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로소로 Jun 20. 2023

여름밤 서늘한 바람의 여유를 찾고 있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 여름 출산을 한다는 건 다른 계절보다 조금 더 힘들구나 생각했다. 막상 내가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매 순간이 힘들었다. 조리원에서 에어컨을 시원하게 틀지도 못해 수술부위가 빨리 아물지 않았고 산모패드 때문에 엉덩이 발진까지 참 고약한 여름이구나 싶었다.




아이가 4살이 되어서 어린이 집에 다니게 되니 조금 숨통이 틔여 여유가 생겼다. 어린이집에서 배워온 노래도 부르고 수박으로 하모니카도 불면서 재롱떠는 딸아이의 모습에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다시 시작한 일도 처음엔 힘들었지만 내 손으로 돈을 벌고 인정받음에 얼마나 기뻐서 뿌듯했다. 아이 둘 키우면서 전업주부의 삶이 왜 노는 여자가 되어버리는 건지 허무함도 돈으로 채워진다 생각에 마음이 씁쓸하면서도 육아의 고통을 알고 있는 나 조차도 외벌이 하는 가정의 부러움의 편견은 존재했다.




작년 여름 생각이란 걸 안 하던 사람이 되었던 적이 있었다. 코로나와 경기침체로 마음과 체력은 맥 못 추는 한 여름의 개처럼 헉헉 거리고 있었다. 그늘만 있으면 쉬고 싶고 눕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고 폭염에 전기세 마저 두려웠다. 아침에 눈을 뜨면 아이들을 보내고 오면 밥을 주고 씻고 잠이나 자는 무기력함에 악착같이 돈 벌 생각조차 안 했던 그 시기에 나를 잃어버리는 흐리멍덩한 삶을 살며 3년 전 의지는 완전히 꺾여 버렸다.




그쯤 지인 단체모임방에 부고장이 올라왔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카톡메시지에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았고 나조차 대수롭지 않게 그냥 흘려 넘겼다. 어느 날 밤 친구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와 기쁜 마음에 받았는데 내용인 즉 그때 나와 결혼 안 한 언니만 연락이 없었다고 섭섭해한다는 말이 전달 되었다.




아뿔싸 나 빼고 장례식장에 간 거냐 물어봤다. 친구는 그런 건 아니고 부고장에 있는 계좌로 입금만 하고 위로의 전화를 했는데 내가 연락을 안 해서 섭섭해한다는 거였다. 솔직히 계좌가 있는지도 몰랐고 시아버지까지 챙겨야 되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친구는 지금이라도 부의금을 보내고 자기가 말했다고 하지 말고 전화를 하라는 말을 전해주었다.




부랴부랴 돈을 입금하고 메시지를 남겼다. 이래저래 내가 생각을 못했다 늦었지만 마음 잘 추스르고 다음에 보자는 장문의 메시지를 남겼다. 한참 뒤 전화가 왔고 부의금 때문에 그런 건 아닌데 돈은 왜 보냈냐며 그냥 언니가 사회생활을 안 한지 오래돼서 그런 거 같다고 분명 언니아버지 장례에 갔는데 왜 연락을 안 했는지 본인이 뭘 잘못했나 섭섭했다고 찜찜함을 남겼다. 마음이 섭섭한 지인에게 너의 친정부모님이라면 이렇게 멍청하게 하지 않았을 꺼라며 내 상황과 설명을 한들 나아지지 않는다는 걸 알았기에 미안하다고만 읊조릴 뿐이었다.




머릿속은 온통 "사회생활을 안 한 지 오래되었다."만 맴돌았다. 내가 지금 일하는 건 사회생활이 아니면 무엇인가? 짜증도 나고 시아버지 장례까지 챙겨야 하나 계산기 두드리는 여자가 되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모임 때 만나는 동생이기는 하나 20년 동안 개인적으로 통화한 적도 없고 가끔 둘둘씩 따로 만나는 일들을 바라보고 섭섭함을 토로한 적이 없다. 심지어 시어머니가 병환 중에 입원해 있는 동안 시아버지가 바람이 나서 그 병원에 여자친구랑 애정행각까지 목격해 욕설퍼레이드에 같이 욕은 해줬던 기억은 있었다. 그런 사람의 부고에 신경 못 써준 여자가 되다니 억울했다. 같이 욕을 할 때는 언제고 내 모지람에 나 홀로 질책하며 그 여름밤 매미소리마저 짜증스러웠다.




마음 씀씀이가 너그러워 아니 솔직하게 말해 주머니 사정이 넉넉했다면 계산하지 않고 카카오톡에 계좌를 보지 못하였더라도 친구에게 물어봤으리라. 지금도 한 가지 감정은 모르겠다. 시아버지의 만행을 보고도 많이 슬프겠다는 위로는 안 나온다. 심보가 고약하여 가면을 쓰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정도는 말해줄 수 있을 거 같다.




그 후로 지독스럽게 여름이 두렵다. 행동에 너그러운 마음이 없고 공감 능력이 없어 생겼던지 계절의 덥고 습한 기운이 올바른 판단에 미치지 못한 핑계라 말하고 싶다. 잠이 쉬이 오지 않는 여름밤이면 지난날 일들을 곱씹어 생각에 머물다 뒷발차기까지 나오고 뒤척이며 잠이 든다.







매년 여름을 탓하며 무기력함에 지지 않으려 노력한다. 깨어 있는 생각들로 채우고 싶어 이것저것 읽고 있다. AI처럼 집중이 잘 되냐 물어본다면 아니라고 쌓여가는 책들이 단호하게 말해준다. 기계가 아닌 사람이라 맥주도 고기도 초콜릿도 넣어줘야 한다.




여름밤 서늘한 바람의 여유를 찾고 있다.
한 계절이 무사히 지나 너그러움이 머물기를 두렵지 않은
여름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골라보는 재미가 있는 [사브작매거진]

구독을 통해 개성 있는 11명 브런치 작가들의 글을 받아보세요.

매주 새로운 글감의 11개 이야기가 배달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글의 농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