변의 모든 색채를 선명하게 돋보이게 했다. 이 풍경 속에서 내딛는 발걸음은, 서툰 동작을 익히고 마침내 리프트를 성공시키는 춤의 과정과 닮아 있었다. 정상에 도달했을 때, 일출과 함께 눈앞에 펼쳐진 파노라마는, 조니가 “‘Nobody puts Baby in a corner(누구도 베이비를 구석에 몰아넣을 수 없어)”라고 외치며 그녀를 무대 중앙으로 이끌었을 때의 설렘과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주제곡의 가사, ’I've had the time of my life, No I never felt this way before(내 생애 최고의 순간을 가졌어, 전에는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이야)‘가 말해주듯, 그 순간 나는 절정의 순간을 온몸으로 만끽했다.


사진 4.jpg <설악산 공룡능선에서 만난 The Time of My Life>

설악산의 가을은 찰나에 불과하다. 곧 화려하고 격정적인 계절이 지나가고, 겨울의 고요함이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그 짧은 순간 동안 나는 가을 설악이 보여주는 정열적인 춤을 보았고, 그 압도적인 에너지 속에서 내가 가장 빛나는 순간에 서 있음을 깨달았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그 흥분이 잔상처럼 오래 남고 주제곡의 멜로디가 귓가에 맴도는 것처럼, 가을 설악의 풍경은 내 마음속에 영원한 '더티댄싱'으로 깊이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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