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만으로 나이를 한 살씩 더해간다. 나이 먹는 만큼 철도 들어야 하는데 이번 생일은 왠지 그러기 싫다. 그러니 한 살이라도 더 먹기 전에 나만의 철없는 버킷리스트 하나씩 지워간다.
1. 애들 젤리 간식 몰래 훔쳐먹기
비염, 알레르기로 아이들의 간식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겨울 특미인 호빵이나 붕어빵 정도는 눈 감아 주었지만 시도 때도 없이 편의점에 들러 과자를 사 먹는 것은 경계했다. 하지만 나에게도 왕년에 마이ㅁ 포도맛 젤리 좀 깠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아이들이 없는 틈을 타 하리ㅂ 젤리 5 봉지를 내리 까 먹었다. 달달한 과일향이 입 안 가득 퍼졌다. 용돈만 생기면 젤리부터 사 먹으러 갔던 때가 생각났다. 지금은 공돈이 생길 리가 없다.
2. 무선 청소기 총(?) 들고 아이들 마중 나가기
청소기를 돌리면 집에서 아이들과 한 번씩 하는 놀이가 있는데 바로 "총싸움". 싸움놀이를 너무나 좋아하는 아들과 역할놀이를 즐기는 딸 모두에게 통하는 놀이이다. 청소기 돌리는 소리가 들리면 아이들 목소리가 들린다. "엄마가 무기를 들었다! 숨어!" 그럼 얼씨구 아이들 놀이에 장단을 맞춰준다. "너희들은 포위됐다! 무기를 버리고 항복해라!" 청소기 윙~ 소리와 아이들 까르르 소리가 섞여 다시 먼지가 풀풀 날리는 아수라장이 펼쳐진다. 이 짓을 아이들 피아노 마치고 사이좋게 걸어오는 길에서 한다고 서 있었다.
너희, 오늘 이 골목 잘못 택한 거야...
3. 설 앞둔 고물가 시대 비싼 딸기 사 먹기
내 생일이기도 하지만 10년 전 첫 아이를 임신하고 있던 때이기도 하다. 그 시기 남편은 해외 출장이 잦아 임신 초기의 나를 돌보지 못하는 것을 친정 부모님은 걱정하셨다. 친정 아빠가 항상 퇴근길에 전화로 뭘 먹고 싶냐고 묻곤 하셨다. 입덧이 심했던 터라 제대로 먹을 수 있는 것이 없었는데 유독 목구멍으로 선뜻 넘길 수 있었던 음식이 있었다. 바로, 딸기. 1월은 딸기가 가장 맛있고 비싼 시기이다. 하필 이때 뱃속 아이가 딸기를 원했다. 그렇게 친정 아빠는 퇴근길 틈이 나면 가장 빨갛고 예쁜 딸기를 사다 주셨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겨울딸기를 보면 마음 한켠이 찡하다.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무작정 단골 과일가게를 갔다. 그리고 500g짜리딸기 두 팩을 샀다. 가족들과 저녁에 먹으며 이야기해 줘야지. 할아버지가 사준 예쁘고 맛있는 딸기 먹고 너를 이렇게 예쁘게 낳은 거라고.
새해 목표를 새운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운동, 독서, 경제공부 등으로만 계획을 세웠는데, 사실 부담스러웠다. 아직 1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시간이 얼마나 나를 배려하지 않고 빨리 흘러가는지를 알기 때문에 더 긴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이 앞으로 남은 날 중 내가 가장 젊을 때가 아닌가. 가족 중 맏이로, 아이들 엄마로 항상 모범이 되어야 하는 사람이 되었던 시간보다 오늘의 철없는 행동들이 앞으로의 나를 더 웃게 만들어 줄 것임을, 나는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