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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땅 Apr 30. 2021

알아가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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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진행을 위한 컨설턴트나 컨설팅 업체 선정을 위해 제안요청서(Terms of Reference)을 작성하거나 컨설턴트 (Individual Consultant) 선발 과정에 평가자로 참여할 기회가 종종 있는데, 원조투명성 지수 1위에 빛나는 "UNDP"란 조직도 생각했던 것만큼 깨끗한 조직은 아닌 듯하다.


우선 최근에 평가자로 참여한 예를 들면, 서면평가 과정 중 평가에 참여한 다른 평가자 1인에게 이메일이 왔는데, 평가자 3명이 만나 프로젝트팀이 원하는 후보자가 어떤 인물인지를 들어보고 어떤 인사를 선정하는 게 향후 프로젝트 실행에 도움이 될지를 이야기해보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실상은 본인이 알고 있는 한 지인이 후보에 포함돼 있고, 해당 분야 경험이 일천함에도 불구하고 미팅을 통해 이 후보자에게 유리하도록 평가를 이끌기 위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지는 않았지만, 이를 위해 이미 공고가 끝나 서류 과정에 있는 채용과정의 평가항목마저 건드리려 한 대목에선 쓴웃음이 나왔다.


이 뿐만이 아니다. 


열심히 ToR을 작성해도 이미 선정될 업체나 컨설턴트가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는 내정된 친구가 직접 ToR을 작성하는 경우도 있다. 기존에 일하던 사람이 일을 너무 잘하거나 편해 그 친구를 계속 쓰고 싶고, 또 그 일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이 기존에 일을 하던 사람이거나 내정된 사람 본인이기 때문이긴 한데...


들러리 서며 뭔가를 기대하고 있을 많은 지원자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그런데 그렇다고 이 자체를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다고 한다. 공정한 선정과정을 거쳤다고 해도 최고의 능력을 가진 컨설턴트나 업체가 선정돼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지도 않는다고 한다. 잘못된 인사나 업체가 선정돼 프로젝트도 말아먹고, 돈은 돈대로 낭비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봤다나? 아마 이런 실패 사례들이 모여 불합리해 보이지만 필요해도 보이는 관행이 만들어진 게 아닐까? 싶다. 


아울러, 평가과정에서 느낀 건... 지원자 입장에선 ToR에서 요구한 능력이나 조건과 어느 정도 이상 들어맞지 않는 한 지원하지 않는 편이 나을 거라는 것. 요구하는 능력과 조건에 맞게 평가배점이 이루어지니 이게 어느 정도 일치하지 않는다면 최종 후보에 들 가능성 자체가 없다. 그리고 ToR이 지나치게 세세할 경우엔 내정자가 있는 경우도 많고, 어느 정도 일치한다면 선발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지원서에 최대한 본인의 경험이나 능력이 여기에 일치한다는 걸 어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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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V 단원은 봉사활동 기간 동안 UN 직원들과 동일하게 Cigna라는 회사의 보험 적용을 받게 되고 이를 통해 거의 대부분의 진료비나 치료비 100%를 사후 환급받을 수 있는데, 여기 한 가지 소소하지만 심각한 차별(?)이 존재한다.


바로 UN 직원들에게는 본인 명의의 보험가입 증명 카드가 발급되는데 반해, UNV의 경우 그야말로 'UNV' 명의로 된 카드만 발급된다는 것. 그 수도 모자라 전체 UNV 단원 개개인이 UNV 카드를 부여받지도 못하며, 필요한 사람들이 UNV 사무실에 가서 카드 대여 대장 같은 곳에 기록을 한 후 카드를 빌려오고 있다. 


이 카드는 평상시엔 아무런 쓸모가 없다. 이름도 없는 카드는 더더욱;


문제는 캄보디아와 같이 공공의료가 취약한 곳에선 간단한 감기와 같은 작은 질병의 치료에도 100불이 넘는 큰돈이 들게 되는데, 환급받게 될 돈도 애초에 부담돼 병원에 가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단 사실은 간과한 듯하다.


얼마 전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는 National UNV 친구 한 명이 감기를 심하게 앓았는데, 보험 적용 사실을 알면서도 병원에 가질 않았다. 감기가 심해져 회사에 나오지 못하는 날도 많아지고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걱정스러운 마음에 프놈펜 시내에 보험증서만 가져가면 공짜로 치료해주는 병원이 있다고 알려주었는데, 병원을 다녀온 친구 말이 UNV 카드는 본인 이름이 쓰여 있질 않아 받질 않더란다. 병원에 갔지만 거절당한 것이다. 차후에 Cigna 웹사이트를 통해 보험증명서와 보험 카드 출력하는 법을 내가 알려주긴 했지만, 그땐 이미 감기가 다 나은 후였다. 


어이가 없었다. 병원 때문이 아니라, 애당초 UNV 명의의 카드를 발급한 Cigna (이름 쓰는 게 뭔 일이라고;)와 이런 행정을 이끈 UNV에 화가 났다. 내 급여명세서만 봐도 한 달에 Allowances 외에 꽤나 큰돈이 보험료 명의로 나가고 있었는데, 이 돈을 내면서도 이런 차별적인 대우를 받아야 하는 게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랬던 그 친구가 오늘은 회의 도중 갑자기 쓰러졌다. 네 아들의 아버지인 이 친구는 전직이 공무원이었다. 한 달 150불이 안 되는 임금으로는 도저히 살 수가 없어 National UNV가 된 친구인데, 가족은 모두 멀리 시골에 두고 홀로 힘겨운 타향살이를 하는 중이었다. 그런 친구가 쓰러졌는데, 대응 과정에서 현지 직원들이 보인 첫 반응이 '이 친구 보험 있지?'였다. 카드가 없어 병원행을 망설이는 것 같기도 했다. 


결과적으로는 병원에 갔고 아무 일도 없었지만, 참 한심한 행정이 아닐 수 없다.


UN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현지 직원들이 중산층 이상이라 이런 어려움을 모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이런 차별이나 불편함은 겪지 않도록 UNV가 신경 써야 하는 거 아닐까? 제대로 진정을 넣을 통로도 없는 거 같은데, 어디로 메일을 보내야 고쳐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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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19일 UNDP Country Office의 Annual Retreat 행사가 있었다.

본래는 일 년 중 한 번, 2박 3일간 사무소 직원 전체가 교외로 나가 워크숍을 하는 게 관행인데, 올해는 조직개편 지연으로 찔끔찔끔 연기하더니 다들 바쁘다는 핑계로 이렇게 시내 호텔에서 하루짜리 행사로 대신했다. 

주 내용은, 새롭게 채택된 17가지 지속가능개발목표(SDG)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퀴즈게임, 직원협의회 선거, 조직 내 커뮤니케이션 강화 방안 토의, 우수사원 표창 등. 

나름 유익한 시간이었다만, 인당 30불 넘게 주고 꼭 이런 비싼 호텔(Sofitel)에서 했어야 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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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까지 이 곳에서 두 가지 GEF(지구환경기금, Global Environment Facility)의 프로젝트 형성에 관여하며 느낀 점을 정리한다. 

첫 번째는 캄보디아 '유전자원의 접근과 이익 공유(Access and Benefit Sharing: ABS)' 프레임워크 구축 관련인데, GEF에서 캄보디아 생물다양성 명목으로 책정한 예산은 90만 불. 캄보디아 담당기관(Department of Biodiversity, National Council for Sustainable Development)이 UNDP를 파트너로 선정하였고, 이에 따라 UNDP는 캄보디아 담당 정부기관과의 협의를 거쳐 Project Identification Form(PIF)을 작성하고 완성되면 GEF에 최종 승인을 요청하게 된다.

PIF 작성은 최초 UNDP 방콕지역사무소(Bangkok Regional Hub)의 생물다양성 전문가가 캄보디아를 방문해 캄보디아 담당기관 및 이해관계자들을 만나 초안을 작성한 후, UNDP 국가사무소를 매개로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업데이트해 나가게 된다. 이 과정에서 필수적인 것이 바로 캄보디아의 사정과 상황을 PIF에 적절하게 반영하는 것인데, 캄보디아 책임 공무원 A는 여기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코멘트를 달라고 하면 정말 코멘트를 주는 수준이지, 정부 정책이며 진행 중인 프로젝트 등 각종 정보들을 내가 직접 인터넷 서핑을 통해 직접 찾아야 했다. 부서에 캄보디아 친구가 있어 가끔 도움을 받기는 하지만 이 친구도 모든 내용을 알 수가 없다. A는 매번 '빨리빨리'를 외치면서도 연락만 하면 출장 중이고 부하 직원들에게는 업무를 위임하지 않는다. 일이 빨리 진행될 수가 없다.

A는 현재 또 다른 UNDP-GEF 프로젝트 하나를 수행 중인데 진행이 상당히 더디다. Project Manager (PM) 채용을 둘러싼 잡음이 주된 이유인데 현재 채용된 자는 프로젝트 수행 능력이 없는 것으로 판단되며 A가 기존 부하직원(공무원)을 PM으로 채용해 보수를 나눠먹기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의심까지 하게 된다. UNDP는 프로젝트 관리 책임만 있고 수행은 캄보디아 담당 정부기관의 책임임에도, A는 UNDP가 프로젝트 수행을 위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고 비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UNDP가 할 수 있는 건 회계감사 밖에 없을 텐데, 과연 제대로 진행할 수 있을까?


두 번째는 토지황폐화 대응, 지속가능한 토지/숲 관리를 통한 유역관리.

당초 캄보디아 농림수산부에서 ADB를 실행 파트너로 정해 프로젝트를 형성했고 GEF로부터 최종 승인까지 받았으나, ADB 사정으로 UNDP로 사업을 이관을 요청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ADB는 이관 과정에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중간에 끼인 UNDP에서 나서서 ADB측 담당자가 누구인지를 파악해야 했고, 이후 절차가 이러하니 이런 레터(letter)를 캄보디아 농림수산부로 보내라 알려주고, 이관을 위한 관계 당사자간 회의 주선까지 요청해야 했다. 뭐가 그리 바쁜지 프로젝트에 의문이 생겨 문의를 해도 답변조차 없다. UNDP 국가사무소에서 지역사무소를 통해 ADB의 이관 요청에 대해 처음 전해 들은 건 지난해 10월인데, 8개월이 지난 지금도 아직 완료가 되지 않았다. 이래도 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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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 대학 졸업을 직전에 두고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해외 IT 청년봉사단'의 일원으로 활동할 당시, KOICA 봉사단원 두 분과 친해질 기회가 있었다. 한 달이란 짧은 시간을 봉사라는 미명 하에 웃고 즐기고 있었던 우리와 달리, 그 두 분의 일상은 그리 가벼워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한 분은 현지 학교의 미술 선생님으로 오셨는데 일에 대한 불만과 함께 남편과 아이를 한국에 두고 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크다 하셨고, 또 다른 한 분은 IT 전문가로 오셨는데 배정받은 임지에 본인과 똑같은 일을 하는 현지인이 있어 할 일이 없다 하셨다. 뭔가 행복해 보이지 않았고, 봉사활동을 통해 느끼는 보람이란 단어와도 거리가 멀어 보였다.


인생에 있어 결코 짧지 않은 않은 2년이란 시간을 할애해 먼 아프리카 땅까지 '봉사'하러 오는 것부터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하루하루가 기쁘기보단 힘겨워보였던 그분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10년이 흘러 지금은 내가 그분들과 어쩌면 비슷한 처지에 놓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UNV의 'International UN Volunteer'란 타이틀을 달고 와 있기는 하지만, KOICA와 똑같은 봉사활동 프로그램이고 임기도 2년이다. 차이라면 UNDP 국가사무소에서 직원들과 함께 사업기획/관리와 같은 동일한 '오피스' 업무를 하루 8시간 주 5일 동안 한다는 것 정도?


생각해보면 난 지금의 자리를 '봉사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머릿속으로는 'Volunteering'을 통해 세계 평화와 발전에 기여한다는 UNV 프로그램 목표를 이해하고 있었지만, 내 업무의 특성 때문인지 아니면 내 욕심 때문인지, 난 지금의 자리를 내 경력의 일부라고만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이었을까? 난 이 곳에 온 이후 줄곧 행복하지 못했다. 내가 꿈꾸웠던 조직의 일부인 이 곳 사무소는 나 스스로를 줄곧 '잉여'로 여기게 만들었고, 나의 기여에 고마워한다는 인상을 주지도 않았다. 자연스럽게 많은 일도 하지 않으면서 스트레스가 쌓여갔고 말수는 줄어들었다. 이 곳에 와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운 것도 사실이고 아직까지도 주어진 기회에 감사하고는 있지만, 이렇게나 오랜 시간을 하루하루 버티고 인내하는 내 모습을 보면 자주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가?'라는 회의가 들 때가 많았다.


불행하게도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다. 같은 사무소에서 'International UN Volunteer'로 일한 필리핀 친구와 에르트리아 친구 모두, 나보다 나이도 많고 경력도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었다. UNV 필드 오피스에서도 이야기한다. 이런 사람이 의외로 많다고... 이게 UNV란 시스템이 가질 수밖에 없는 본질적인 한계인 건지, 아니면 조직 내에서 UN Volunteers에게 가지는 인식과 기대가 이것밖에 안 되는 건지, 것도 아니면 이 곳 사무소만의 특성이거나 아니면 필요하지도 않은 인력을 요청해 관리를 안 하는 건지는 모르겠다. 어차피 한국 정부에서 모든 경비를 지원하니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는 건가? 


분명한 건 지금까지의 UNV 경험이 상당히 실망스러웠단 것이고, 앞으로 두 번 다시 내가 UNV에 지원할 일은 없을 거라는 거. 
참고로 UNV 정책상 International UNV는 복수로 4년까지 활동 가능하고, Youth 및 University Volunteer 트랙 경력은 제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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