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일어나 빵과 커피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네 식구가 캐리어 하나씩을 끌고 집에서 나섰다. 예상은 했지만 월요일 아침부터 공항에 사람이 그렇게 많을 줄이야. 탑승 3시간 전에 도착했기에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꼬불꼬불 이어진 긴 꼬리줄의 기다림 끝에 셀프체크인을 마쳤다. 모든 게 스마트하고 빠른 시스템은 그 많은 사람을 거뜬하게 통과시켰다. 역시 인천공항이 최고다를 외치지 않을 수 없다.
월요일 아침부터 많은 이용객으로 혼잡했지만 스마트한 시스템이 자랑스러운 인천 공항
드디어 후쿠오카로 향하는 오전 10시 30분 비행기에 올랐다. 이륙장엔 마치 출근 시간대에 차량들이 줄지어 서있듯 날아오를 비행기들이 줄을 잇는다. 지난 3년간 꼼짝없이 갇혀 지낸 한풀이 해소라도 하는 것 같다. 인천에서 후쿠오카까지는 지척이다. 현지 시각과 시차가 1분도 나지 않고 정확히 일치한다. 비행시간은 1시간이지만 출발에서 도착까지 1시간 30분이 걸린다. 12시 도착 예정이었던 비행기는 후쿠오카 상공을 20분이나 빙빙 돌았다. 결국 12시 20분에 착륙해 1시간 50분 만에 도착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후쿠오카
공항은 인산인해다. "빨간색은 빨간 줄로 파란색은 파란 줄로 가세요. 일행과 같이 통과하지 않으면 나중에 못 만날 수도 있습니다"를 확성기를 통해 한국어로 연신 외친다.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이용자가 너무 많아서인지 공항인터넷도 대여해 간 와이파이 도시락도 터지질 않는다. 결국 입국수속 간편하고 빠르게 하려고 미리 등록하고 간 비짓재팬도 무용지물이 됐다. 입국수속 화면과 바코드 캡처해 가지 않은 때늦은 후회를 한다. 입국 수속에만 2시간이 넘게 걸렸다. 한국에서 예약한 산큐패스를 공항에서 교환했다. 지치기도 했고 공항을 빠르게 빠져나가고 싶어 택시를 이용했다. 텐진에 있는 숙소까지 네 사람이 대중교통 이용하는 요금의 세 배 가까이 더 나왔다. 차가 많이 막힌 것도 아닌데 거의 30분이 걸렀다. 지하철을 타면 대략 40분 정도 소요되니 번화가에서 차가 많이 막혔다면 대중교통보다 택시가 더 오래 걸릴 수도 있다.
1인당 4,500엔에 구매한 2일짜리 산큐버스패스
숙소에 도착 체크인 하고 나니 오후 3시가 넘었다. 그사이 아이들은 현지인 맛집이라며 숙소 근처에 있는 라멘 전문집을 찾아냈다. 점심도 저녁도 아닌 그 어중간한 시간대에도 밖에서 대기줄을 섰다. 현지인 맛집이라지만 절반 이상이 한국인이다. 아이들과 함께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줄 서서 먹을 일은 없었을 테다. 영상 10도가 넘어가는 따뜻한 기온이라 한국에서 입고 간 옷을 제외하고 전부 얇은 옷들만 챙겨갔다. 그런데 날씨는 생각보다 쌀쌀했고 현지인들은 다들 겨울 복장이다.
우리나라 라면을 떠올리며 뜨끈한 국물을 기대했다. 따로 나온 면발은 쫄깃하고 맛도 좋았다. 하지만 뜨거운 게 아닌 따뜻한 정도의 국물에 차가운 면발을 담가 먹으니 국물은 금방 미지근해졌다. 테이블에 놓여 있던 마우병의 따뜻한 육수를 연신 부어도 소용이 없다. 그 유명하다는 일본 라멘은 한 번 맛본 걸로 충분 다시 찾을 일 없겠다.
텐진 숙소 주변 현지인 맛집의 매운맛과 보통맛의 일본 라멘
일단 배고픔은 해결이 되었지만 너무 춥다. 다시 숙소로 돌아가 한국에서 출발할 때 입었던 겨울옷으로 갈아입었다. 이번 여행은 둘째 날 벳푸 다녀오는 일정 외에는 특별한 계획 없이 후쿠오카 주변을 느긋하게 걸어 다니며 즐기기로 했다.
늦은 오후 숙소에서 나와 슬슬 걸어서 캐널시티로 향했다. 캐널시티는 대형 쇼핑몰 놀이 시설 극장 호텔 등 화려하고 다채로운 색상과 모양의 건물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캐널(운하)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건물 중앙에 운하가 흐르고 분수가 길게 이어진다. 매시간 정시에 분수쇼도 펼쳐진다. 어둠이 내리자 건축물 조명과 분수쇼 빛이 어우러져 분위기는 한층 화려하게 빛난다. 서울의 명동이라 할 수 있는 텐진은 회색도시 일본이라는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풍경이다. 캐널 시티에서 느긋하게 분수쇼도 구경하고 쇼핑도 즐겼다.
매시간 정시에 분수쇼가 펼쳐지는 캐널시티
숙소로 돌아오는 길 캐널시티 주변에 포장마차들이 줄지어 서있다. 포장마차 안팎으로 북적이는 사람들 거리 식당(맛집) 앞 길게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 대부분이 한국인이다. 포장마차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었지만 그냥 패스했다.
캐널시티 주변에 있는 포장마차들
거리 구경하며 걷다가 어느 꼬치구이집 앞에서 발길을 멈췄다. 안으로 들어서니 한국인은 우리 가족밖에 없다. 일단 그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허름한 식당, 퇴근 후 한 잔 하려는 일본인 직장인들이 대부분이다. 그 흔한 한국어 메뉴판도 없다. 후쿠오카는 워낙 한국인 관광객이 많다 보니 어딜 가나 대부분 한국어 메뉴판을 내놓는다. 남편과 나는 일본어 소통이 가능하니 특별히 문제는 없다. 현지인처럼 즐겨보기 딱 좋은 분위기다. 언어가 통한다는 건 여행에서 또 다른 즐거움을 안겨주기도 한다. 생맥주에 다양한 꼬치구이 그리고 군만두 맛도 좋았다. 가격 또한 저렴했다. 하지만 뭐든 속도전에 익숙한 우리는 주문 후 긴 기다림의 시간이 답답하기만 했다. 기분 좋았던 분위기와 맛으로 선명했던 색상이 살짝 흐려졌던 이유. 그렇게 후쿠오카에서의 첫날이 흐르고 있었다.
주문한 메뉴가 나오기전 술과 함께 알아서 나오는 양배추 셀러드(800엔)는 한국처럼 공짜가 아니다. 계산할 때 함께 청구되는데 일종의 자리세라 생각하면 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