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게 가장 좋아하는 산이 어디냐고 물으면, 나는 서슴지 않고 지리산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왜냐고 다시 물으면 할 말이 없어진다. 지리산이 왜 좋은지 나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은 싱거운 사람이 되어 버리기도 하지만, 나는 굳이 그 이유를 정리하려 애쓰지 않는다. 좋아하는 이유를 하나둘 번호를 붙여 정리해 둔다면, 왠지 나중에 그 이유가 변할 것 같기 때문이다.
처음 지리산을 오른 건 고등학교 삼 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대학입학학력고사가 코앞이었지만, '다녀와서 열심히 하면 되지 뭐!'라는 생각이 나와 친구들을 지배했다. 서둘러 읍내 등산용품 가게에서 텐트와 코펠을 빌렸고, 헐렁한 체육복에 평소 신던 운동화 차림으로 백무동을 출발해 한신계곡 길을 올랐다.
우리 몸이 아무리 젊고 탄탄했어도, 산은 전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산행 경험도 없이 오른 터라 체력의 한계점도 금방 다가왔다. 한신계곡에서 세석평전을 오르는 도중, 친구 한 명의 종아리에 쥐가 나는 바람에 시간이 더 지체되었고, 해 질 무렵이 되어서야 겨우 세석평전에 다다랐다. 우리는 모두 땀범벅에 지칠 대로 지쳐있어서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할 상황이었다. 그래도 뭐가 그리 좋았는지, 서로를 보고 환하게 웃으며 무사히 도착했음을 축하했다. 지리산의 첫날밤은 깊어져 갔고, 우리의 이야기는 밤늦도록 계속되었다.
지리산 산행이 큰 힘이 됐는지, 나는 그해 여름과 가을을 지나며 공부에 전념했고 무난하게 대학교에 합격할 수 있었다. 대학교에 진학해서도 방학을 맞아 고향에 돌아오면 늘 지리산에 올랐다. 졸업을 앞두고는 취업 성공을 갈망하며 올랐고, 회사 생활을 시작하고는 지금의 아내인 당시 여자 친구와 함께 결혼을 소원하며 올랐다.
돌이켜보면, 나는 무언가 큰 일을 앞둘 때면 늘 지리산에 올랐고, 그때마다 지리산은 내 소망에 응답했다. 이쯤 되면, 지리산은 나에게 <알라딘과 요술램프>의 '지니(Genie)'와도 같은 존재다. 나는 굳이 지리산이 좋은 이유를 찾으려 하지 않는다. 그냥 그곳에 다녀오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다는, 어쩌면 미신 같은 믿음이 내 안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물론, ‘수고로움’이라는 대가는 치러야 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