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독대 빈항아리 채우기

항아리 하나를 고추장으로 채우다

by 바람의 영혼

시골살이를 준비하며 저축하듯 하나하나 사 모은 게 있다. 지금 앞마당 장독대에 줄지어선 항아리들이다. 당연히 속이 비어 있다. 여행 다니며 시골 마을에서 장독대를 보면 참으로 정겹게 느껴졌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저 항아리 안엔 무엇인가 다 채워져 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물론 된장, 고추장, 간장 등 장류가 기본으로 채워져 있었으리라.

항아리를 사 모은 건 장독대를 만들고 싶기도 했지만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에 살게 됐으니 그동안 여기저기서 사 먹던 장류를 직접 담가 봐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에 취재 다니며 장 담는 과정을 한 두 번 지켜본 게 전부다. 그러다 보니 어디서 누구에게 배워야 하나 고민도 되었다. 제대로 배우고 맛도 물론 있어야 하니까. 그러다가 굳이 멀리서 찾을 필요 없이 친정 엄마의 손맛을 물려받은 언니가 생각났다. 언니는 서울에 살면서도 된장, 고추장을 직접 담가 먹었다. 돌아가신 친정 엄마는 음식 솜씨가 좋았다. 종갓집 맏며느리였으니 당연히 장류도 직접 담가 드셨다. 그 솜씨를 그대로 물려받은 게 언니였다. 가끔 엄마가 해주었던 음식이 생각나면 언니에게 먹고 싶다고 해서 만들어주곤 했다. 그런 언니도 이제는 나이가 들어가니 부탁하기도 쉽지 않다.

그래도 전통 된장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장맛에 욕심이 생겼다. 언니한테 한 번씩만 가르쳐 주면 레시피를 만들어 다음부터는 직접 만들겠다고 했다.


장류는 추울 때 담가야 한다며 며칠 전 언니가 다녀갔다. 이번엔 고추장을 담갔다.

전날 엿기름 풀어 담가두었다가 물양 조절하며 체에 걸러 찹쌀가루 넣고 섞어서 하룻밤 삭혔다. 다음날 새벽 가마솥에 그 물을 끓였다. 끓어오를 때 소금과 매실 진액을 넣고 물이 졸아들 때까지 끓여 주었다. 끓인 물을 식혀서 따듯할 정도가 되었을 때 메줏가루 고춧가루 순으로 넣고 저어주었다. 나무 주걱으로 저어주는 과정이 힘이 들어 이건 남편이 했다. 마지막으로 소금으로 약간 간간할 정도로 간을 맞추고 소주 한 병을 부어 잘 저어준다. 이 상태로 다시 하루 정도 두었다가 항아리에 담으면 된다.

항아리 뚜껑 대신 투명유리 뚜껑으로 덮어 3~4개월이 지난 뒤 숙성이 되면 항아리 뚜껑으로 교체해 덮어준다. 이렇게 고추장 담기가 끝났다. 언니는 고추장 담기는 쉽고 간단하다지만 처음 만들어본 내게는 복잡하고 어렵기만 했다. 열심히 사진 찍고 메모해 두었으니 내년에는 혼자서 해볼 생각이다.

전날 저녁에 시작해 이튿날 새벽부터 부지런히 서둘렀더니 고추장 담기는 오전에 끝이 났다. 집에서 강릉이 멀지 않으니 바닷가 산책도 하고 주문진 수산시장 들러 횟감도 떠오자며 길을 나섰다. 수산시장 갈 때마다 들렀던 골목식당 맛집에서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건어물 판매 하는 곳에서 다시마 북어포 등 쇼핑을 먼저 했다. 이어지는 수산물 시장에서 회를 떠 아이스박스에 담아 차에 싣고 소돌항으로 향했다. 언니가 오기 전 며칠 내내 아침 기온이 영하 9~10도로 떨어지더니 이날은 영상의 포근한 날씨에 햇살도 쨍했다. 바닷가를 거닐자니 덥기까지 했다.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았지만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다. 공사로 전에는 들어갈 수 없었던 아들바위 뒤쪽까지 가서 큰 바위에 앉아 푸른 동해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바다멍에 취했다.

시골로 이사오니 가까운 주변 여행지들이 있어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장점도 있다. 그나마 언니한테 힘들게 일만 하지 않고 짧은 여행이라도 즐기고 갈 수 있게 해 주니 조금은 미안함을 덜 수 있어 좋았다. 다녀와 아침 일찍 담가 놨으니 오늘 넣어도 되겠다며 저녁 무렵 고추장을 항아리에 옮겨 담았다. 고추장 맛은 좋았고 항아리를 바라보니 뿌듯하고 부자 된 기분이다. 하나는 간수 뺀 소금, 하나는 고추장이 들어 있다. 내년 2월에 된장을 담그면 간장까지 2~3개의 항아리가 또 채워질 터이다. 그렇게 하나하나 알찬 항아리로 줄을 선 실속 있는 장독대로 만들어 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