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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틈 Jun 20. 2023

돌쟁이 신발

너의 그 걸음걸음을 응원해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동지가 하나 있다.

남편? No.

바로, 돌쟁이 신발.


집에 물건을 쌓아두지 못한다. 안 입는 옷은 절마다 정리해서 나눔 하고 냉장고도 야채가 쌓일라 치면 그날은 볶음밥이나 카레로 저녁을 준비한다. 신발은 거의 한두 켤레로 돌아가며 신다 떨어지면 버리고 새로 산다.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원래 성향이 이렇다.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남편은 "자기만 안 버리면 된다."라고 포기했을 정도이니 말 다했다. 그런 내가 버리지 못하는 것이 있다.


돌쟁이 신발.




아이들 물건을 기념으로 하나씩 갖고 있는 경우는 더러 보았다. 하지만 나의 신발, 그것도 돌쟁이의 것을 갖고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 것이다. 어찌나 극진히 모셨는지 하얀 아기 베개니까지 고이 접어 신발 밑에 깔아 두었다. (잘 보관해서 결혼 때 넘겨주신 엄마께 감사...♡)




 눈앞의 돌쟁이 신발이 뭐라고, 세월의 힘을 새삼 느낀다. 엄마가 깨끗이 삶아 빤 하얀 베개니도 누렇게 얼룩이 졌다. 알록달록 귀여운 색의 무늬는 빛이 바랬다. 무엇보다도 나의 신발. 내가 여자아이여서도 있지만 분홍색을 좋아하는 우리 엄마의 취향으로 이 신발이 우리 집에 왔으리라. 많이 낡았지만 아마 귀엽고 보송보송한 베이비 핑크색이 아니었나 싶다. 아직 걷기도 서툰 아이의 신발인데 신발끈을 왜 이리 길게 만들었는지 아직도 의문이다.


 이 신발을 신고 나는 세상에 첫 발을 내디뎠으리라. 사람이라면 본능처럼 돌 즈음 걷기를 희망한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발걸음마다 어른들이 환호해 줬을 것이다. 어릴 적 나는 그저 걷고 싶어서 걸었을 뿐인데 좋아해 주는 어른들을 보며 또 환하게 웃었을 것이다. 그러다 그만 걷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넘어져 왕 울음을 터뜨렸을 것이다. 깜짝 놀란 어른들이 달려와 그 돌쟁이를 안아서 어르고 달랬을 것이다.


지금 그런 위로가 절실하다.




 처음 시작은 아이든 어른이든 누구에게나 어렵다. 맏이로 살면서 지독한 책임감에 짓눌렸던 나는 어떻게든 그 무게를 번쩍 들어 올려 보였다. 그런 나를 누구는 대단하다 하고, 다른 누구는 당연하다 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나서의 책임감은 어쩐지 이전의 무게와는 다르다. 잘 해내야 한다는 강박이 나를 더 무섭게 짓누른다. 그때마다 나를 일으키는 것은 나를 대단하다 했던 사람도, 원래 넌 그렇게 해야 한다고 했던 사람도 아니었다. 아침마다 덜 뜬 눈으로 잠옷 바람에 부산스럽게 아침을 차리는... 어딘지 모르게 서툰 나를 예쁘다고 해주는 우리 아이들이었다.


오늘은 나의 돌쟁이 신발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아이들을 보았다. 첫째가 두 돌, 둘가 돌즈음 함께 찍은 사진들. 그때나 지금이나 아이들은 나에게 젖냄새나는 아기이다. 하지만 나에게 엄격해지는 만큼 이제 막 세상에 한 발, 두 발 내딛는 아이들에게 완벽을 요구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았다.

...

그러지 말아야지.



첫 번째 발걸음을 딛었지만 두 번째는 아이에게 또 다른 도전이다.

그 걸음걸음에 질책보다 응원과 환호를 보내는 엄마이고 싶다.


갑자기 머릿속이 바빠진다.

아이들이 하교하고 돌아오면 어떤 간식으로 맞을까.

어떤 간식과 따뜻한 말로 아이를 응원할까.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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