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상하지만 이유를 들자면 말은 즉흥적이다. 한 번 뱉으면 담기 어렵다는 옛 선조들의 말씀을 하루하루 뼈져리게 느낀다. 자기 전에 누워서 문득 낮에 한 말이 생각나면 그냥 이불킥 각이다. 이쯤이면 이불에 구멍이 나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글은 나를 생각하게 한다. 처음에는 별 희안한 외계어를 적으며 횡설수설한다. 그러다가도 다시 읽어보고 수정 거친다. 그렇게 어지러운 마음이 글 한 편으로 깔끔하게 정리된다. 아, 개운해!
좋아하는 것이 생기니 잘하고 싶은 욕심은 생기는데 마음처럼 쉽지 않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초심으로 돌아가기. 나는 어떤 글을 쓰고 싶었을까?
나의 글이 누군가에게 물이 되었으면 한다.
경험은 파렛트에 물감을 쭉 짜듯 빈 공간을 매운다. 오래 전 여름산을 힘겹게 올라간 경험은 초록색, 추운 겨울 바다가 유독 쓸쓸해 보인 경험은 파란색, 그날 그말은... 검정색. 색색이 예쁜 파렛트가 채워진다. 하지만 이 경험으로 무언가 그려보지 않는다면 그저 파렛트 위에서 굳어진 물감이 되어버린다.
그런 독자의 파렛트 위에 억지로 내 색깔을 히고 싶지는 않다. 나를 쓰고자 마음 먹게 했던 그 글처럼 나의 글도 누군가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고 싶다. 그리고 자신의 파렛트에 있던 굳어버린 물감을 하나 둘 글감으로 썼으면 한다. 나의 생각이 무엇인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한 폭의 그림같은 글을 쓰게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