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산은 그 산이 가진 특징을 담은 고유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비록, 사람이 붙여준 이름이긴 하지만, 산은 그 이름을 닮아있다. 그중 경북 봉화의 청량산만큼 ‘맑고 시원한(淸凉)’이라는 의미와 완벽히 일치하는 산도 드물다. 이곳에 발을 들이는 순간, 폐부 깊숙이 들어오는 신선한 공기와 함께 마치 안구 정화가 되듯, 오랜 세월 동안 지각 변동이 만들어낸 봉우리들이 한 폭의 수묵화처럼 눈앞에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토록 빼어난 자연경관과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량산은 다른 유명 산들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져 있다. 나는 오히려 이 점 때문에 청량산이 ‘숨겨진 보석’처럼 느껴진다.
청량산의 역사적 가치는 깊고 묵직하다.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청량사’가 대표적인데, 열두 개의 바위 봉우리가 연꽃잎처럼 둘러싼 곳에 포근하게 들어앉아 있다. 또한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머물렀던 산성의 흔적과, 퇴계 이황 선생이 <청량산가>를 지으며 학문에 전념했던 ‘청량정사’ 등이 청량산 곳곳에 남아있다. 이곳은 단순히 경치가 좋은 산이 아니라, 옛 왕조의 아픔이 서려 있고, 불교와 유교 문화가 조화롭게 숨 쉬고 있는 소중한 역사의 현장이라 할 수 있다.
이 모든 역사는 청량산이 근원적으로 지닌 ‘맑고 시원한 기운’, 즉 ‘청량함’에서 시작되었다. 복잡하고 힘든 세상에서 벗어나 정신을 맑게 하고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는 곳이었기에, 옛 선조들은 이곳을 세속의 어려움을 피해 쉬어가는 쉼터이자 마음을 가다듬는 수련장으로 삼았다.
한때, 나에게도 그 청량함과 평안함이 절실했던 적이 있다. 당시, 회사는 내가 속했던 사업조직을 따로 떼 매각하려고 여러 차례 시도했는데, 번번이 무산되었다. 결국 회사는 사업을 접고 해당 조직은 해체하기로 했다. 그 힘든 과정에서 나뿐만 아니라 모든 팀원이 의욕을 잃고 방황했다. 함께 일하던 팀원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나 역시 새로운 조직으로 이동하게 되었는데, 마치 파산선고를 받고 길거리에 내던져진 기분이었다.
내가 청량산을 찾았을 때, 한편으로는 배신감, 다른 한편으로는 불안감이 복잡 미묘하게 얽히고설킨 마음이었다. 그런데, 청량산의 깎아지른 절벽과 깊은 골짜기를 따라 붉고 노란 단풍이 타오르는 모습을 보면서 머리가 맑아짐을 느꼈다. 아찔한 ‘하늘다리’에 서서 발아래로 넘실대는 단풍의 물결을 바라볼 때는 내가 마치 한 마리 새가 된 것 같았다.
아름다운 풍경 속을 걸어 청량사 ‘유리보전’ 앞에 서서 합장했을 때, 복잡하게 엉킨 실타래 같던 기분이 어느새 풀어졌다. 마치 겨우내 꽁꽁 얼었던 얼음이 봄 물살에 언제 녹았는지도 모르게 녹아버리는 것처럼, 어느덧 나의 심신은 청량산의 “청량감(淸凉感)’에 젖어 들면서, 서서히 맑아지고 있었다. 절벽 위에 우뚝 선 석탑 앞에 서면, 금탑봉의 웅장하면서도 인자하게 굽어보는 모습이 붉은 단풍과 어우려져 마치 부처님을 마주하고 선 것 같아 종교와 상관없이 마음이 편안해졌다. 우연히 찾은 청량산에서 맑고 깨끗한 기운을 받으니, 새로운 환경에 맞서 다시 두 다리에 핏대를 세우고 일어서고자 하는 의지도 생겼다.
청량산의 청량감은 아름다운 풍경과 시원한 바람 그 이상이다. 그것은 시대를 넘어 지친 이들의 마음을 씻어주고 다시 일어설 힘을 주는 변치 않는 위로다. 많은 이가 그러했듯, 나 역시 이곳에서 고단함을 털어내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할 수 있는 마음을 다졌다. 고요한 산이 건네는 위로와 맑은 기운은 오래도록 아름다운 여운으로 남아 나를 지켜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