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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땅 Apr 30. 2021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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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V 임기도 거의 끝나간다. 이제 세 달만 더 견디면(?) 되는데.. 역시나 문제는 What's next?


서른 다섯까지는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도전하는 삶을 살겠노라 공개적으로 떠들고 다녔다만, 이젠 어느덧 거기에 2년이란 시간이 보태어졌다. 친구들은 하나 둘 집을 사거나 어느 정도 높은 직급으로 올라가기 시작했고, 아이는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되었다. 


뭐, 그렇다고 사람들의 시선이 크게 신경 쓰이는 건 아니다. 난 여전히 내가 걸어온 길을 바탕으로 원하는 일을 하고 싶고, 그게 맞는 길이라 생각한다. 다만 이런 나를 받아줄 자리가 있느냐가 문제. 잡서치를 꾸준히 해오고 있지만 그게 잘 보이질 않는다.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자리가 없다면 살짝 돌아갈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재는 것도 많아졌다. 아직 급한 상황은 아니니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천천히 기회를 기다려보는 게 아무래도 맞겠지?


여유를 가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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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의 계약이 얼마 남지 않은 지난주 평일, 3일간 씨엠립으로 연찬회를 다녀왔다. 작년에는 프놈펜 시내에 위치한 한 럭셔리 호텔에서 당일로 간결하게 진행을 했었는데, 보통은 프놈펜을 벗어나 이번처럼 2박 3일간 전 직원이 재충전 겸 회사 발전을 위한 워크숍을 가지는 게 관례라 한다.


하지만 관례라 하기엔 뭔가 좀 석연치 않다. 최근에 프놈펜과 씨엠립 간 도로 재포장 공사가 완료돼 이동이 조금 수월해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버스로 6~7시간이 걸리는 장거리. 즉, 2박 3일 중 2일을 도로에서 허비했다는 것이고, 중급 호텔(1박 30불)에서 전 직원에게 제공된 두 번의 숙박은 처음부터 불필요했다는 것이다. 단 1일의 이벤트를 위해 전 직원이 씨엠립까지 가야 했을까?


돈을 이렇게 낭비하면서도 자비로 인턴 중인 친구들은 몇 명 되지도 않는데 데려가지도 않았다.


전 직원이 모두 적극적으로 참여해 제대로 된 워크숍을 가졌다면 모르겠지만 작년까지 진행된 구조조정의 결과인지 아니면 이곳의 고질적 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이곳 직원들의 사기나 의욕(morale)은 상당히 저하돼 있다. 팀 간뿐 아니라 팀 안에서도 제대로 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지 않고, 다들 자기만의 사무실 칸막이에 틀어박혀 주어진 일만 처리할 뿐이다. 워크숍 참여율도 직원협의회에서 걱정할 만큼 상당히 저조했고, 현장에서 보기에도 다들 무관심해 보였다.


이번 Retreat의 주제는 지난해 조직개편에 이어 '개인으로서 어떻게 조직 행동 변화의 주도자가 될 수 있을 것인가?' 말은 그럴듯하지만 쉽게 얘기하면, 회사에 불평만 하지 말고 개인이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마인드로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 알아서 잘하라는 뜻. 마지막 날 아침에는 해산 전 하버드의 한 유명한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한 TED를 보여주며, 인간의 행복한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나 유명세가 아니라 바로 사람 사이, 직장 동료 간의 '관계'라는 것을 각인시키려 애썼다.


여기 간부(Senior Management)들도 위에서 언급한 조직의 문제점들을 알고 있기 때문에 Retreat 주제로 이렇게 정한 것은 아닐까? 도 생각해 보지만, 뭐 그들도 그렇게 책임 있어 보이진 않는다. 단순히 자기 맡은 일만 문제없이 잘 진행되는데 관심이 있다고 할까? 현지 직원들은 권한이 없고 간부급 International 직원들은 시간만 채우고 떠나면 그만인 이곳의 주인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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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말이지만 현재 한국 정부에서 지원하고 있는 아래의 UNV 프로그램들은 UN을 내부 직원과 같은 입장에서 경험하고 international career를 쌓는데 디딤돌이 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은 맞지만, UN으로의 입직과 관련해 아무것도 보장해주지 않는다.


- KOICA UNV 대학생 봉사단 (학사 이상, 파견기간: 6개월)
- UNV 청년봉사단 (석사 이상, 파견기간: 1년)
- UNV 전문봉사단 (경력 5년 이상, 파견기간: 1~2년)

그러니 현 직장을 사직하고 지원해야 할 전문봉사단 지원자 분들의 경우에는 오히려 계약 종료 후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상당한 각오도 필요하다. 분야별로 다를 수는 있겠지만 커리어 상으로 크게 도움이 된다 말할 수 없고, 아직 한국의 개발협력 시장이 작아 돌아온 후 원하는 자리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KOICA의 ODA 전문가 파견 전문가 사업도 최근 폐지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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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7. 31. 2년간의 UNV 임기 종료! 


불평불만 참 많았다만, 다른 한편으론 많은 걸 보고 배웠다. 허황된 꿈에서 깨어나 현실도 알게 되었고. 앞으로는 또 어떤 기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설레면서도 불확실한 미래가 조금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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