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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틈 Oct 18. 2024

엄마, 뽑기 해도 돼요?

그렇게 부모가 된다 / 정승익


일일 플리마켓이 열렸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 조그맣게 하는 것이었지만

푸드트럭도 오고 어린이용 액세서리들도 판다고 하니

나도 아이들도 구경 갈 생각에 조금은 들떠 있었다.

그런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복병이 숨어있었다.


바로 뽑. 기.

2000원 1판, 5000원 3판.

저걸 2000원이나 주고 살 일인가 싶은 불량식품과 싸구려 장난감들이 즐비했다.

1등부터 5등까지 상품이 달랐는데 5등 걸리는 날에는

감성보다 가성비를 챙기는 나로써는

기분이 좋지 않으리라 예상했다.


그때 내 소맷자락을 잡아당기며 아이가 물었다.

역시 아이의 질문은 내 예상을 비껴가지 않았다.

"엄마, 뽑기 해도 돼요?"






정승익 작가님 신간 <그렇게 부모가 된다>에서

읽은 두 구절을 소개하고 싶다.


덴마크의 실존주의 철학자
쇠렌 키르레고르는
우리가 무언가 선택을 내릴 때의
두려움과 불안을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것에
비유했습니다.


한 번의 선택을 되돌릴 수는 없다.

그래서 더욱 선택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긴장일 수밖에 없다.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떤 아이에게는

'걱정되지만 한 번 정도 시도해 볼 수 있겠다'싶은 수준일 것이고,

어떤 아이에게는 '잘못되면 어쩌지?' 하는 불안으로 다가올 것이다.

같은 배에서 나왔지만 너무 다른 우리 집 남매 역시 이런 성향을 고루 나눠가졌다.

어른들이 늘 말씀하시는 "너희 둘 반반 섞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이 우리 집에도 해당된다.



 부모는 영원히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이 시간은 참 힘들지만,
부모에게 주어지는
선물 같은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함께 하는 시간 동안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는
이미 답이 나와 있습니다.



길어야 20년, 사춘기를 빼면 15년 정도의 시간을 함께 할 것이다.

100세 시대에 길어야 20년이면 1/5도 안 되는 시간이다.

잔인하지만 현실이다.


아이들은 그 선택이 본인에게 모험이 되든 공포가 되든

부모 없이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 온다.

반드시 오고야 만다.

나와 아이가 함께 하는 "유한한 시간"을

어쩌면 아이의 독립을 위해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




견물생심이라고 아이들이 얼마나 뽑기를 하고 싶을까.

그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딱 한 판만'을 약속하고 2천 원씩 쥐어줬다.

결과는 역시 5등. 쌤통이다. (아까워, 내 돈...)

"됐지? 엄마 저녁 준비해야 하니까 먼저 들어간다. 너희는 좀 더 놀다 와."


급히 저녁 준비를 하는 와중에 첫째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나 뽑기 한 번만 더 해보면 안 돼? 진짜 한 번만, 응?"

순간 팔팔 끓는 콩나물국보다 속이 더 끓어올랐다.

"안 돼! 그 앞에서 서성거릴 거면 당장 들어와!"

목청껏 소리 지르고 전화를 끊었다.

돌아서자마자 '아차!' 했다.

아이에게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고

무조건 No!부터 외쳐버렸다.

멀쩡히 두 다리로 알아서 걸어 다니는 아이들을

아직 내 품 안에 자식처럼 이래라저래라 하고 있다니.


저녁식사를 하면서 먼저 입을 뗐다.

"엄마가 왜 너희 뽑기 못하게 한 줄 알아?"

"돈 아까워서?"

"맞아. 근데 좀 더 자세히 얘기하면...

너희 금요일마다 받는 용돈이 2000원이지?

그런데 너희 용돈으로 뽑기를 한다고 생각해 봐.

1판에 2000원이었으니까... 용돈을 하루, 아니 5분도 안 돼서 모두 탕진해 버리는 거야.

어른들 세계에서는 그걸 '도박'이라고 부르지."

"아! 학교에서 배웠는데! 도박!"

"아빠가 한 달을 열심히 일해서 벌어온 월급을

엄마가 재미있는 놀이에 빠져 하루 만에 다 써버리면 우리 집이 어떻게 될까?"

"배고파서 못 살아요..."

"엄마가 용돈을 줘도 매번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을 엄마, 아빠가 사주니까

너희가 그런 것을 생각해 볼 여력이 없었던 것 같아.

앞으로는 용돈을 더 올려줄 테니

엄마가 없을 때는 용돈으로 해결해 보렴.

사도 되는지 전화로 물어보지 말고 스스로 결정하기.

너희 결정에 대한 책임은 너희 용돈으로 지는 거야."

"네, 엄마!"

 

대답은 철석같이 잘하는데

실상은 안 봐도 눈앞 선하다.

첫째는 사고 싶은 것 앞에서 어쩔까

발을 동동거릴 것이고

둘째는 편의점으로 친구들을 몰고 가서

골든벨을 울릴 것이다.

이렇게든 저렇게든 아이들은 자기 나름의 경험 데이터를 쌓을 것이다.

그것이 앞으로 성인이 되어서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자양분이 되기를

부모로서 믿고 지켜봐 줄 뿐이다.


그렇게 나도 "부모"가 되어간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무료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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