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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환빈 Oct 11. 2023

팔레스타인 국가 안의 팔레스타인 난민들

이 글은 2023년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인 『팔레스타인, 100년 분쟁의 원인 :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서』의 제1장에서 발췌하였습니다.


2.4. 팔레스타인 국가 안의 팔레스타인 난민들


언덕에서 내려와 인근 마을로 향했다. 운 좋게도 마을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라말라로 가는 세르비스를 바로 탈 수 있었다. 차에 앉으니 너무 편해서 이대로 그냥 숙소까지 바로 가버렸으면 하는 마음이 자연스레 일었다. 그래도 이대로 일정을 마치기에는 아쉬워 라말라 바로 북쪽에 있는 잘라존 난민촌(Jalazone refugee camp)에서 내렸다. 난민촌이라 하면 보통은 전쟁이나 천재지변, 질병, 박해 등을 피해 온 제3국의 국민이 임시로 거주하는 곳이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에서는 그렇지 않다. 이곳에는 사실상 자국민으로 분류되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길게는 70년 넘게 살고 있다.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처음 보면 깜짝 놀랄 수 있다. 천막이 아니라 콘크리트 집으로 되어 있어 얼핏 보면 다른 도시나 마을들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잘라존 난민촌에도 번듯해 보이는 콘크리트 집들이 들어서 있다. 난민치고는 팔자가 좋다는 생각마저 들 수 있겠지만, 콘크리트 집은 오히려 난민의 역경을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천막에서부터 시작된 난민살이가 한 해 두 해를 거듭해 가고 생활환경은 악화하는데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가망이 전혀 보이질 않으니 유엔이 지금과 같은 반영구적인 형태의 건물을 지어준 것이기 때문이다. 난민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권리를 부정당할까 봐 지원을 거부했으나, 유엔의 팔레스타인난민구호사업기구인 UNRWA(United Nations Relief and Works Agency for Palestine Refugees in the Near East)가 좋은 주거환경이 귀환권을 침해하는 것은 아니라며 적극적으로 설득했다.(1)


사진. 이스라엘군에 쫓겨 천막과 동굴, 막사에서 지던 1948-50년대 초의 모습들. 사진은 UNRWA에서 제공.



사진. 잘라존 난민촌의 어느 번듯한 주택과 전경. 이렇게만 봐서는 도시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전경 사진은 UNRWA에서 제공함.


1948년의 전쟁은 72.6만 명의 팔레스타인 난민을 만들어냈다.(2) 이스라엘이 점령한 지역에서 무려 84.5%의 주민들이 피란길에 오른 것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 난민들은 고향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이스라엘은 국경을 막고 귀환하는 자들을 사살했다. 난민들은 당시 이스라엘에 점령되지 않았던 유일한 지역인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나 다른 아랍 국가들에서 피란 생활을 이어가며 생존을 위한 끝없는 투쟁을 해야만 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1948년을 나크바(Nakba, 재앙)의 해라 부른다. 7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오늘날 거의 모든 난민들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 후손들이 여전히 난민으로 살면서 고향으로 돌아갈 권리를 이스라엘에 요구하고 있다. 1948년에 추방된 난민자손의 수는 이제 6백만 명을 넘는다. 그들은 전 세계 어느 나라의 난민보다도 수가 많고 20세기 이래 가장 오랫동안 난민 생활을 하고 있다.(3)


[우리에게 익숙한 유엔 난민기구는 팔레스타인 난민을 제외한 다른 지역의 난민만 지원한다. UNRWA가 먼저 창설되고 아랍 국가들이 UNRWA의 독립성을 유지하길 원했기 때문이다.]


지난 70년간 유엔은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고향(즉, 오늘날 이스라엘의 국토)으로 돌아갈 권리가 있다는 결의안을 백 번도 훨씬 넘게 재확인했다. 이스라엘은 이를 거부하고 오히려 해외에서 유대인을 들여와 난민들의 고향에 정착시켰다. 게다가 1967년에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를 점령했을 때도 추방 작전을 실행해 35만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을 요르단과 시리아 등으로 피란하게 만들었다. 그들과 그들의 자손들은 팔레스타인 국가가 건국된 지금에도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 있는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이마저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4)


난민의 역사를 새기며 약간은 무거운 마음으로 난민촌으로 들어섰다. 몇 걸음도 떼기 전에 갑자기 누군가가 수줍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집 앞마당에서 10대 소녀 세 명이 테이블에 앉아 까르르 웃으면서 손을 작게 흔들고 있었다. 어차피 이제는 시간이 넉넉하니 편한 마음으로 다가가 인사를 했다. 소녀들은 그 나이대 특유의 왕성한 호기심으로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다. 우리라면 부끄러워서 말 한마디 걸기 민망할 정도의 영어 실력이었지만 이 아이들은 개의치 않았다. 역시 이런 적극성이야말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영어를 잘할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던지는 질문은 언제나 비슷하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인상은 어떤가, 무슨 일을 하느냐, 한국은 위험하지 않은가 등등. 팔레스타인에 오기 전에는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악행에 대해서 열심히 설파할 거라고 상상했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저 대화하다가 곁가지로 나오거나 이스라엘과 관련된 사건을 먼저 물어보면 대답해 줄 뿐이었다.(*)

* 3년 동안 단 한 명을 제외하면 어떤 팔레스타인인도 먼저 이스라엘과 관련된 주제를 꺼내지 않았다. 다만, 이는 개인적인 경험이므로 경향성으로만 받아들이기 바란다.


그들은 손님과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는 걸 선호한다. 수다를 떠는 동안 아이들은 시종일관 명랑했다. 잠시도 미소가 사라질 틈이 없었다. 티 한 점 없는 이 얼굴에서 누가 난민살이의 한을 읽어 낼 수 있을까. 그러나 난민들의 수난의 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난민촌에는 그 흔적들이 지금도 새겨지고 있다.


소녀들과 작별하고 난민촌을 구경하러 나섰다. 잘라존 난민촌은 다른 난민촌보다 유달리 발전한 곳이다. 예전에 한 택시 기사는 이곳이 도시 같다고 말했다. 대로는 비교적 넓고 깨끗하고 새로 지어진 건물들이 많다. 다른 난민촌에서처럼 하수가 역류하거나 쓰레기가 군데군데 버려져 있는 지저분한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건물들이 틈새가 거의 없이 따닥따닥 붙어 있는 모습은 여지없이 난민촌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난민촌은 불어난 인구를 감당하지 못해 인구 밀도가 매우 높다. 수직으로 증축할 기반이 없는데도 무리하게 3, 4층까지 쌓아 올려 언제 무너질지 모를 위험한 건물들도 많다.


사진. 잘라존 난민촌의 골목. UNRWA에 따르면 하수시설이 연결된 집이 70%에 그치고, 그마저도 잘 정비되어 있지 않아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하수가 역류해 길이 물에 잠긴다. 사진은 UNRWA에서 제공함.(5)



난민촌에는 UNRWA에서 지어주고 직접 운영도 하는 학교와 보건소가 있다. UNRWA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역사와 그 맥을 같이 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유엔의 지원은 언제나 한계가 많았다. 이 평화로워 보이는 잘라존 난민촌에도 그림자는 크게 드리워져 있다.


1977년에 난민촌 인근에 벧엘(Beit El) 정착촌이 건설되고 영역을 확장하면서 난민과 정착민들 간에 충돌이 거의 매일같이 일어나고 있다. 특히, 정착촌과 바로 맞닿아 있는 UNRWA의 남학교에는 이스라엘 군인들이 테러리스트 수색을 목적으로 교실 안으로 들어와 학생들에게 최루탄과 섬광탄, 고무탄을 발사해 상처를 입힌다.(6) 아까 만났던 소녀들도 이런 환경에서 자라온 것이니 얼마나 그녀들의 미소가 놀라운가.


난민촌을 나올 때는 해가 완전히 져서 어둑했다. 그래도 조금만 걸으면 라말라에 도착할 거라서 마지막으로 힘내서 걸어보려 했는데 걸어갈 길이 전혀 없었다. 이 50cm도 안 되어 보였다. 미련 없이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탔다.


1) UNRWA, Annual Report, 1955.

2) UNCCP, The First Interim Report.

3) 팔레스타인 난민 인권단체인 BADIL은 2014년에 614만 명으로 추산했다. Badil, Survey of Palestinian Refugees and Internally Displaced Persons, vol. 8: 2013-2015. UNRWA, In Figures, June 2015.

4) Nur Masalha, The Politics of Denial: Israel and the Palestinian Refugee Problem (London: Pluto Press, 2003), 178-217; 그중 약 11.3만 명은 1948년에 난민이다. 나머지 24만 명에 대해서 팔레스타인인들은 ‘1967년 난민’이라 부르는 반면, 유엔에서는 ‘실향민(displaced person)’으로 분류한다. UNSC, S/8158.

5) UNRWA, "Profile: jalazone camp."

6) Ib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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