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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환빈 Feb 07. 2024

해제| 제1장 - 팔레스타인을 걸어서 종단하다.

드디어 본문 분석을 시작합니다. 파란색 글씨는 인용문입니다.


1장은 도입글의 역할을 하며, 2013년에 팔레스타인 서안지구를 걸어서 종단한 여행기입니다.


저자는 무더운 여름날 아주 오래된 지도 하나만 휴대폰에 다운 받고 여정을 시작합니다. 교외를 걸으며 공사장 인부들한테 햇살보다 뜨거운 커피도 얻어마시고, 낙타를 탄 베두인도 만나는 등 이국의 맛을 느끼는데...아뿔싸 그만 다리를 접질려 버립니다. 발목은 점점 부어올라서 다리를 질질 끌게 되고...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스라엘군이 도보를 통제하는데... 걸어서 서안지구를 종단하겠다는 야심 찬 목표는 과연 이룰 수 있을까요?


라는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1g의 과장도 없이 순도 100% 사실을 써 내려가면서 흥미를 돋우는 한편, 중간중간에 팔레스타인에 대한 기본적인 배경지식을 설명합니다. 요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상상과는 달리 이-팔 분쟁에서 사망자 수는 많지 않다.


2.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일상생활은 다른 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다.


3. 그럼에도 분쟁이 계속되는 것은 이스라엘의 식민주의 때문이다.


4. 분쟁의 뇌관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토지를 빼앗아 만든 유대인 식민촌에 있다.


5. 평화를 호소하는 건 이스라엘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인들이다.



자, 그럼 하나씩 차근히 살펴볼까요?


1. 상상과는 달리 이-팔 분쟁에서 사망자 수는 많지 않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현실을 직시하는 게 중요하다. 그중 하나가 테러와 같은 폭력 사태에 대한 과장된 인식을 바로잡는 것이다. 흔히 분쟁을 생각하면 한쪽이 죽이면 다른 한쪽이 복수하고, 다시 또 그에 대한 복수가 이어지는 악순환을 떠올린다. 지극히 인간적이라 이해하기 쉽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분쟁은 영원히 계속되는 것일까? 역사적으로 그렇지 않다는 건 확실하다. 그렇다면 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서만 유독 100년이 넘게 분쟁이 계속되고 있는 것일까?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 죽고 있기 때문일까?


1장의 서론에서 나오는 내용입니다. 1장 전체를, 아니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글귀입니다. 제가 글을 쓰게 된 동기와 연결되어 있기도 하고요.


저는 2012년 11월에 KOICA 팔레스타인 사무소에서 인턴으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출국예정일에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침공했습니다. 큰 규모의 전쟁이 있을 거라 예상되었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이스라엘은 일주일 간의 교전 후 퇴각했고, 며칠 뒤 저는 비행기를 타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 도착했습니다.


사무소에 부임하여 처음 주어진 업무는 현지 정세에 대한 분기별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이었습니다. 요식 행위로 그치는 단순 업무였으나, 의욕이 왕성했던 저는 현지 뉴스와 국제기구 보고서 등을 열심히 조사하며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그런데 보고서 작성 중에 정말 어려운 게 있었습니다. 바로 사망자를 집계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망자 수가 많아서가 아니라 너무 적어서 어려웠습니다. 분명 큰 교전이 일어난 직후였음에도 불구하고 악명 높은 팔레스타인의 '테러리스트들'은 잠잠했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테러는 없고, 그저 개개인의 산발적 행동에 대한 이스라엘의 살상으로 수 명의 팔레스타인 피해자가 발생한 게 전부였습니다. 분쟁의 실상에 첫발을 들이게 순간이었습니다.


“분쟁 관련 사상자 수”를 가장 체계적으로 집계하고 있는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의 통계에 따르면, 최근 5개년(2012-16) 동안 ... 1천 명당 2.1명꼴로 사상자가 발생한 것과 같다. ... 2011-15년 동안 한국의 연간 교통사고 사상자 수는 1천 명당 6.8명이었다. 즉, 팔레스타인에서 분쟁으로 다치거나 죽을 확률보다 한국에서 교통사고로 다치거나 죽을 확률이 3배 이상이나 높다.


통계가 보여주듯 팔레스타인은 우리의 상상만큼 대단히 위험한 곳은 아니다. 단지 학계나 정부, 언론 어디에서도 단 한 번도 이런 수치를 연구해서 내놓지 않은 상황에서 분쟁 관련 사건이 언론에 자주 노출되고, 교통사고와 같은 우발적 사고보다 폭력 사건에서 불안감을 더 크게 느끼는 본능 때문에 위협을 과장해서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럼 지금 가자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공격으로 촉발된 이번 전쟁은 분쟁이 시작된 이래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낳은 대단히 예외적인 사건입니다. 현재까지 3개월 동안 이스라엘은 2만 5천 명이 넘는 가자지구 주민을 무차별 학살했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토록 전례 없는 규모와 강도의 공격을 퍼붓는 까닭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역사상 처음'으로 이스라엘에 피해를 입히는 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하마스의 공격으로 1,200명의 유대인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아마 신문이나 책에서 이런 말들 많이 보고 들으셨을 겁니다. 이스라엘은 평화적인 국가이지만 적대적인 아랍 국가들에 둘러싸여서 안보 불안을 겪고 있고 어쩌고... 이건 서구에서 만들어낸 순전한 거짓말입니다. 나중에 제5장에서 보시겠지만, 이스라엘은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평화에 반대하고 전쟁을 벌여왔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팔레스타인의 테러로 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이스라엘의 현실은 이런 괴리를 더욱 잘 증명해 준다. 2012-16년 동안 연평균 분쟁 관련 이스라엘 사상자 수는 818.4명으로 1천 명당 0.1명에 그쳤다. 반면, 2011-15년 동안 교통사고 사상자 수는 1천 명당 2.9명이었다. 즉, 팔레스타인인들의 ‘테러’보다 29배나 무서운 것이 교통사고다. ...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침공하지 않은 2013, 2016년(에는) ... 교통사고 사상자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번 전쟁 이전까지는 사망자가 그렇게 많지 않았는데, 왜 그럼 100년이 넘게 분쟁이 계속되고 있을까요? 특히 우리가 고민해봐야 할 것은 왜 가자지구에서만 거듭해서 교전과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지입니다. 이번 전쟁 중에도 서안지구 사망자는 아직 300명대에 그칩니다. 가자지구의 1% 수준에 그치지요. 어째서 가자지구는 서안지구보다 더 '폭력적'일까요?


너무나도 당연히 떠올렸어야 할 질문이지만 여태껏 고민해 본 적이 없으실 겁니다. 뉴스에서는 말하지 않는 주제니까요. 분쟁의 원인은 바로 여기에 숨어 있습니다.


2.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일상생활은 다른 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다.


도로를 따라 30분 정도 걸어가면 작은 마을 하나를 지나게 되고 곧이어 북부 지방의 중심 도시 중 하나인 제닌(Jenin)에 도착한다. 제닌에 들어서면 한국에서 상상한 풍경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된다. 뉴스에서 보던 부서진 폐허와 무기를 든 사람들은 전혀 보이질 않는다. 대신 2-3층 정도의 저층 건물들이 약간 낡긴 했어도 온전한 모습으로 빼곡히 들어서 있고, 사람들의 얼굴에는 생기가 가득하다. 팔레스타인에서 보기 힘든 동양인을 발견하자 입가에 미소를 활짝 띠며 손을 흔드는 사람도 있다. 어디에서도 테러나 분쟁 같은 느낌은 찾아볼 수 없고, 목가적인 평화로움만 가득하다.


저처럼 KOICA 직원이나 외교관 등 팔레스타인에서 제법 오랫동안 체류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내놓는 소감이 있습니다. 바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특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뉴스나 책으로만 접하면서 상상하게 되는 '폭력적'인 혹은 '정치적'인 모습은 보기 어렵습니다.


주민들의 일상에서 최대 관심사는 우리처럼 '오늘은 뭐 하며 놀까'입니다. 친구나 가족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쇼핑을 하고, 수다를 떨거나 축구를 하는 등 평범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우리랑 다른 점이 있다면 경제 여건이 열악하다는 것입니다. 일자리가 많지 않아 실업률이 대단히 높고, 직업이 있더라도 급여가 적어서 투잡을 하는 사람들이 많고, 그런데도 물가가 매우 높습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이스라엘의 식민 지배 때문입니다.


3. 그럼에도 분쟁이 계속되는 것은 이스라엘의 식민주의 때문이다.


유엔이 인정하는 팔레스타인 국가의 영토는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입니다. 이스라엘은 1967년에 이 지역들을 기습 '선제공격'해서 점령했고, 반 세기가 넘는 지금까지도 점령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점령'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리나라나 서구 국가에서 '쉬쉬'하는 이 점령의 동의어는 바로 식민 지배입니다. 네, 우리가 일본에게 겪은 바로 그 식민 지배 말입니다.


서안지구는 원래 물이 부족하지 않은 곳이다. 이곳에는 연간 578-814MCM(백만입방미터)이 충전되는 대수층(the Mountain Aquifer)이 있다. 서안지구에서 80-90%가 충전되는 이 대수층에서 팔레스타인은 고작 14%만 추출할 수 있고 나머지 86%를 이스라엘이 가져간다. 이걸로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수요가 전혀 충족되지 않지만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이 추가로 추출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서안지구는 요르단강과도 인접해 있으나 이스라엘 때문에 전혀 이용을 못 한다. 그러다 보니 팔레스타인인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의 땅에서 나오는 물을 이스라엘로부터 매입해야 한다. ...  서안지구 주민의 1일 물 사용량은 79L에 그친다. 반면, 이스라엘인들은 그보다 3배 이상 많은 287L를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3년에 1인당 282L를 사용했다)


20세기 동안 개발도상국에서 경제선진국으로 발전한 1등 국가는 어디일까요? 우리나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지정답은 이스라엘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개발에 성공한 사례로 빈번히 조명되지만, 이스라엘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면 이스라엘은 우리나라 이상으로 해외 원조(주로 미국)를 많이 받았고, 또한 팔레스타인을 식민 지배하며 불법적으로 이익을 착취했기 때문입니다.


2012년에 유엔은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했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여전히 '점령'하고 있고 심지어 국토의 절반(=서안지구의 60%)을 직접 통치합니다. 이곳을 'c 지역'이라고 부릅니다.


C 지역에는 약 30만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532개의 마을이나 작은 공동체를 이루어 살고 있다. 이곳의 주민들이 자기 땅에 무언가를 지으려면 이스라엘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각종 규제로 인해 허가를 받기가 매우 어렵다. 2010-14년 동안 건축허가 승인율은 1.5%에 불과했다.


런데 사람들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토지를 반드시 개발해야 한다. 신혼부부가 살 새로운 집이나 아이들이 다닐 학교가 필요하고, 가게나 사육장, 과수원 등을 건설해야 먹고살 수 있다. 자연히 주민들은 허가를 받지 못하더라도 건물을 지을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은 이를 ‘불법건축물’로 정의하고 강제로 철거한다. 1988년부터 2016년 사이에 허가 없이 지어진 주택이나 학교 등 3,344개의 건물과 시설들이 철거되었고, 그 외 12,534개가 철거 명령이 내려진 상태다.


C 지역은 천연자원이 풍부한 곳입니다. 물에 뜨는 바다로 유명한 사해도 여기에 있고요.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이를 사용하지 못하게 막고 유대인 기업을 설립해 이익을 취하고 있습니다.


세계은행은 팔레스타인이 C 지역의 자원을 이용할 수 있게 되고 각종규제가 풀린다면 적어도 연간 34억 달러(2011년도 GDP의 35%에 해당)를 추가로 생산할 수 있으며, 정부 세입도 8억 달러가 증가할 것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지난 50년간 C 지역의 자원을 이용하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의 유대 기업들이며, 그들은 팔레스타인 정부에 세금조차 지불하지 않는다.


C 지역과 달리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정부의 통치를 허용한 지역은 주거 밀집 지구입니다. 그러니 인적자본 말고는 팔레스타인 국가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셈이고, 경제가 제대로 성장할 수 있을 리 만무합니다. 그나마 해외원조 덕분에 버티고 있는 거고요.


유엔무역개발협의회는 ... (이스라엘의) 점령이 없다면 GDP의 2배도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그러니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심정이 어떨까요? 일자리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자식들 좋은 음식 사 먹이지 못하고, 좋은 옷 입히지 못하는 서러움을 누구한테 풀어야 할까요? 팔레스타인에서도 잘 사는 사람들은 꽤 많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적대심이 상대적으로 약합니다. 그럼 누가 이스라엘을 가장 원망할까요? 네, 바로 빈곤층입니다. 가자지구 주민들이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는 근본적인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지배에 대한 불만은 단순히 경제적 수탈에 그지치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주민들의 자유와 권리를 일상적으로 억압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공항과 항구 건설을 금지하고, 상수도나 저수지, 도로 건설도 제한하고, 심지어 3G 이동통신망조차 오랫동안 금지하다가 2018년에 허가를 내줬습니다. 이런 비정상적인 억압의 최고봉은 바로 검문소입니다.


어제 지나온 길을 다시 한 시간 반 동안 천천히 걸어 나블루스를 빠져나왔다. 도시 남쪽 입구에는 검문소가 있었다. 국경도 아닌데 무슨 검문소냐고 의아하겠지만, 이스라엘은 서안지구 내부 곳곳에 검문소를 설치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이동을 통제하고 있다. 2017년 1월을 기준으로 59개의 상설검문소가 운영되고 있으며, 안보 상황에 따라 수십, 수백 개의 비정기 검문소가 추가로 운영된다.


과거에는 검문소 때문에 수년간 직장도 학교도 못 가는 게 일상이었던 때도 있었지만 요즘에는 통제가 완화돼 평시에는 검문 없이 바로 통과할 수 있다. 하지만 어디선가 작은 사건이라도 일어나면 검문이 강화돼 극심한 교통 체증이 일어나고 심할 때는 도로가 폐쇄되거나 마을 전체가 봉쇄된다. 그래서 팔레스타인에서 시외 이동은 언제나 불확실성을 담보하고 있다.


검문소는 서안지구 청년들이 꼽는 불만의 1순위를 차지합니다. 시외에서 갑작스럽게 도로가 통제되면 적게는 한두 시간, 많게는 수시간을 도로에서 보내야 하니 일정이 꼬여 버립니다. 학교 수업에 못 들어가거나 거래처와의 약속이 깨어지고, 자영업자라면 돈을 벌지 못해 발을 동동 굴립니다. 저 역시도 도로에서 수시간을 지체한 경험이 여러 번 있고, 저와 미팅 약속을 한 협력기관 사람들이 검문소 때문에 수시간 늦게 도착해 일정에 불편을 겪은 적도 있습니다.


심지어 헤브론 같은 데서는 도시 한가운데에도 곳곳에 상설검문소가 있습니다. 그래서 등하굣길이나 모스크를 들어갈 때도 검문소를 통과해야 하고 검문 과정에서 군인들로부터 모욕과 학대를 경험합니다. 이런 일상적 억압이 이스라엘에 대한 불만을 끊임없이 키우는 중요한 요인이 됩니다.


4. 분쟁의 뇌관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토지를 빼앗아 만든 유대인 식민촌에 있다.


이스라엘의 식민 정책의 핵심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쫓아내고 유대인을 이주시키는 데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바로 이런 방식으로 건국되었지요. 그리고 1967년에 서안과 가자지구 점령을 시작하면서 재개했습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조상 대대로 살아온 토지를 빼앗겼고 그곳에는 유대인 정착촌, 학술적 용어로 정확히는 '식민촌'이 건설되었습니다.


‘정착촌’(settlement)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국토 안에 만든 유대인 식민촌(colony)이다. 이스라엘 정부가 팔레스타인인들의 주거지와 농지를 강제로 빼앗아 유대인들에게 분배해 주거나, 총기로 무장한 유대인 테러리스트들이 주민들을 강제로 쫓아낸 뒤 정부가 사후적으로 토지 소유권을 승인해 주는 방식으로 건설되고 있다.


두 가지 모두 국제법적으로 불법행위지만, 1968년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새로운 정착촌이 건설되고 있고 같은 방식으로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2021년을 기준으로, 이스라엘 정부의 공식적인 승인을 받은 156개의 정착촌과 97개의 미허가정착촌(outpost)에서 465,400명의 이스라엘 국민이 살고 있다.


정착촌에 사는 정착민 중에는 상습적으로 테러를 저지르는 유대인 테러리스트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인근의 팔레스타인 마을과 학교에 침입해 총을 쏘고,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돌을 던지며 응수하면 이스라엘군이 즉시 출동해 체포해 갑니다.


서구 언론의 편향적인 태도 때문에 정착민들의 테러는 잘 보도되지 않지만,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에 따르면 2012-16년 동안 정착민은 팔레스타인인들로부터 손해를 입은 것보다 더 많은 신체적, 재산상의 피해를 끼쳤다. 정착민의 폭력은 팔레스타인 경찰이 간섭할 수 없는 C 지역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학생들이 학교 내에서나 등하굣길에서 폭행당해 휴교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불안감에 시달린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는 것을 포기하거나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테러가 과연 개개인의 단순 범죄행위일까요? 유엔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은 정착민의 폭력 행위가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개인적인 범죄가 아니라 이스라엘이 정착촌 주변 지역을 지배하기 위해 이념적으로 조직화한 폭력이라고 설명한다. 정착민들은 실탄을 장전한 총으로 무장하고 인종적 면책특권까지 부여받는다. 최근 10년간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 인권단체의 도움을 받아 정착민의 범죄를 고발해도 92.7%가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정착민을 ‘보호’하고 그들에게 피해를 주는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를 색출하기 위해 이스라엘군이 정착촌 인근에 상시 주둔하고 있다.


식민촌은 분쟁의 역사적 결집체입니다. 1880년대부터 이런 식민촌이 하나둘씩 만들어지면서 팔레스타인인들이 고향에서 쫓겨나고  1948년 이스라엘 탄생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식민촌이 21세기 현재도 서안지구 곳곳에 자리 잡고 있고 계속해서 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참고 있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심지어 식민촌 주민들이 총을 쏘고 사냥개를 풀어서 자신들을 공격하는데도요?


5. 평화를 호소하는 건 이스라엘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인들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서구 언론에서 이스라엘은 평화를 사랑하는 국가로 묘사됩니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아랍국가들과의 평화협상에 반대하고 전쟁을 일으켜 온 게 이스라엘입니다. 심지어 1950년대에는 미국과 이집트의 외교 관계 개선을 막기 위해 이집트에 폭탄 테러를 저지르고 무슬림 단체가 한 거라고 거짓말하다 발각됐을 정도입니다. 그런 이스라엘이 20세기 말에는 평화협상 자리에 나오게 되었는데, 바로 식민 지배를 견디지 못한 서안과 가자지구 주민들이 대거 봉기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평화협상에서 내건 조건은 간단합니다. 유엔에서 인정한 팔레스타인의 두 가지 절대적인 권리, 즉 1967년의 국경선(=서안지구와 가자지구) 회복과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둘 중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소리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은 우리와 똑같은 평범한 인간이다. 그들이라고 좋아서 무장투쟁이나 시위를 벌이는 게 아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권리를 억누르는 식민 지배를 끝내기 위해 절박하게 저항하고 있는 것뿐이다. 이를 거부하는 이스라엘을 평화협상 테이블에 끌어다 앉힌 것도 팔레스타인인들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1967년 이전의 국경선을 회복시켜 주는 것을 거부하고 팔레스타인 국토 안에 있는 자원 등을 이용할 온전한 주권도, 난민들의 귀환도 그 어느 것도 용납지 않았다. 오히려 협상이 시작된 이후에도 정착촌을 꾸준히 확장하고 통제와 약탈, 억압을 강화했다.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은 둘 중 누구의 입장을 지지할까요? 네, 당연히 이스라엘을 지지합니다. 이들은 유엔에서 백 번도 넘게 반복해서 인정한 팔레스타인인들의 권리를 부정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물과 토지, 천연자원 등을 더 가져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책을 관통하는 주제를 미리 이야기하자면, 서구 국가들은 이스라엘의 식민 정책을 옹호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 나라에 있는 수많은 지식인과 시민단체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과거에 이런 식민 지배로 부국강병을 달성했고, 또 같은 이유에서 이스라엘의 건국과 성장을 도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제 와서 ' 식민주의를 멈추라고 말하는 것은 누워서 침 뱉기입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에 경제적 원조를 하면서 불만을 줄이는 한편, 이스라엘이 이번 전쟁처럼 팔레스타인인들을 학살할 때는 '인도적 차원'에서 그만두라고만 점잖게 말합니다.


전 세계에서 약 80%의 나라는 유럽의 식민 지배를 받았습니다. 이들 중 상당수가 자국의 경험을 잊지 않았기 때문에 부정의에 대해서 항의하고 팔레스타인을 지지합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가해자가 일본이었던 점만 기억하고 식민주의라는 본질은 도외시하기 때문에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이스라엘을 지지합니다. 정작 일본조차도 이스라엘의 식민주의를 비판하는데 말이지요.


여러분이 보시기에는 어떻습니까. 우리나라가 식민주의를 옹호하며 나아가 이스라엘에 경제적, 군사적으로 도움을 주는 현실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해 어설프게 아는 사람들은 흔히 '아, 이거 누가 옳고 그른지 따지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심지어 방송에 나와서 말하는 사람들조차 그렇지요. 이들은 말 그대로 비전문가라서 그렇습니다. 역사를 제대로 공부한 적은 없고 그저 이스라엘이 왜곡 선전한 거짓을 '진실'로 착각하고 있을 뿐이지요.


왜 오늘날에도 분쟁이 계속되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원인은 무엇이었는지, 그 역사를 알아야 한다. 과거를 묻지 않고 오늘날의 모습만을 보고 따진다면 누가 옳고 그른지를 판별할 수 없다. 대부분의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의 유대인에게 살해당한 가족이나 친지가 있고, 그보다는 적지만 유대인들 역시 팔레스타인인들에 의해 목숨을 잃은 가까운 지인들이 있다. 단순히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서로가 서로에게 보복할 만한 동기는 충분하다. 따라서 책임을 묻고 분쟁을 멈추려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누가 먼저 갈등의 원인을 제공했는지를 알아내야만 한다.


문제는 이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독자들 중에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책을 한두 권 정도 읽고 ‘아! 이래서 분쟁이 생겼구나. A가 잘못한 거구나.’라고 생각한 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다른 시각에서 보다 자세히 쓴 책을 읽게 된다면 십중팔구는 생각을 정반대로 바꾸거나 어리둥절해져서 판단을 보류하게 될 것이다. 필자가 그러했다.


팔레스타인의 역사의 진실을 알면 누가 가해자고 피해자인지, 그리고 무엇이 분쟁의 원인인지가 명확히 보입니다. 그저 언론이 불러주는 선전, 선동을 믿고 식민주의의 찬양자가 되어서 독립운동가분들께 부끄러운 후손이 되지 마시고, 조금만 힘을 내서 팔레스타인의 역사를 들여다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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