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이자 1인 출판사를 운영하며 알게 된 사실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인터넷이나 출판 관련 책 여기저기 열심히 찾아보면 비슷한 내용이 나올 수도 있긴 할 텐데, 어차피 오늘 지인을 위해서 쓴 글이라 조금만 가다듬어 올려봅니다.
1. 출판사 선정의 기준
원고를 다 쓰고 나면 가장 고민되는 게 어떤 출판사가 내 글을 받아줄까입니다. 자신이 유명작가가 아니라면 원하는 대로 출판사를 정한다는 건 꿈같은 일에 가깝습니다. 특히 대형출판사의 문턱은 높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무 출판사에나 수십~수백 건 동시투고를 하는 편이지요. 출판사들은 이런 무차별 투고를 싫어하지만, 동시 투고를 하지 않으면 출판사 선정기간이 짧게는 수주에서 길게는 1년 이상 걸리게 됩니다.
이렇게 무차별 동시투고를 하면 보통 복수의 출판사로부터 동시에 응답이 옵니다. (아니면 아예 실패하거나요.) 그럼 이때부터 어떤 출판사와 계약을 맺으면 좋을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인세(정가의 7~12%)는 얼마인지, 저자부담분을 요구하는지, 출판사 재정은 건전한지, 판권계약기간은 얼마인지, 편집디자인을 잘하는지 등등
* TIP : 출판사 계약 알아볼 때 반드시 전자책 인세는 얼마인지 같이 물어보세요! 전자책 인세는 꽁꽁 숨겨두고 말 안 하다가 계약 당일에 갑자기 낮은 비율을 제시하는 사례도 많습니다.
출판사를 선정할 때 저자가 고민할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정말 중요한데도 흔히 간과하는 게 있습니다. 바로 출판사가 내 책을 열심히 홍보해 줄 것인가입니다. 아무리 인세가 높더라도 책이 잘 안 팔리면 별 의미가 없겠지요. 더군다나, 잘 모르시는 분들은 그냥 막연히 '출판사 규모가 클수록 아무래도 홍보 잘해주겠지?'라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알려드립니다.
* 출판사는 규모가 영세합니다. 약 90%의 출판사가 4인 이하 규모입니다. 이 글에서는 편의상 소형 출판사를 이들로 정의하고, 대형출판사는 나머지 10% 이내의 출판사를 가리킵니다.
2. 대형/소형 출판사의 차이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출판사에서 책 홍보를 위해 하는 일은 매우 제한적입니다. 광고수단은 많지만 시중의 90~95% 이상의 책들은 광고비를 회수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대형 출판사의 경우에는 베스트셀러의 가능성이 있는 유명인 저자의 책만 돈을 들여서 홍보합니다. 그 외에는 언론과 자사의 SNS에 신간이 나왔다고 알리는 게 전부입니다.
이 때문에 출판생태를 좀 아는 작가분들은 자기 책을 적극적으로 팔아줄 것 같은 소형 출판사를 선호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소형출판사는 어차피 유명인 저서의 판권을 따내지 못하기 때문에 일반 저자의 글을 최대한 잘 팔아보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3. 홍보 유형
1) 사재기 - 아이돌 음반 판매와 마찬가지로 책도 사재기가 흔합니다. 불법이지만, 이게 가장 판매 순위를 빠르고 "저렴하게!" 올리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대형출판사가즐겨 사용하며, 베스트셀러가 된 많은 작품이 사재기로 순위를 올려놓은 뒤 글이 좋아서 판매가 지속되는 방식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최근에는 단속과 도서 시장 위축 등으로 사재기가 줄어들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2) 언론 릴리스 - 책을 언론에 배포해 기사를 써달라고 요청하는 걸 언론 릴리스라고 말합니다. 북피알미디어라는 대행사에 소정의 금액을 책과 함께 주면 언론사에 전달합니다. 담당기자들은 출판사가 만든 보도자료(책 홍보글)와 책을 보고 기사에 실을지 여부를 정합니다. 기자와 연줄이 있는 (대형)출판사가 유리합니다.
3) 서점 온라인/매장 유료광고 - 대형서점의 온라인 광고는 적게는 50 많게는 200-300이 들고, 교보 매장평대 POP광고는 20만 원~150만 원 정도입니다. 거의 모든 책은 이런 광고를 해도 잘 안 팔려서 적자를 냅니다. 그래서 출판사들이 이런 유료 광고를 하는 경우는 신간 발매 직후로만 한정됩니다.
4) 온라인 카페 등 홍보글 - 네이버, 다음 카페 등에 홍보 게시글 올리는 것으로 소형출판사가 주로 사용합니다.
5) 유튜브 쇼츠, 릴스 영상 - 요즘은 쇼츠랑 릴스에 북트레일러 만들어서 올리는 게 비용대비 가장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6) 작가가 관련 글 작성해서 판매 촉진 - 작가가 네이버블로그나 브런치에서, 혹은 카페를 만들어서 같은 주제로 글을 쓴 후 책을 홍보하는 방식입니다. 요새는 거의 필수로 여겨지고, 소형 출판사에서는 대놓고 요구합니다.
7) 출판사 팬덤 - 일부 대형 출판사는 수많은 팬덤을 거느리고 있고, 자체 홍보채널(유튜브 등)을 운영합니다. 따라서 별도의 외부 홍보 없이도 어느 정도의 판매가 보장됩니다.만약 업계 탑급의 대형출판사에서 출간 제의를 받으셨다면, 홍보 면에서는 무조건 최고의 선택지라 할 수 있습니다.
4. 교보 평대/서가 진열 기준
많은 작가들이 교보 매장에 책이 진열될지를, 그것도 서가가 아닌 평대에 진열될 수 있을지를 궁금해합니다. 사실상 책의 성공 유무를 따질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책이 처음 나오면 출판사가 교보담당자와 협의해 매장에 나가는 '초도물량'을 정할 수 있습니다. 이런 협의를 거치지 않거나 판매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비인기 서적은 10부, 약간 희망이 있는 건 50부, 잘 팔릴 것 같다 싶으면 100부, 유명인 책이면 그 이상이 됩니다.
초도불량 10부 -> 광화문 지점 등 몇몇 매장 서가에 1권씩 꽂히고 끝입니다.
초도물량 50부 -> 지점 20곳 정도에 나가고, 각 지점에서 평대/서가 진열 여부를 결정합니다. 지점 매니저가 보기에 판매 가능성이 있으면 신간평대에 꽂아줍니다.
초도물량 100부나 그 이상 -> 교보 모든 지점에 배포되고, 광화문 지점 등에는 신간평대에 무조건 오른다고 보면 됩니다.
신간평대에 오른 작품은 1주-4주 동안 판매량을 보면서 판매가 좀 된다 싶으면 일반 평대로 이동시키고 아니면 서가로 갑니다. 일반 평대에서도 판매량이 낮아진 뒤에는 서가로 옮겨갑니다.
대형출판사와 계약하면 초도물량을 정할 때 매우 유리합니다. 다만, 베스트셀러나 참고서 같은 특정 유형의 책이 아니라면 평대에서도 잘 안 팔립니다. 대부분의 책은 온라인 판로가 생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보 매장(평대 + 서가)에 진열되는 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공짜로 홍보효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초도물량이 50부에 그쳤다면, 지방에 있는 작은 지점에는 영영 진열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합니다. (출판사가 별도의 수고를 들이면 되긴 합니다.)
5. 대형 vs 소형 출판사, 선택의 순간
만약 대형출판사가 교보 초도 물량으로 100부 이상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면 계약하는 게 좋습니다. 물론, 결정권자는 교보이기 때문에 출판사가 확언하더라도 결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대형출판사와 계약할 경우 이거랑 언론에 실리기 유리하다는 점 말고는 기대할 수 있는 게제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자신이 유명작가이고 책이 베스트셀러 급으로 인정받는 경우에는 예외지만요.
만약 출판사가 100부 초도물량에 확신을 보이지 못한다면, 실제로도 50부밖에 안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50부는 소형출판사에서도 충분히 얻을 수 있는 조건이기 때문에 책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소형출판사와의 계약이 '판매' 면에서는 더욱 유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출판사가 계약 전까지는 돈 들여서 홍보를 해 줄 것처럼 의욕적이다가 막상 책 나온 뒤에는 태도를 시큰둥하게 바꿀 수 있습니다. 어쨌든 출판사의 목적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넷째도 수익창출이라서 첫 1-2주간 판매량이 별로 안 나온다면 본전을 못 뽑을 거라 보고 지출을 아끼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소형출판사의 또 다른 문제점은 재정적으로 부실하여 문을 닫을 우려가 있다는 것입니다. 내 책은 잘 팔리고 있는데 출판사의 다른 책들이 안 팔려서 파업신고를 하게 되면... 이때부터 골치 아파지게 됩니다. 그러니 재정이 안정적인 출판사가 좋지만, 이걸 확인하는 게 어렵지요. 게다가 75~80%의 출판사가 1인출판사입니다. 이런 출판사들은 1년에 출간하는 책이 많지 않기 때문에 가장 홍보를 열심히 해줄 수 있지만 재정건전성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상기 제반 사항을 모두 고려해서 내 책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는 게 중요합니다. 한 가지 중요한 팁을 드리자면, 상세페이지(세로형으로 된 설명그림)와 카드뉴스, 그리고 북트레일러를 만들어줄 것인지물어보세요. 이 세 가지는 온라인 판매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 매우 큰 데도 하나도 만들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북트레일러는 그렇다 쳐도 상세페이지와 카드뉴스는 꼭 있어야 합니다. 구두나 계약서에 조건으로 넣거나 적어도 구두로라도 약속을 받아내시고, 만약 이걸 거절하는 출판사라면 홍보에 대한 기대는 접으시는 게 좋습니다.
브런치에 작가 출판 경험담을 보면 가슴 아플 때가 많습니다. 정말 놀랍게도, 출판사 사장이 작가가 홍보를 안 해서 책이 안 팔린다고 면박을 주고, 심지어 손익분기점 안 넘었다고 인세를 안 준 사례도 있네요. 엄연히 계약 위반이지만, 출판사가 책 내고 적자라고 하니작가가 미안해서 그냥 넘어간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