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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땅 Apr 30. 2021

알아가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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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 대학원 재학 당시, 바스피아(BASPIA)라고 하는 한 작은 신생 NGO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개발에 있어 인권에 기반한 접근(Human Rights-Based Approach to Development: RBA)이란 걸 처음 접했다. 개발협력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지만 3개월간 RBA의 국내 도입 및 정착을 위해 월드비전, 굿네이버스, 기아대책, 지구촌 공생회 등 국내 여러 유명 단체들의 실무자들이 참여하는 워크숍과 스터디를 지원하고 RBA 매뉴얼 발간을 위한 번역 작업 등에도 참여하며 RBA의 매력에 푹 빠져 살았다. 


그리고 이어진 KOICA (대학로 본부 시절) 인턴 마지막 날에는 KOICA 직원들을 앞에 두고 "Mainstreaming RBA into KOICA's development works"란 제목의 담대한(?) 발표까지 했던 걸 보면, RBA란게 내 인생에 적잖이 영향을 끼쳤던 것 같은데... 


얼마 전 사무실에서 직원들과 UNDP에서 새롭게 도입한 사회환경적 기준 (Social and Environmental Standards: SES) 관련 스터디를 하며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UNDP에서 오래 일한 한 인터내셔널 직원에 따르면, 인권이니 RBA이니 하는 걸 지난 10여 년간 말로는 많이 떠든 것 같은데 실제로는 인권을 어떻게 프로그램이나 프로젝트에 주류화할 것인가에 대한 기준이나 도구가 그간 없었고 금번 도입된 SES가 마침내 그걸 가능하게 해주었다고 한다. 


UNDP를 비롯한 여러 UN 기관들에서 RBA를 이미 주류화했다고 분명 8년 전에 배운 것 같은데, 실제로 이 분들은 한 게 없단다.


아울러 SES를 마련하게 된 동기 자체는 순전히 UNDP가 세계은행(WB)이나 GEF 등의 국제금융기구(international financial institutions)로부터 자금(money) 지원을 받기 위함이었지만, 이로 인해 프로젝트 형성이나 프로그래밍 과정에서 사회, 환경적 위험에 대한 스크리닝이 강화될 것이고, 혹시나 있을지 모를 피해에 대해서도 명확한 Stakeholder Response Mechanism (SRM: 이해관계자 대응 체계)이 확립되었으니 긍정적인 발전은 맞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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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의 산림(forest cover)은 1973년 전체 면적의 72.11%에서 2009년 60.2%로 줄어든데 이어, 2014년에는 47.7%까지 줄어들면서 사상 처음 비산림 지표면적(48.4%)보다 적어지는 수난을 겪고 있다. 


이 나라 정치 엘리트들의 뒷주머니와 긴밀히 연계돼 1970년대부터 자행되기 시작한 벌목은, 2002년 산림법(Foresty Law), 2008년 보호구역법(Protected Area Law) 제정, 그리고 2010년 국가산림프로그램(National Forest Programme) 2010-2029 수립 등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토지양허(Economic Land Concession: ELC) 등의 또 다른 제도를 통해 더욱더 가속화되는 양상이며, 이는 생태계 파괴, 토지황폐화(land degradation) 등으로 이어져 자연자원에 의존해 살아가는 절대 다수 빈곤층과 농민들의 삶을 더욱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캄보디아 환경부를 주축으로 여러 긍정적인 신호들이 감지되고 있는데, 첫 번째가 바로 ELC 양허기간을 최장 99년에서 50년으로 줄이기로 한 정부의 최근 결정이다. 숲이 사라지는데 줄어든 49년의 시간이 어떤 차이를 만들 수 있을지 의심스럽지만, 그간 양허된 토지의 지속가능한 개발이 명시된 계약서를 무시해온 기업들과 이를 암묵적으로 묵인해 온 정부 간의 밀월관계도 곧 종식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게 한다. 


둘째는 환경부가 UNDP 사무소의 지원을 통해 추진하고 있는 환경부 현대화(modernization) 사업인데, 여기에는 1) 최근의 환경적 이슈와 도전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환경부의 조직 개편, 2) 기후변화, 녹색성장, 생물다양성 등의 이슈를 총괄하는 국가지속가능발전위원회(National Committee for Sustainable Development: NCSD)의 설치, 3) 환경영향평가를 포함한 환경법(Environment Code)의 제정, 4) 국가 환경전략 및 행동계획(National Environment Strategy and Action Plan) 수립 등이 포함된다.  


UNDP 캄보디아 사무소에선 동 사업의 추진을 위한 resource mobilization 차원에서 여러 개발협력 파트너들에 협력을 요청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USAID와 ADB 등이 참여키로 하였다. CPS 상의 3대 중점 지원분야는 아니지만, 한국도 어떤 식으로든 함께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아쉽다.


개혁의 핵심은 캄보디아 자연자원 관리(natural resources management) 및 환경 보호 등에 있어 컨트롤타워를 환경부로 단일화하여 체계적이고 전반적인 관리를 해나가겠다는 것. 이는 그동안 보호구역이나 ELC의 지정/관리 등에 있어 권한이 여러 부처(특히, 농업산림수산부)로 파편화돼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대응을 할 수 없었다는 반성에 기인한 것인데, 한편으론 2000년대 초반 여러 개발협력 파트너(development partners)들의 애드보커시 활동을 통해 제도적 역량 강화로 이어졌던 산림법이나 보호구역법 등이 유명무실화된 사례처럼 실패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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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기회에 참석한 캄보디아 산림분야 개발협력 파트너(Development Partners: DP) 미팅.

 

산림은 캄보디아 내 여러 개발협력 분야 중에서도 최근 가장 핫(?)한 분야이다. 이유는 최근 여러 독립기관들이 잇따라 캄보디아의 산림 황폐화 속도가 세계에서 제일 빠르고 산림 면적도 급속하게 줄어들고 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캄보디아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고 비판에는 귀를 닫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캄보디아 정부의 산림면적 목표치는 60%로 이 곳 산림청은 지난 2010년부터 현 산림면적이 57%로 변함없다는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위성 등을 통해 과학적으로 확인된 진짜 면적은 47% 밖에 되지 않는다. 매번 산림을 어떻게 정의하느냐, 조사방법은 뭐냐는 둥 생뚱맞은 소리만 하고, 최근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경제적 토지 양허(ELC) 지역에서 산림을 다 베어낸 후 재배하는 주요 작물 중 하나인 고무를 산림 면적에 포함하는 꼼수까지 부리고 있다.

 

역시나 기후변화 DP 미팅과 마찬가지로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개최되는 금번 DP 미팅에서도, 여러 파트너 기관들과 산림청 대표는 각을 세운다. 날을 세워 공격하는 USAID에 맞서 허허실실 웃고만 있는 산림청 대표를 보고 있으면 자꾸만 Mirage politics가 생각이 난다.


“The result was mirage politics in its purest form: a convergence of interests between a government increasingly willing to offer symbolic gestures of reform, and a donor "community" increasingly willing to accept them.” Quoted from the book, Hun Sen's Cambodia.

 

산림 분야의 급격한 후퇴에도 불구하고 UNDP를 비롯한 개발협력 파트너들은 여전히 엄청나게 큰돈을 투입하고 있다. 2015년 National Forest Program (NFP) 예산만 26백만 불로, 29개 기구 및 펀딩 소스가 참여하고 있다. 한국도 한아세안산림협정사무국(AFOCO), ASEAN-ROK, 산림청, 농림축산식품부 등의 각기 다른 소스를 통해 약 백만 불을 기여하고 있는데, Technical Working Group on Forestry Reform이나 DP 미팅에 한국 정부를 대표해 참가하는 사람은 없다는 거...

 

DP 미팅의 Chair를 맡고 있는 EU 친구는 한국 대표를 찾으려고 대사관에 서신도 보내고 여러 방면으로 노력해봤으나 실패했다고, 회의 도중에만 세 번 이상 언급했다. 마지막에는 내가 한국인이란 걸 눈치채고 내게 개인적으로 부탁까지 하더라. 이런 건 정말 아쉬운데 돈은 돈대로 내고 기관 간 협력을 위한 논의 자리에는 나오지도 않으니, 이렇게 해서 다른 기관과의 중복은 어떻게 방지하고 파트너 간 시너지는 또 어떻게 증진할 건지... 안 그래도 Prey Long 지역의 보호구역(protected area) 지정을 촉구하기 위해 DP들이 청원서 비스름한 걸 준비하고 있는데 최근 해당 지역에서 사업을 시작한 한국이 빠질 수 없지 않은가? 어디 숨어있는진 모르겠지만, 얼른 나타나길 바란다.   

 

재미났던 건 캄보디아 산림청에서 National Forest Program 2010-2029 업데이트를 donor들에게 제안하며 예산을 포함한 계획까지 발표했지만, 20년 계획이 5년이 지난 지금 업데이트해야 할 만큼 상황이 나아진 게 없고 산림청의 성과 달성 또한 요원하다는 최근 평가결과에 따라 전원 일치로 거부당했다는 거.


그나저나 산림청 아저씨는 돌아가서 많이 깨지셨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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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는 GGGI 캄보디아 사무소의 Country Planning Framework (CPF) 수립과 관련하여 Consultative meeting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는데,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캄보디아 사무소의 1년 Core 예산이 사무실 운영비와 인건비를 포함하여 80만 불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 KOICA의 대 캄보디아 지원 예산이 년 2,000만 불, 대 미얀마 지원 예산이 500만 불 수준인걸 감안하면 정말 적은 금액이었다.  

 

CPF는 GGGI의 Strategic Plan 2015-2020에 맞춰 향후 5년간 캄보디아에서의 GGGI 활동을 가이드할 전략 문서로 한국의 국가협력전략(CPS)과 유사하며, GGGI의 4대 중점 지원분야(thematic priorities)인 에너지/물/토지이용/녹색도시개발 중심으로 수립된다.


듣자마자 과연 이 돈으로 무얼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는데... 이 분들도 이걸 잘 알고 있고, 그래서 GGGI가 강점을 가지고 있는 '녹색도시'등의 주제에 초점을 맞추고 사전 타당성 조사나 마스터플랜 류의 사업 지원을 통해 향후 여타 개발협력 파트너들의 지원을 이끌어 내는 게 목적이라고 한다. 


GGGI가 과연 녹색도시 분야에 강점을 가지고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남들이 하지 않는 분야를 전략적으로 특화하기로 결정한 건 탁월한 선택이라 생각한다. 그나저나 1년 예산이 80만 불인데 CPF 수립마저 컨설팅을 주고 다음번 미팅까지 굳이 씨엠립에서 개최하는 건 낭비 아닌가?


CPF 수립 과정은 한국의 사업형성조사 과정이나 CPS 수립과정과 유사하며, 각 정부 관련 부처들로부터 사업 요청을 받고, 이를 기반으로 개발협력 파트너들과의 협의를 거쳐 초안을 마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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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digester (생물소화조)라는 게 있다. 


집에서 일반적으로 기르는 소, 돼지, 닭 등의 배설물을 집어넣으면 바이오가스가 생성되는데, 이를 조리(cooking)나 조명(light)의 연료로 사용하게 하는 기술이다. 바이오가스가 생성된 후의 배설물은 유기농 작물 재배에도 사용될 수 있어 유용한 폐자원 에너지화(waste to energy)의 주요 사례로 거론된다.   


Biodigester는 총 에너지 소비의 90% 이상이 목재나 숯(charcoal)의 형태로 이루어지고 전기 보급률이 30%를 약간 웃도는 캄보디아와 같은 나라에서 특히 유용한데, 얼마 전 농림어업부 산하에 설치된 National Biodigester Programme (NBP)에서 UNDP를 찾아와 NBP의 NAMA (Nationally Appropriate Mitigation Action, 개도국의 자발적 온실가스 감축행동) 사업 개발을 요청해 왔다. 


NBP는 네덜란드의 국제개발 원조기구인 SNV에 의해 2005년부터 처음 시작되었으며 올해 7월까지 약 23,300개의 Biodigester가 캄보디아 전역에 설치되었고, 이를 통한 온실가스 총 감축량은 366,000 CO2 eq. (이산화탄소 환산량)정도 된다. 


NBP의 요청 내용은 향후 10년 동안 31,000개의 biodigester를 더 보급하겠다는 것이고 이를 위해 14백만 불 정도의 예산이 필요하는 것인데, 뭔가 석연찮다. 10년이나 외부 지원을 통해 사업을 해왔는데, 저렇게 큰돈을 들여 10년을 더 하겠다? 내겐 그저 business as usual의 사례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냥 Donor 돈이 떨어졌으니, 어디 돈이 더 없나? 구하러 다니는 건가? 편하게 하던 거 하면서?


NBP를 처음 시작했고 지금도 다른 funding sources를 통해 올해 말까지 지원을 계속하고 있는 SNV와의 면담에서도 그와 같은 고민은 묻어났다. 처음부터 '시장(market)' 형성에 초점을 두고 사업을 지원했지만 실패했고, 어떤 경우에는 NBP에서 독립적인 delivery mechanism (서비스 전달 체계)이 생겨나는 걸 방해한다는 인상까지 받았다는 것이다. 그간 프로그램을 통해 46개의 Biodigester Construction Companies (BCC)가 생겨났고 300명이 넘는 기술자가 트레이닝을 받았다면 적어도 4-5개의 자생적 delivery mechanisms이 생겨났어야 하는데 말이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 있고 그 기술이 현지 상황에 적정하다 하더라도, 외부의 지원 없이 자생적으로 굴러갈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일까?


팀에선 일단 농림어업부의 biodigester 시장 형성에 대한 담보나 의지 재확인, biodigester가 아닌 바이오가스 섹터 전체에 대한 지원 및 정책 개발 (이 경우 소관부처의 변경?) 등을 중심으로 대화를 이어갈 예정이지만... 이런 일은 되도록이면 안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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