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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에스 Nov 24. 2023

도시농부학교

2020년 4월 처음으로 도시농부가 되었습니다. 


도시농업법에 따르면 도시농업이란 도시지역에 있는 토지, 건축물 또는 다양한 생활공간을 활용하여 농작물을 경작 또는 재배하는 행위를 말하며, 도시농업인은 도시농업을 직접 하거나 관련되는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고 합니다. 


도시농부학교에 입학해서 4평 정도 되는 개인텃밭을 분양받고, 매주 이론공부와 함께 실습도 진행하니 법적으로도 어엿한 도시농부가 된 샘이었죠. 게다가 저희 실습 텃밭은 아파트로 둘러싸인 신도시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이보다 더 도시농업의 정의에 부합하는 장소를 찾을 수 있을까요? 


첫 실습은 텃밭에 퇴비 뿌리기!




도시농부학교는 4월부터 10월까지 총 85시간 과정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본래는 정부 및 지자체의 귀농정책 지원 대상 요건에 맞춰 100시간 교육을 진행해 왔었는데, 당시는 코로나19로 인해 견학 등의 진행이 불가능했던터라 불가피하게 시간을 조금 줄여 운영하였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저도 제가 의심스러웠습니다. 농업에 진짜 흥미가 있는 게 맞아?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서 그러는 거 아냐? 하고요. 새로운 일에 흥미를 잘 느끼기는 하지만 싫증도 잘 내는 편이라 도시농업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오래갈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하루, 이틀 나가다 보니, 다음 시간이 점점 더 기다려졌습니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실외활동이 극히 위축되어 있던 시절이라 매주 텃밭을 찾는 것 자체가 기쁨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수업이 없는 날에도 시간이 날 때마다 텃밭을 찾아 제가 심은 작물이 얼마나 잘 자라고 있는지 관찰을 하게 되었습니다.




도시농부 생활은 참 다채롭고 즐거웠습니다.


개인 텃밭에는 토마토, 가지, 고추와 함께 상추, 쑥갓 같은 쌈채소류를, 공동 텃밭에는 감자, 옥수수, 고구마, 무, 배추 등을 심고 가꾸었습니다. 인근의 포도농장에서 포도나무도 1주씩 분양받아 알을 솎고 봉지를 씌우는 등의 과정에도 직접 참여하였고, 공동 텃밭 한편에는 논을 만들어 직접 손으로 모를 심었습니다.

모내기 중


매일 밥을 먹고살고 황금 벼가 익어가는 들판을 낭만 가득 바라본 적은 많았지만, 물을 댄 논에 직접 들어가 모를 하나하나 떼내 꾹꾹 눌러 심은 건 그야말로 처음이었습니다. 허리를 연신 굽혔다 폈다 반복하는 게 쉽지만은 안았지만, 맑은 하늘 아래서 함께 호흡을 맞춰가며 일을 하다 보니 기분은 오히려 상쾌했습니다.


저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실습을 나갈 때마다 거의 매번 아이를 데리고 다녔는데, 하루는 텃밭 관리동 컨테이너에 페인트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무더운 날씨와 오랜 작업 시간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밑그림부터 색칠 작업까지 전 과정에 참여하였는데, 그림이 하나하나 완성돼 가는 걸 보며 뿌듯해하는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제가 오히려 더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관리동 컨테이너 페인트 작업 중




매주 토요일 오전, 아이와 제가 없는 시간을 이용해 아내가 잠시나마 쉴 수 있다는 건 또 다른 덤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아내 얼굴에도 미소가 늘어갔습니다.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맞벌이를 하며 아이를 키운다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지만, 도시농부학교를 통해 저희 가족은 좀 더 여유를 찾고 행복에 다가설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 어디선가 '한국인이 불행한 건 아빠도, 아내도, 아이도 서로 자기가 제일 힘들다고 경쟁하기 때문이다.'라는 식의 글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정확한 워딩은 기억이 나질 않지만, 가족 구성원 중 어느 누구도 여유를 찾을 수 없는 경쟁에 내몰린 사회적 환경을 비판한 이야기로 기억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렇다고 모든 게 좋았던 건 아니었습니다.  


장마가 가시고 동기분들과 함께 호기롭게 공동 텃밭에 심어놓은 고구마밭 관리에 나섰던 어느 날. 저는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그만 녹초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야말로 더위에 녹아내렸습니다. 더위를 먹은 건지 그날은 집에 돌아와서도 하루 종일 빌빌대며 일어나지도 못했습니다. 대신 아내에게 '대체 뭐하자는 거냐'는 잔소리만 잔뜩 들었습니다. 


고구마밭 잡초와 전투 중


'호미 명상'이라고 해서 호미질을 오래 하다 보면 명상과도 같은 효과가 있다던데, 당시만 해도 저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는 듯 했습니다. 작은 밭에서도 이럴 진데, 전업농은 꿈도 꾸지 말아야겠다 생각했습니다. 




도시농부학교에 다니며 제일 마음에 들었던 건 교육과정이 유기농법으로만 짜여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비닐 대신 풀로 *멀칭을 하고, 천연 농약을 직접 제조하여 병해충을 방제하는 것처럼요. 그중에서도 백미는 바로, 내 몸 안에 있는 오줌을 직접 모아 액체비료로 사용한 것이었습니다. 


*멀칭: 농작물 재배에서 쓰이는 토양 관리 방법 중의 하나로, 주로 토양 표면을 비닐이나 짚 따위로 덮어주는 것을 말한다. 이를 통해 농작물의 뿌리 보호, 토양 수분의 증발 및 비료의 유실 방지, 잡초 방제 등과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사실 오줌을 모은다는 건 아파트와 같은 환경에서 살아가는 오늘날,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일입니다. 그냥 내 몸에서 배출되는 더럽고,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액체일 뿐이죠. 그런 오줌을 소변을 볼 때마다 고이 플라스틱 우유통에 모아, 뚜껑을 틀어막고 음지에 두면 2주 후부터 '짜잔'하고 비료가 된다니요! 


오줌액비


그런데 작물에 오줌액비를 뿌리는 건 더 큰 일이었습니다. 오줌액비를 *엽면시비해 주기 위해 물과 희석하여 사용하는데, 제가 가져간 분무기가 문제였습니다. 수업 시간에 배운 대로 뿌려주는데, 그날 따라 바람이 많이 불어 자꾸 얼굴이며 옷에 묻더라고요. 발효도 되었고 물에 희석도 하였건만, 여전했던 암모니아 냄새! 그날은 정말 울고 싶었습니다. 


*엽면시비: 작물의 생육에 필요한 성분을 인위적으로 작물의 잎을 통하여 흡수케 하는 방법. 


하지만 '이 상태로 집에 어떻게 가지?'란 걱정도 잠시, 저는 다음 순간 오히려 액비의 양은 적당히 준 것인지, 제대로 효과는 있을지가 궁금해졌습니다. 도시농부학교를 졸업도 하기 전에 어느새 저도 어엿한 농부가 다 된 것 같았습니다.  


돈 주고 사는 화학비료보다 더 좋은 게 있으니 바로 내 배 안에 있는 오줌이다. 오줌에는 화학 비료에는 없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가 '옥신'이라는 식물생장촉진 호르몬이다. 옥신은 특히 뿌리 발육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화학약품이 부족했던 옛날에는 삽목 할 때 오줌을 묻혀 심기도 했다. 옛 문헌을 보면 목화를 심을 때 씨를 오줌에 담갔다가 심었다는 기록도 찾아볼 수 있다. 아마 조상들은 경험적으로 오줌에 뿌리 발육촉진제가 있는 줄 알았던 것 같다. 두 번째는 화학비료에는 없는 유산균이 있다. 오줌을 투명한 용기에 담아 뚜껑을 닫고 일주일 정도 지나면 아랫부분에 갈색의 침전물을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유산균이다. 유산균은 대표적인 유익미생물로 살모넬라 같은 병원성 세균을 제거하는 탁월한 능력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 안철환, <호미 한 자루 농법> 중에서




풀로 멀칭을 하는 건 품이 많이 드는 귀찮은 일입니다. 비닐은 한 번 사서 덮어주면 끝이지만, 풀 멀칭은 끝이 없거든요. 매번 밭에 갈 때마다 주변에 난 잡초를 일일이 낫으로 베어 작물 주변에 덮어주어야 합니다. 유기물은 시간이 지나면 썩고 분해되어 자연으로 돌아가니까요. 나무에서 떨어져 자연스럽게 쌓이는 낙엽과 이 낙엽이 부엽토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쉬울 듯합니다. 


이렇듯 유기농업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도시농업 공동체들이 유기농업을 실천하며 '토종' 씨앗을 직접 채종하여 나누고, 생태화장실이며 음식물 퇴비화 등 자연순환농법을 직접 실천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도시는 농산물을 생산하기보다는 소비하고 쓰레기를 만들어 내는 쪽인데, 도시농업은 유기농업을 실천하고 있으니 조금은 역설적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이는 도시농업과 같이 소규모로 농작물을 재배하는 경우, 아무래도 가족을 위한 먹거리를 직접 생산하다 보니 건강이나 환경 문제를 오히려 더 가까이 느끼기 때문인데요. 


대학원 졸업 후 10년 넘게 지속가능발전이나 기후변화, 환경 등의 분야에서 일한 개인적 경험 탓에, 지구와 환경을 생각하는 도시농업은 수고는 더 들었지만 더 큰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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