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책이 마이너한 주제에다 깊이가 있으니 독자층이 좁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성별이나 연령에 대해서는 깊게 고민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어어..어?'하면서 대답도 못하고 그냥 넘어갔습니다.
예전에 출판사에 출간제안서를 던질 때는 막연하게 타겟독자층으로 '대학생 등 국제 이슈에 관심 있는 성인'으로 적어냈습니다. 팔레스타인과 반식민주의는 어쨌든 국제적 이슈라 성별에 관계없이 다양한 연령층이 두루두루 읽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인 말이 맞더군요. 그동안의 판매 실적을 보면 젊은 층보다 중장년층에서 더 인기가 있고, 압도적으로 남자가 많습니다.
책이 출간되고 3개월 동안 450권이 판매되었습니다. (두꺼운 역사책으로서는 성공이고, 일반 책과 비교하면 '살아남은 책'으로 볼 수 있을 정도의 실적입니다.) 그런데 판매량의 약 절반가량은 사실 도서관이고 일반 독자는 나머지 절반에 불과합니다. 그중에서 여성, 특히 젊은 여성은 찾기 힘듭니다. 아래는 160권을 판매한 알라딘의 통계입니다.
통계를 보면, 여성 독자의 비율은 28.1%로 남성(71.9%)보다 현저히 낮습니다. 여성 중에서는 30대가 많지만 20대가 워낙 낮으니 '젊은 여성'은 11.7%에 그칩니다.
중장년층에 비해 젊은 층이 적게 읽는 것도 의외였지만, 여성 독자가 적은 것은 더 의외였습니다. 팔레스타인 문제는 '국제정치/사회/개발' 분야에 속하고 여성의 관심이 높습니다. 그런데도 독자가 적다는 건 여성의 독서량이 남성보다 낮아서일까요?
궁금해서 통계청의 <2019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를 살펴봤습니다.
- 1권 이상 종이책을 읽은 독서 인구는 여성(53.9)이 남성(50.4)보다 높습니다.
- 놀랍게도 젊은 층의 독서율이 중장년층보다 훨씬 높습니다.
19~29세 70.4%
30~39세 68.7%
40~49세 57.6%
50~59세 43.5%
60세 이상 31.5%
- 독서자만을 대상으로 한 연간 평균 독서량은 11.8권으로, 남성(11.3)과 여성(12.2)이 비슷하고, 젊은 층과 중장년층의 독서량도 비슷합니다.
19∼29세 11.4권
30∼39세 11.0권
40∼49세 12.5권
50∼59세 10.9권
60세 이상 13.3권
종합하면, 젊은 여성의 독서율이 낮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남성이나 중장년층보다 조금이라도 많이 읽습니다. 그러나 '두껍고' '(정치적인) 역사책'을 읽지는 않는 모양입니다. 통계에서 정치, 사회, 시사 부문의 도서 선호도가 남성은 6.1%인 반면, 여성은 1.5%에 그칩니다.
*가정-육아-요리 부문의 남녀 차이도 주목할 만하네요.
그러니 결국 지인의 말이 맞았네요. 젊은 여성에게 '이런 책'은 안 맞나 봅니다. 그런데 국제/개발 부문에서 남성보다 여성의 활약이 더 두드러지기 때문에 여성 독자가 아무리 적어도 남성만큼은 많아지기를 바라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또한, 독서 인구가 적은 중장년층보다도 젊은이들이 멀리하는 책이라는 점도 고민해봐야 할 숙제네요.
여담이지만 통계청의 가장 최신 조사인 2021년 독서인구실태조사도 들여다봤습니다. 여기에는 성별에 대한 조사가 없어서 2019년 조사를 인용했지만, 2021년 보고서에도 나름 중요한 내용이 있어서 공유합니다.
그래프를 보시면 독서인구가, 특히 종이책 독자가 2017년부터 급감해서 2021년에 40.7%를 기록하는 것이 보입니다. 종이책과 전자책, 오디오북을 합친 종합 독서인구 수치도 47.5%밖에 안 되네요.
이때로부터 3년이 지난 현재는 얼마나 더 떨어졌으려나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무식하다고 놀리는 미국인의 독서 인구는 오히려 10%가량 높더군요.
아는 만큼 말할 수 있고 아는 만큼 정의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법입니다. 미국에서는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자국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날로 커지는 배경에는 이런 지력의 차이도 있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