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살긴 해요
'여행은 그 자체로 보상이다.' by 스티브 잡스
잡스 씨는 꽤 괜찮은 명언을 한 사람이다.
멋들어진 고가의 여행은 아니지만 우리 가족은 나름 여행을 다닌 사람들이다.
신혼여행, 가족 여행, 근교 여행, 캠핑 여행, 기념일 여행, 해외여행 등등.
무수한 여행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이 있다.
아이들은 10살, 8살로 적당히 크기도 했고 아직도 많이 귀여웠던 나이.
남편은 서울로 여행을 가자고 했다.
서울 갈 돈으로 제주도나 가지 그러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사실 우리에겐 서울이 더 기대되는 곳이었다.
도시 사람 아니냐고?
맞다.
6대 광역시 중 하나인 곳에 산다.
하지만 그 당시 서울 여행은 해외여행을 준비했을 때보다 더 설렘을 가져다주었다.
아이들이 방학을 하면서 남편의 휴가 기간과 맞물리는 그 시간.
먼저 개봉하는 영화를 본다.
역시나 그때도 개봉하는 영화를 먼저 봤다.
시내(우리 지역에선 사람이 모이는 핫플을 시내라고 부른다) 극장에서 영화를 본 후 새 옷을 산다.
당연히 서울 남대문이나 동대문에 들러서 옷을 사는 일정도 포함되어 있지만
여행 갈 때 새로운 옷을 사는 건 하나의 의식과도 같다.
새 옷을 입고 뛰어보자 폴짝~!
아이들은 형제임을 인증하는 색깔만 다르고 무늬는 같은 마린룩으로 풀착장을 해준다.
햇빛 가리는 목걸이와 목선풍기는 필수다.
자,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하나.
남편과 머리를 맞대고 코스를 짜본다.
마침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로봇을 볼 수 있는 곳이 있어서
'V센터'를 코스에 포함시켜 본다.
마음에 드는 호텔을 숙박앱에서 찾아 골라본다.
조식은 당연히 필수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은
남이 해주는 밥이다.
조식을 먹을 수 있다면 당시엔 하지 않았던 미라클 모닝도 불사할 생각이었다.
서울 자차 여행에 가족들의 원조가 들어온다.
시어머니의 전기차로 기름값 걱정 없이 서울로 갈 수 있게 되었다.
캠핑만 거의 다니던 우리 가족이 서울로 간다니 이건 웬걸 집안 축제다.
우리가 서울 가는 게 그렇게 엄청난 이슈인가요?
서울시티버스 투어도 하기로 예약해 본다.
투어를 하면서 버스 안에서 식사를 할 수 있는 코스이다.
코리아나 호텔에서 출발하는 버스인데 바퀴 달린 건 다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새로운 추억이 될 것 같았다.
의상 오케이.
자동차 오케이.
코스 오케이.
역시나 여행은 준비하는 그 과정이 너무나 행복하다.
자동차를 출발시키기 전 빠진 건 없나 다시 돌아보고 드디어 출발이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일도 경쾌하다.
우리나라 수도로 가는 길이어서 그런가 고속도로도 넓고 시원시원해 보인다.
가면서 보이는 빌딩숲은 어찌나 큰지 아이들의 입이 떡 벌어진다.
얘들아, 너무 그러지 마.
우리도 도시 사람들이야.
마천루 숲 속에서 직장인들의 점심 메뉴도 따라서 먹어본다.
양고기 샌드위치 였는데 비리지도 않고 맛나다.
그렇다.
평일 여행이었던 것이다.
이 해방감. 주말이 아니라는 편안함은 덤이다.
마침 동대문 시장은 여름휴가다.
동대문 앞에 먹자골목에서 열심히 먹방을 찍었다.
역시 우리 가족들은 먹는 게 남는 거다.
광화문 앞에서 세종 대왕님과 이순신 장군님을 바라보며 웅장를 느끼고 남대문 시장으로 걸어가는 길은 과감히 포기한다.
청와대를 바라보며 풍수지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낀다.
역시나 대통령의 자리는 보통 자리가 아니다.
광화문 옆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사서 나오는데 여러 유튜버들이 열심히 촬영 중이다.
오우, 놀라운걸.
어느 지역을 가든 꼭 들러보는 서점. 서울도 예외는 아니다.
교보문고로 향하며 마음이 설렌다.
아이들에게도 기념으로 책을 한 권씩 사주고 나도 읽을 책을 골라봤다.
남편은 역시나 전자기기 홀릭 중이다.
코리아나 호텔 앞에서 시티투어 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는 길.
다른 시티투어 버스가 보이면 서로 미소 지으며 손도 흔들어준다.
친절한 가이드분의 소개와 위트에 여행이 한층 즐겁다.
역시 화룜점정은 돈가스 점심세트와 장어덮밥 점심세트는
오리엔탈 특급살인 속 열차의 식당칸의 식사와 감히 견줄 수 있다고 너스레를 떨어본다.
V센터에서 태권브이와 각종 로봇들과의 만남
그리고 바로 옆 인도 식당에서의 식사.
비 오는 날 남산타워와 먹을까 말까 고민하다 먹지 않은 부엉이 돈가스(돈가스는 자주 먹기에)
내려오는 길은 뭔가 아쉽다.
서울 여행을 준비하며 설레었던 시간.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시간.
아이들이 대학을 서울로 갔으면 좋겠다.우훗.
기차 한 번이면 갈 수 있는 곳이지만
그 곳에 내 아이들이 있다면 더 따뜻하게 느껴질 것 같다.
20대에는 그렇게나 서울로 가서 살고 싶었다.
지금은 좀 다르기는 하다.
그냥 내가 아는 사람이 그 곳에 있어서 가는 곳이면 좋겠다.
그래서 이번에 혼자 서울에 다녀왔을 땐 더 정겹긴 했다.
만날 사람들이 있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서울.
서울이란 단어가 주는 묘한 설렘이 있다.
서울분들은 모르시겠죠?
집값이 얼마고 살기가 어떻고는 잘 모르겠지만
잘 몰라서 더 설렐 수 있는게 있다.
벌써 아이들은 그 때보다 훨씬 더 커버렸다.
하지만 내 마음속엔
어렸던 아이들의 모습과 함께한 서울은 확연히 박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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