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짓는 공사가 끝이 아니었다
창고 짓기로 이어진 공사
공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집을 다 짓고 나니 시골이라 창고 없이는 생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집 짓는 공사가 끝나자마자 시작된 창고 작업은 벌써 3주 차에 들어섰다. 주차장과 창고 외부를 거의 다 마무리하고 나니 집보다 규모가 더 크다. 게다가 먼 친척뻘 되는 작업자는 꼼꼼하기 이를 데 없다. 그만큼 공사기간이 길어지고 있다.
먼 친척인 그는 결혼 후 서울에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사업적으로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 창고 공사를 아무한테 맡겨서 제대로 할리 없다며 본인이 직접 와서 해주겠다고 했다. 경상도에서 강원도까지 와야 하니 너무 먼 거리라고 말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유는 하나다. 젊은 시절 시골에서 서울로 상경해 홀로 힘들게 생활할 때 많이 도와준 내 친정어머니의 은덕에 보답하겠다였다. 몇십 년이 지난 일이다. 하늘나라로 떠나신 지 오래된 어머니가 베푼 은혜를 잊지 않고 자식인 내게 돌려주겠다는 것이다. 까맣게 잊을 만큼 오랜 세월이 흘렀건만 은혜를 잊지 않음도, 자식인 내게 다시 되돌려 주려는 생각도 마음 따스한 울림으로 전해졌다.
먼 곳에서 와서 작업을 하니 공사기간 내내 숙식제공을 해야 했다. 하필 장마가 끝나고 찜통더위가 한창일 때 공사가 시작됐다. 졸지에 식구는 4~5명이 되었다. 무더위에 매번 다른 종류로 하루 세끼 식사에 간식 두세 번 준비하는 게 내겐 너무 난감하고 벅찬 노동이었다. 동네에 식당도 없으니 직접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피로가 누적된 탓도 있겠지만 결국 몸이 신호를 보냈다. 온몸이 가려워 밤새 잠을 잘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피부과에 갔더니 과로와 햇빛에 많이 노출된 게 원인이란다. 주사 맞고 약을 복용하면 진정되겠지만 무리하면 또다시 반복될 수밖에 없단다. 창고 공사가 시작된 후부터는 밭에 나가 일할 시간도 없었다. 반찬 하려고 잠깐씩 나가 채소류 조금씩 수확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런데도 약을 중단하면 또다시 증상이 나타나니 몸이 한계에 도달한 듯하다. 너무 지쳤고 모든 걸 뒤로하고 멀리 떠나고 싶은 심정이었다.
꿈꾸던 전원생활이 나처럼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한다면 누가 시도를 하겠는가. 순조롭게 잘 적응하는 사람도 있을 테니 내가 너무 단순하게 생각한 무지의 결과가 아닌가 싶다. 그래도 버티고 있는 건 이곳의 맑은 공기와 산세다. 주말에 도시로 돌아가 하루이틀 지내다 보면 무더위를 견디기 힘들다. 밤낮으로 온종일 에어컨 켜놓고 지내다 보면 머리가 띵하다. 그러다가 이곳으로 돌아오면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자연 바람에 에어컨이 필요 없었다.
집 짓고 창고 공사하다 보니 어느덧 계절이 두 번 바뀌었다. 바람의 결이 달라졌다. 요 며칠 서늘함이 가을로 들어서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 맑은 공기만으로도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받은 기분이 든다. 그것으로 위안 삼는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목적지에 도달해 내가 꿈꾸던 여유로운 일상에 이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