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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땅 Nov 24. 2023

100평 짜리 땅을 샀습니다

2021년 8월 김포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강화도에 100평 정도 되는 작은 땅을 샀습니다.


사실 땅을 보러 다니기 시작한 건 도시농부학교에 다니던 2020년 7월부터였는데요. 개인 텃밭으로 분양받은 4평이 성에 차지 않았나 봅니다.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도 제대로 된 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그 마음은 사그라들기는 커녕 점점 커지기만 하였습니다.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코로나19의 영향이 컸던 것 같습니다. 외부 활동에 제약이 많던 때다 보니, 내 땅에 농막을 놓고 가족들과 함께 실외에서 자유롭게 활동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근 1년간 여러 부동산 사이트를 들락거리고 김포, 파주, 연천 등지로 땅을 보러 다녀도, 수도권에서 *300평 미만의 주말농장용 땅을 찾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경자유전의 원칙에 따라 농민만 농지를 소유할 수 있으나, 300평 미만 농지의 경유 주말농장용으로 도시민도 소유 가능


잡초뿐이었던 강화도 땅


그러던 중 1년이 거의 다 되어갈 무렵, 집에서 1시간 내에 도달할 수 있고 가격도 예산 범위 내에 있는 적당한 땅을 강화도에서 발견했습니다. 강화도 북쪽의 조그만 마을 안쪽에 위치한 곳이었는데, 조금만 걸어가면 작은 저수지와 함께 둘레길도 있어 가족과 함께 산책도 할 수 있는 편안한 마음이 드는 곳이었습니다. 


토지 구입 비용(총 57,907,000원)
- 매매가: 55,000,000원
- 중개 수수료: 500,000원
- 취득세, 교육세, 농특세: 1,879,000원 (매매가의 3.4%)
- 기타 등기 관련 비용: 199,100원 (등기신청 수수료 등)
- 법무사 수수료: 328,900원




내 땅이 생기니 괜한 셀렘에 밤잠을 설치는 날이 많았습니다. 앞으로 관리는 어떻게 하지? 뭘 심지? 농막은 어떤 걸 놓을까? 등등 행복한 고민의 연속이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급했던 건 바로 잡초 정리. 8월 말이 다 된 시기였는데 김장 배추나 무 같은 걸 심으려면 어서 빨리 밭을 정리해야 한다는 조급함에, 첫 주말 아침 일찍 온 가족을 데리고 밭으로 나갔습니다. 


모자와 팔토시, 장화로 중무장을 하고 호기롭게 낫과 호미를 들고 나섰는데, 묵은 밭이라 그런지 잡초가 어찌나 굵고 질기던지 30분도 채 안돼 탈진하고 말았습니다. 땀은 비 오듯 쏟아지고 햇볕은 내리쬐고. 역시나 잡초와의 전쟁은 절대 만만히 볼 게 아니었습니다. 잠시 쉬었다 다시 시작해도 금세 또 지치고. 낫과 호미에 더해, 삽, 레이크, 선호미도 미리 준비해 왔지만 역시 초보 농부에게는 무리였습니다.


첫 밭매기


처음부터 아내와 아이가 너무 고생하는 것 같아 바로 목표치를 낮춰 잡았습니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기로. 그렇게 해서 첫날은 1시간 30여 분 만에 철수! 밭은 한 4평 정도나 맸는지 모르겠습니다. 12시도 안 되었지만 해는 이미 중천에 있었고, 몸은 방전된 상태라 작업을 더 하려야 할 수도 없었습니다. 


다음 날은 더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7시에 출발해 8시 도착. 그리고 어제처럼 1시간 30분만 일했습니다. 몸은 힘들었지만 아침 일찍이라 뜨거운 햇볕도 없었고 선선한 바람도 불어와 어제보다는 덜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속도가 너무 느렸습니다. 주말마다 가서 넓혀 간다고 해도 100평 땅을 대체 언제 다 정리할 수 있을까요?


신기했던 건 꽤나 힘들었을 텐데도 아내와 아이가 즐거워하더란 것이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어디 자유롭게 다니기도 힘든 상황에서 마스크 없이 맑은 공기를 호흡하며 우리만의 공간에서 땀 흘릴 수 있다는 게 아무래도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어 준 것 같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며 '벌써 다음 주말이 기다려진다'고 말하는 걸 보니, 땅을 정말 잘 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애당초 땅을 산 이유가 우리 가족 즐겁고 행복하자고 산 거 아니겠어? 무리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만 조금씩 해보자고! 괜히 스트레스받지 말고."


아, 제가 남들처럼 경운기를 빌려 땅을 갈아엎지 않는 건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경운하지 않은 땅은 탄소(C)를 그대로 머금고 있다. 작물은 CO2(이산화탄소)를 흡수해 O2(산소)를 공기 중으로 내 보내고, C(탄소)를 땅에 저장한다. 기후위기 시대에 이만한 해법이 없다. 게다가 땅속의 유기물 함량은 탄소, 질소의 함량과 정비례한다. 탄소가 쌓이는 만큼 유기물이 쌓이고 이는 작물의 생장에 도움을 준다."

KBS 시사기획 창 <흙, 묻다> 중에서




밭을 사고 나니 비가 기다려집니다. 잡초를 제거하고 땅을 조금씩 넓혀갈 때마다 이것저것 씨앗을 심었는데, 비가 오질 않으니 하늘만 쳐다보게 됩니다. 그렇다고 큰돈을 들여 지하수를 설치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수익을 목적으로 농작물을 재배하는 것이 아니니 농작물이 좀 늦고 작게 자라더라도 저희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는 기다려집니다. 그래도 비가 와야 씨앗이 싹을 트고 성장을 할 테니까요. 매일매일 날씨를 확인했습니다.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던 비가 2주 만에 드디어 내렸습니다. 


어찌나 반갑고 고맙던지요. '지금쯤 텃밭 작물들도 마음껏 빗물을 마시며 행복해하고 있겠지?'란 생각에 저까지 기분이 좋아지는 하루였습니다. 




"밭에 또 가고 싶어! 얼른 주말이 왔으면 좋겠다."


토요일에 이어 일요일까지 연이어 다녀온 밭인데도, 아내는 월요일 퇴근 후 집에 돌아오자마자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도시에서 컸고 시골 생활은 해본 적이 없는지라 전원생활을 동경하기는 하지만 땅이며 작물 재배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그녀가 바뀌었습니다.


밭 일 중인 아내


사실 아내는 제가 도시농부학교에 다닐 때도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저 제가 좋아하는 걸 코앞에서 바라보며 신기해만 할 뿐이었죠. 간혹 '정말 농부가 되려는 건 아니지?'하고 묻기는 했습니다. 마치 잡다한데 관심이 많고 관심 분야가 수시로 바뀌는 제가 곧 도시농업에 대한 흥미도 잃어버릴 거라 확신한 사람처럼요. 도시농부학교에 다닐 때 분양받았던 4평짜리 텃밭에도 단 1번 '방문'했을 뿐이었고, 지금은 우리 땅이 된 강화도 밭을 처음 구경하러 갔을 때도 아내는 차에서 내리지 조차 않았습니다.


그랬던 아내였기에 그녀의 변신은 뭔가 새롭고 신기하면서도 저를 기쁘게 하였습니다. 제가 그간 생각해 온 삶의 가치나 방향에 대한 동의를 얻은 기분이었습니다. 


<피로 사회>란 책으로 유명한 철학자 한병철 님은 행복에 관한 한 강연에서 "행복은 신체 차원의 것으로 손을 통해 들어오며, 사람은 손을 쓰는 행동을 할 때 행복감을 느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본인은 행복을 느끼기 위한 방편으로 정원(땅)을 가꾸고 또 피아노를 치며 끊임없이 손을 사용한다고 하셨습니다.


아무래도 아내도 텃밭에서 손을 쓰며 보낸 시간만큼 더 행복해졌나 봅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농막이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주문했을 때만 해도 한 달에서 한 달 보름은 걸릴 거라고 말했었는데, 마침 인근에 설치 건이 있어 운 좋게도 빨리 설치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땅을 사고 처음 한 달여간 잡초로 가득했던 밭을 정리하며 가장 아쉬웠던 게 바로 이 농막이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차 뒷좌석을 밀어서까지 농기구를 싣고 다닐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비가 와도 철수할 필요가 없고, 힘들면 들어가서 잠시 쉴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농막


제가 구입한 농막은 가로와 세로가 각 4m*3m로 법에서 규제하는 20제곱미터에 한참 못 미칩니다. 코로나19 이후 주말농장과 농막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여러 다양한 업체와 제품들이 등장했고 값비싼 제품들은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시대지만, 농막은 기본적으로 잠깐의 휴식과 함께 농기구나 농작물을 임시로 보관하는 '가설' 건축물이기 때문에 괜히 큰돈을 들이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불법을 저지르고 싶지도 않았고요.


농막 설치 비용: 374만 원
전기 인입 비용: 60만원


화장실은 포타포티와 원터치 샤워텐트로 해결했습니다.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나무 파렛트를 가져다 그 위에 포타포티를 얹고 샤워텐트로 덮어주면 끝!


간이 화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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