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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환빈 May 26. 2024

4분상식| 이스라엘 정착촌? 점령촌? 정답은 ...

뉴스에서 간혹 이스라엘 정착촌이라는 용어를 보게 되는데요, 이는 서안지구와 가자지구 안에 지어진 유대인 마을을 일컫습니다. 서안과 가자지구는 현재 이스라엘이 '점령 중'이지만 유엔은 팔레스타인 국가의 영토로 공인합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이 불법적으로 마을을 지었기 때문에, 일부 친팔레스타인 한국인 작가들은 정착촌을 '점령촌'으로 번역해 비판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점령촌은 이제 꽤 널리 사용되는 듯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점령촌은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점령당한 마을을 의미합니다. 즉, 유대인 마을이 아니라 이스라엘에 점령당한 팔레스타인 마을을 가리킵니다. 완전히 정반대의 뜻인 거지요. 정착촌을 비판하고자 대안적인 용어를 찾고자 한다면, 학술적으로 정확한 용어가 있습니다. 바로 식민촌입니다.


사전적으로 정착촌(settlement)은 타지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정착해서 지은 거주지를 일컫습니다. 그런데 이주한 지역이 자기 집단의 영역, 즉 국내나 같은 문화권이 아니라 외부에 독립적인 마을을 지을 경우에는 식민촌(colony)으로 표기합니다. 바로 이스라엘의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지요.


실제로 이스라엘 건국 이전까지 팔레스타인 땅에 지어진 모든 유대인 마을은 식민촌(colony)으로 표기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1881-2년부터 유럽에서 이주해 와서 마을을 지었고, 토착민인 아랍인들의 문화나 언어를 받아들이지 않는 배타적인 마을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도 처음에는 자신들의 마을을 식민촌이라고 불렀습니다. 식민주의가 보편적이었던 당시 유럽에서는 식민촌이라는 용어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점차 정착촌(히브리어로 이슈브)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되는데, 팔레스타인이 유대인들의 역사적 고향이고 자신들이 정당한 주인이라는 인식을 담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해외에서 온 이주자인 것은 누가봐도 명확했기 때문에 국제적으로는 통용되지 않았습니다. 1918~48년 간 팔레스타인을 지배한 영국 정부 역시도 공식적으로 식민촌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1948년에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식민촌/정착촌이란 용어가 사라집니다. 이제는 식민촌이 유대인 국가 안에 지어진 평범한 유대인 마을이 되었으니까요. 그러다 1968년부터 서안과 가자지구에서 유대인 마을을 짓기 시작하면서 '정착촌'이라는 용어가 부활합니다.


아래 지도는 서안지구 지도이며, 음영 표기된 모든 땅이 정착촌 구역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가자지구에서는 무장투쟁의 위협으로 인해 2005년에 정착촌이 철수했습니다.


유엔은 당시부터 현재까지 서안과 가자지구를 팔레스타인인들의 영토로 정의하고 이스라엘의 지배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유대인 마을은 과거처럼 식민촌이라 부르는 게 옳지만, 서구 국가들은 앞에서만 비판하고 뒤에서는 이스라엘의 실효적 지배를 인정했기 때문에 정착촌이라는 용어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2012년에 유엔은 팔레스타인을 서안과 가자지구를 영토로 둔 '국가'로 인정합니다. 서구 국가들이 이스라엘의 점령을 인정하는 것과는 관계없이, 서안과 가자지구에 있는 유대인 마을들은 이제 명백히 식민촌이 되었습니다.


여담으로 이스라엘이 서안과 가자에서 어떻게 식민촌을 건설했는지도 살펴볼까요? 두 가지 방법이 사용됐습니다. 하나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토지 소유권을 강탈하는 것이었습니다. 등기부등본이 명확하지 않다거나, 과거에 유대인들이 소유한 적이 있다는 등의 빌미가 동원됐습니다.


특히, 농지를 빼앗는 수단으로 널리 이용된 조항이 있었는데, 바로 3년 이상 농지를 경작하지 않을 경우 토지소유권을 박탈한다는 규정이었습니다. 이 법은 오토만 시기부터 대대로 내려온 법으로 경작자가 땅의 주인이라는 올바른 취지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수자원을 대거 약탈하고, 농민들이 농지 인근의 우물이나 암반수 등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아서 농사를 방해한 뒤 3년이 지나면 '합법적'으로 토지를 뺐는 구실로 악용하고 있습니다.


식민촌 건설을 위해 빈번히 사용된 또 다른 방법은 바로 유대인 테러리스트였습니다. 총칼로 무장한 테러리스트들은 농지에 불을 지르고 주민들을 쫓아낸 후 거기다가 자신들의 마을을 세웠습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땅을 되찾으려고 돌을 던지며 저항하면 이스라엘 군인들이 파견돼 무차별 학살을 자행했고요.


테러리스트들은 심지어 도시 한복판에다가도 식민촌을 세웠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 예루살렘 다음으로 가장 큰 도시인 헤브론의 구시가지에는 지금도 식민촌이 여러 개가 있습니다. 식민촌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스라엘은 헤브론 내부 곳곳에 검문소를 세우고 주민들의 이동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출처 : Wafa)


검문소를 통과하는 와중에 팔레스타인인들은 신체적, 정신적 학대를 빈번히 당합니다. 헤브론에서는 아이들이 등하굣길에도 검문소를 지나야 하고, 그러다 군인들에게 폭행당하는 일도 종종 발생하기 때문에 유니세프 등의 국제기구와 인권단체들이 통학을 돕습니다.


(출처 : UNICEF)


헤브론에는 이슬람 제4의 성지라고도 불리는 이브라힘 모스크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모스크의 일부를 강제로 분할해서 유대인들의 시나고그로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도 모자라, 모스크의 출입구에다 검문소를 설치해서 출입을 통제합니다. 때로는 유대인들이 모스크 안에 들어가서 기도할 있도록 무슬림의 출입을 며칠간 완전히 금지시키기도 합니다.


이런 맥락을 살펴보니 어떠신가요. 정착촌보다는 식민촌이라는 용어를 써야 할 동기가 명확해지지요? 정착촌이라는 용어는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사용하는 고유명사로서는 올바른 표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보통명사로서의 정착촌은 명백히 오기이며 식민촌이 바릅니다. 따라서 식민촌을 우리 사회의 표준 용어로 삼아야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책 <팔레스타인, 100년 분쟁의 원인>에서는 정착촌으로 표기하고 식민촌 표기가 올바르다는 상기 내용을 주석으로만 달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팔레스타인의 역사나 현재, 그리고 식민촌의 정의에 대해서도 아는 게 없다 보니 식민촌이라는 표기를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용도에서 만든 억지 단어로 인식할까 봐 두려워서였습니다. 실제로 국내 친팔레스타인계 이런 취지에서 점령촌이라는 오기를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니까요.


한 달 후 출간될 <언론이 말하지 않는 가자지구 전쟁의 진실>에서는 식민촌을 쓸지 아니면 정착촌을 쓸지 아직도 고민 중입니다. 하루라도 빨리 우리 사회가 진실을 알 수 있을 만큼 기초적인 지식이 보급되기를 바랍니다.




이번 글을 끝으로 브런치북 <팔레스타인 역사 용어 길라잡이>를 마칩니다. <길라잡이>는 팔레스타인에 대해 전혀 모르는 일반 독자들에게 용어를 중심으로 역사를 쉽고 흥미롭게 설명하고, 특히 국내에 잘못된 번역을 바로잡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매주 일요일 연재를 하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글을 읽어주셔서 놀랐고 또 힘이 었습니다. 게다가 일요일 책 판매량도 늘어서 행복했네요. 계속 연재를 하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점점 욕심이 생겨서 취지와는 달리 어려운 내용을 적고 있는 걸 보고 접기로 결심했습니다. 처음에는 2분 상식으로 시작했는데 이제는 기본이 4분상식이네요.


앞으로는 새로운 시리즈로 글을 올리고자 합니다. 쉬운 글을 쓰고 싶지만 번번이 한계를 느끼다 보니 그냥 내용은 어렵더라도 흥미로운 구성으로 글을 써보는 게 어떨까 싶기도 하네요. 가령,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논쟁 100문 100답' 같은 것을 고민 중입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쓰다 보면 어려워져서 그냥 책으로만 내게 될 것 같기도 하네요...


아무튼, 앞으로도 팔레스타인 문제의 진실을 널리 알리기 위해 힘쓰겠습니다. 그동안 읽어주신 모든 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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