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걷다

직지사와 해운사, 그리고 나를 찾아가는 이야기

by 이창근

이제는 실감한다. 가을이 왜 '갈'이라고 불릴 만큼 찰나의 계절인지. 제철 음식을 제대로 맛보려면 비싼 '시가(市價)'를 치러야 하듯, 짧아진 가을의 절정을 만끽하려면 '운(運)'을 걸어야 한다. 여유로운 주말, 화창한 날씨, 절정의 단풍이 삼박자로 맞아떨어지는 날은 그야말로 '기적'과도 같기 때문이다.

김천 황악산 ‘직지사’와 구미 금오산의 ‘해운사’를 찾았던 날이 바로 그런 기적 같은 날이었다. 평소 여행만 떠나면 비구름을 몰고 다녀 '날씨 요괴'라 불리는 나지만, 그날만큼은 동행인 중에 숨은 '날씨 요정'이라도 있었던 모양이다. 날씨는 적당히 맑았고 단풍은 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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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사의 가을은 분주함 속에서도 깊은 고요를 품고 있었다. 수능을 앞두고 기도를 올리는 신도들이 법당마다 가득했지만, 산사의 기운은 들뜨지 않았다. 오랜 세월을 머금은 경내는 화려한 단풍마저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듯 ‘여여(如如: 흔들리지 않는 평정의 상태를 일컫는 불가 용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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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단풍잎이 스님의 목탁 소리에 맞춰 가늘게 흔들렸다. 단풍나무 아래를 걷는 스님의 뒷모습은 정갈했고 발걸음은 가벼웠다. 문득 그 모습 위로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의 한 장면이 겹쳤다. '부장'이라는 타이틀과 자존심을 지키려 평생을 싸웠던 주인공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에게 "행복해라!"라고 말해주던 그 장면. 스님의 가벼운 발걸음을 보며 생각했다. 우리가 그토록 무겁게 짊어지고 있는 것은 삶의 무게일까, 아니면 놓지 못한 미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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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사의 고요한 가을이 우리 안의 집착을 돌아보게 하는 성찰의 울림이었다면, 구미 금오산 해운사의 가을은 그 성찰을 열정적인 해방감으로 표현하는 듯했다. 해운사 전체가 붉게 타오르는 듯 아름다웠다. 특히 대웅전 옆 계단을 따라 삼성각에 올라 내려다본 풍경은, 마치 절정의 색채가 더운 숨을 내뱉는 듯한 전율을 느끼게 했다. 사찰에서 이런 격정적인 감상을 가지는 것이 부끄러우면서도, 이곳의 스님들은 이 풍경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을지 궁금해졌다.


경내를 벗어나 도선굴로 오르는 길목, 한 어르신이 조용히 앉아 가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긴 세월을 지닌 사람만이 품을 수 있는 편안한 여유가 묻어났다. 맑은 빛이 나무 사이를 뚫고 내려와 그의 등을 따뜻하게 비추고 있었고, 발밑의 낙엽은 부드러운 카펫이 되어주었다.

그 모습은 흡사 드라마의 결말과 닮아 있었다. 드라마의 결말은 그 제목과는 정반대였다. 서울의 자가도 팔 수밖에 없었고, 대기업에서 밀려났으며, 더 이상 ‘부장’이라는 직함도 없다. 하지만, 주인공은 모든 것을 잃은 그 자리에서, 역설적이게도 이전에는 가지지 못했던 행복을 느끼며 더 이상 '김 부장'이 아닌 '김낙수'로 살아간다.







드라마는 전쟁터 같은 일상에서 소중한 것을 잃고 후회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주었고, 두 절집에서 만난 가을 풍경은 나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하는 고요와 따뜻함을 안겨주었다.

껍데기는 내려놓고, 오롯이 나 자신으로 살아야겠다. 이번 가을은 '시가'를 치르고도 충분히 맛볼만한, 나를 찾아가는 계절임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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