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일의 복리
저의 학창 시절에는 꿈이라는 단어가 낯설었습니다. 무엇이 되고 싶은지 깊이 고민하지 않았고, 그저 적당한 성적에 맞춰 엄마가 권한 학과에 원서를 넣었습니다. 선택이라기보다는 흐름에 가까운 진학이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직장 생활은 생각보다 거칠었습니다. 온실 속에서 이론으로만 그려왔던 영양사의 현실은, 너무 바빠 제 밥 한 끼 챙기지 못하는 하루의 연속이었고, 차가운 워크인 냉동고 안에서 몰래 눈물을 훔치는 시간이었습니다.
식단을 짜는 일이 전부일 거라 믿었지만, 실제로 그 일은 전체 업무의 일부에 불과했습니다. 조리원을 관리하고, 급여와 예산을 맞추고, 결산과 고객사를 책임지는 일들까지 하루는 늘 모자랐습니다. 특히 사람을 관리하는 일은, 스물네 살의 저에게 감당하기엔 너무 무거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마음속에 사직서를 접어 두고 살았습니다.
오늘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꺼내게 될 것처럼.
그 시간이 어느덧 10년 가까이 흘렀습니다. 재수학원에서 아이들에게 밥을 해주며 문득 부러워졌던 건, 아이들의 성적이 아니라 꿈을 향해 달리는 모습이었습니다. 저렇게 고민해 볼 시간조차 없이 어른이 되어버린 제 자신이, 조금은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조금 더 일찍, 적성에 맞는 길을 찾았다면 더 빠를 수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버티며 흘려보낸 10년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이 일이 낯설지 않았고, 손에 익었고, 누군가에게는 제가 ‘선배’가 되어 있었습니다. 버티다 보니 어느새 고연차라는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문득 “어떤 일이든 10년을 하면 전문가가 된다”는 말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아직 자수성가를 이룬 것도 아니고, 인생의 대박을 맞은 것도 아니지만 버틴 시간만큼은 제 안에 차곡차곡 쌓였습니다. 급여가 복리처럼 조금씩 불어나듯, 저 역시 조용히 성장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