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고도 신비한

꽃이 꽃이라서 아름다운 것 처럼, 당신도 그래요.

by 주황불

요즘 심리상담을 받고 있는데 만족스럽다. 좀 더 디테일하게 말하면 상담이 좋다기보다는 사람이 좋은 것 같다. 사람을 치료하는 건 상담이 아니라 사람이 아닌가 싶다. 그냥 내 이야기를 솔직하게 말해도 된다는 것이 좋고, 누군가 나를 판단하지 않고 집중해서 들어준다는 것이 좋다. 우리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해결책을 주는 것에 몰두할 때가 많지만, 어쩌면 제일 중요한 것은 그냥 들어주는 것 같다. 그리고 더 솔직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상담에서 기법이나 목표를 논하는 것이 쓸데없다던 한 교수님의 의견에 동의하는 편이다. 기법이나 목표는 상담을 잘 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상담사의 불안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람과 사람이 자신의 날것을 보여줄 수 있는 관계가 된다면 그것이 치료가 아닌가 싶다.

우리는 평생 나를 이해해 줄 사람을 찾으며 세상을 살아가는 듯하다. 유아기에 느꼈던 조건 없는 사랑을 다시 찾기 위한 여정인 것 같다.(아니면 유아기에 느끼지 못했던 사랑을 받기 위한 것일지도.) 아기가 울 때 엄마는 “아이구 그랬어~”라고 말하며 아기를 달래준다. 아기가 우는 이유가 합당하고 합당하지 않고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아기의 울음 자체가 이유가 되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당연하게 사랑을 받아왔다. 밥을 잘 먹으면, 환한 웃음을 보이면, 심지어 대변을 보는 것도 칭찬과 사랑을 받을 이유로 충분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더 당연하지 않은 것을 할 때에만 사랑이 주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 시험을 잘 보거나, 좋은 직장에 들어갔을 때, 남들보다 돈을 많이 벌 때. 우리는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들을 만들어간다. 하지만 어쩌면 사랑은 조건 없이 주어지는 것이기에 더 숭고한 것 같다(하나님의 사랑 또한). 우리가 무언가에 열심히 노력하는 이유는 내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되찾기 위한 노력일지 모르겠다. 어쩌면 그것은 누군가가 나에게 지어준 짐인지도 모른 채 지고 있는 사랑에 대한 이유들이다.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있는 삶. 그리고 피해자 역시도 그 짐을 너무 당연스럽게 여겨서 누군가에게 다시 가해자가 되어 버리는. 피해자만 존재하는 비극을 끝내기 위해 내가 먼저 노력해 볼까 한다.

제일 놀라운 것은 내가 지금 무언가 성취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나 자체가 아닌가. 내가 밥을 먹고, 소화 시키고, 에너지를 만들고, 걷고, 느끼고, 생각하고, 대화하고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가. 우리는 중요하지 않은 것을 얻기 위해 더 중요한 것을 잃고는 한다. 이미 나 자체로 놀랍고 신비로운데 더 이상 무엇을 위해 노력한단 말인가. 사랑은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임을 늘 기억하자. 당연하게 주어졌다고 해서 절대 가치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자. 부가적인 것을 얻기 위해 당연한 신비를 잃지 말자. 사랑받기 위해 필요한 이유들을 하나씩 지워 나가자. 그리고 조건 없는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자. 원한다면 나를 솔직하게 보여줄 수 있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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