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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환빈 Feb 21. 2024

해제| 2장 1절 - 유대인만의 팔레스타인은 없었다.

(파란색 글씨는 인용문입니다.)


2장 1절의 제목은 '유대인만의 팔레스타인은 없었다.'입니다. 약간 뜻이 모호하죠? 풀어서 다시 적어보자면, '팔레스타인은 유대인만의 땅이 아니었다.'입니다.


기독교에서 팔레스타인 땅은 신이 유대인들에게 약속한 땅으로 믿어집니다. 이는 오늘날 세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있는데요, 첫째는 성경에서 신이 유대인에게 약속한 땅이 정확히 어디인지를 모른다는 점, 두 번째는 이곳에서 태어나 자란 비유대인의 권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의 약속을 받은 고대의 유대인(정확히는 고대 이스라엘인)과 현대의 유대인이 동일한 집단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자, 그럼 이제 하나씩 살펴볼까요?


* 이 글에서 성경은 기독교의 구약성경만을 의미합니다. 신약성경은 신약성경으로 표기합니다.


1.1. 성경이 토지 소유증서?


2장 1절은 모스코위쯔라는 유대인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모스코위쯔는 동료 유대인들과 함께 총으로 무장하고 사냥개를 대동해 카리우트 마을의 팔레스타인 농민들로부터 땅을 뺐았습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 인권단체의 도움을 받아 그를 이스라엘 법정에 기소했습니다. 모스코위쯔는 땅을 구매한 적은 없지만 성경이 증명하는 유대 민족의 땅이라고 변론했습니다.


비기독교도가 보기엔 너무나도 황당한 이 같은 발상은 사실 한국인을 비롯해 서구 기독교도들 사이에서 흔히 발견됩니다. 이들은 성경에서 유대 민족의 조상이 신으로부터 팔레스타인 땅을 약속받았기 때문에 팔레스타인인들이 이곳에서 몇백 몇천 년을 살았는지에 관계없이 무조건 땅의 주인은 유대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신앙심은 둘째치고 성경이런 과격한 주장을 내세울 만큼의 근거가 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성경 어디에도 오늘날과 같은 경계의 '팔레스타인'이란 지명은 등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연히 신이 유대인에게 약속했다는 땅도 '팔레스타인'은 아닙니다. 우선 지명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팔레스타인 땅 = 역사적 팔레스타인 : 팔레스타인인들의 고향으로 오늘날 서안과 가자지구, 이스라엘의 영토에 해당함. 역사적으로 경계가 거듭 변화하다가 1920년대에 정립됨. / 주의 : 현대 팔레스타인 국가의 영토는 서안과 가자지구만 의미함.


가나안 : 대략적으로 팔레스타인과 레바논 지역을 아우르는 고대 지명. 성경에도 등장


이스라엘 땅(Eretz Israel) : 고대 유대인의 거주지역을 의미. 구체적 경계는 불분명하고 다양. 성경에 나오는 '단에서 브엘세바까지'가 가장 유명함.


그럼 신이 약속한 땅, 이른바 '약속의 땅'은 어디일까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왜냐면 성경에서 약속의 땅의 범위는 계속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아래 지도의 범주를 보시고 약속의 땅을 찾아보세요. (지도가 보기 좀 불편하지요? 다음에 개선해 볼게요)



성경에 등장하는 다양한 경계 중 어느 것을 진짜 약속의 땅으로 보아야 할지는 알 수 없다.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최초의 경계이자 가장 광활한 ‘애굽강에서 그 큰 강 유프라테스까지’에 있는 모든 땅이 약속의 땅에 해당할지, 아니면 그보다 현저히 작지만 경계가 상세한 가나안 땅이 기준이 될지, 그것도 아니면 에스겔이 받은 후대의 계시가 유효한 것인지 해석은 전적으로 열려 있다.


설령 이들 중 어느 하나를 택하더라도 성경의 짤막한 묘사만으로 지도상에 정확한 경계를 그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비교적 경계가 자세하게 설명된 가나안이나 에스겔이 받은 계시의 경우에도 언급된 고대 지명이나 부족의 영역이 어디를 가리키는지 확신할 수 없어 해석이 갈리고, 유프라테스강처럼 지명을 아는 경우에도 경계가 강의 상류인지 아니면 하류인지조차 언급이 없으니 경계선을 자의적으로 그을 수밖에 없다.


약속의 땅은 심지어 고대 유대인이 살았던 지역, 이른바 '이스라엘 땅'과도 다릅니다. 성경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기간 동안 유대인들이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살았다고 나옵니다. 솔로몬 시기 즈음에만 이보다 넓은 하맛-애굽강에서 살았다고 나오고요. 즉, 고대 유대인들은 약속의 땅의 일부에서만 살았고, 이는 '역사적 팔레스타인'보다도 작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땅'은 약속의 땅이나 역사적 팔레스타인의 동의어, 혹은 그 이상으로 넓은 영토로 주장되기도 합니다. 이는 유럽에서 유대인과 기독교도들이 사후적으로 창작한 개념입니다. 20세기 초에 예멘 지역의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땅'이 예루살렘만 의미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처럼 약속의 땅은 모호하고 가변적이라 영토적 경계를 그려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속의 땅은 팔레스타인 땅을 대부분 포함하기 때문에 팔레스타인 땅에 대한 유대인의 권리만을 논해보자고 말할 수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불확실한 경계 문제는 뒤로하고 논의를 팔레스타인만으로 국한해 보는 것은 어떨까? 가장 작은 약속의 땅도 팔레스타인 지역의 대부분을 포함하므로, 어떤 경계가 맞는지 모른다고 하더라도 팔레스타인을 약속의 땅의 일부로 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특정한 경계를 정하지 못한 채 그저 약속의 땅이라는 이유로 팔레스타인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큰 제약을 받는다.


약속의 땅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국토를 초과해 좁게는 레바논과 시리아의 일부를 포함하고, 넓게는 요르단과 이라크까지도 포함하기 때문이다. 신의 약속은 모든 땅에 동일하게 적용될 수밖에 없으니 약속의 땅이라는 이유로 소유권을 주장한다면 주변국에 영구적인 선전포고를 하는 셈이 되어버린다.


그러니 이스라엘 정부는 이런 실체가 불분명한 '신의 약속'이라는 종교적 권리를 내세우지 않습니다. 일반 국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대인들은 약속의 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모스코위쯔처럼 성경에 적힌 신의 약속을 토지증서로 생각하고 토착민의 땅을 빼앗을 근거가 된다고 여길 법한 종교적으로 ‘열성적인’ 유대인들은 많지 않다. 이스라엘 중앙통계청의 2016년 통계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유대인 중 40% 이상이 스스로를 세속적이라고 정의하고, 약 35%는 세속적이지도 종교적이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팔레스타인은 '약속의 땅'이니까 유대인들에게 넘겨야 한다는 서구 기독교의 주장은 정작 이스라엘에서 찾아보기 힘듭니다. 앞서 말한 모스코위쯔의 재판에서 이스라엘 판사는 비록 6년이나 시간을 끌기는 했지만 그래도 문제의 토지가 팔레스타인인들의 소유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럼 모스코위쯔의 토지 약탈은 단순히 종교적 극단주의자의 개인적 범행이었을까요? 아닙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승소한 뒤로도 토지를 되찾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법정에서 정착민들이 총기로 무장하고 개를 데리고 와서 위협을 가해 땅을 빼앗겼다고 진술했으나 이스라엘군과 경찰, 행정당국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하루만이라도 경작을 할 수 있도록 호위를 해달라는 요청을 이스라엘군이 겨우 수락하여 일정을 잡은 적이 있으나, 모스코위쯔가 소송 중에 지어놓은 온실을 새로이 발견했고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조사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갑자기 연기되었다. 


사실, 카리우트 마을은 이스라엘 정부가 조직적으로 땅을 몰수해가고 있는 지역 중 하나다. 마을 전체 면적이 2만 두넘인데 그중 1.4만 두넘(70%) 이상을 인근 7개의 정착촌이 차지하고 있다. 즉, 모스코위쯔는 정부 정책에 충실한 토지 약탈꾼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정부는 무슨 권리로 팔레스타인 땅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고 또 유대인 국민들은 찬성하거나 방관하는 걸까요?


그들이 팔레스타인인들의 터전에서 국가를 세울 때부터 내세우던 정의는 바로 유대인들이 이 땅에 살았던 경험이 있다는 역사적 권리였다. 다만 그 ‘역사’라는 것이 성경의 기록에 지나치게 의존하며 그에 위배되는 고고학적 유물이나 역사 문헌은 배제하는 주관적 역사라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1.2. 역사적이지 않은 역사적 권리


이스라엘은 성경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절대적인 증거물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렇지만 고고학과 역사학이 발달한 1970-80년대 이후로 성경적 역사를 진실로 보는 학자들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1970-80년대 이후부터 주류 성경학계는 성경이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기록한 것이라는 주장을 부정하게 되었다. 오늘날 성경은 역사 문헌이나 고고학적 유물 등으로 ‘이미 확인된 사실을 보완하는 사료’로만 활용되고 있다. 성경학자 레스터 그래비(Lester Grabbe)가 파악하기로는, 다른 사료 없이 오로지 성경에 기록된 내용만으로도 역사적 사실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는 겨우 세 명에 그친다.


성경에서 유대인의 조상은 이라크 지역에서 건너와 팔레스타인 땅에 정착했다가, 이후 이집트로 건너가 노예생활을 하고, 다시 팔레스타인으로 귀환해 군사적 정복을 하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이는 성경의 핵심적인 내용이지만 학자들은 사실로 보지 않습니다. 고고학에 따르면, 유대인의 조상은 팔레스타인이나 트랜스요르단의 유목민이고 서안지구에서 농경생활을 하려고 정착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늦어도 기원전 1,200년 경에는 공동체를 형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이들은 다신교 사회였습니다. 야훼(하느님)는 여러 신 중에서 가장 중요한 신 정도로만 숭배되다가 남유다 왕국이 멸망하는 기원전 6-7세기경 무렵에야 유일신으로 정립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유대인의 기원이나 공동체적 특성은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너무나도 다릅니다. 고대 유대 왕국의 영향력도 그렇습니다. 유대인들이 고대 팔레스타인의 지배자였다는 통설과는 정반대로,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의 한 귀퉁이만, 그것도 짧은 시기 동안만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기원전 2세기경에 유대인들이 건국한 하스모니안 왕국은 팔레스타인의 대부분을 점령했으나 그마저도 반 세기만에 로마에 항복했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이 성경을 근거로 팔레스타인 땅대한 유대인의 '우선적인, 절대적인 권리'를 요구한다니 참으로 우습지요?


성경적 역사관의 가장 큰 문제점은 거짓된, 과장된 기술보다 주관적, 편파적 기술에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땅에 살던 것은 유대인만이 아니었고, 비유대인들은 유대인들이 정치 체제를 가지기 전에도 이후에도 계속해서 존재했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적 역사관은 유대인들이 왕국을 가질 때만 팔레스타인의 역사를 기술하고 이들 입장에서 가치를 평가함으로써 비유대인을 유대인에 종속적이고, 열등한 존재로 타락시켰습니다.


성경학자 키스 휘틀럼(Keith Whitelam)은 『고대 이스라엘의 발명』에서 팔레스타인의 고대사 연구가 ‘이스라엘’이란 실체를 강조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비판했다. “고대 이스라엘이 미미한 역할밖에 하지 못한 시기, 잠복해 있던 시기, 심지어는 존재하지 않은 시기도 있었다. ... 고대 이스라엘 역사는 팔레스타인 역사라는 거대한 범위 안에서 한순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적 역사관은 다른 토착 공동체의 문화와 종교를 미개하며 원시적인 것으로 격하시키고, 팔레스타인 땅의 역사가 ‘진화된’ 이스라엘의 관점에서만 기술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끔 만들고 있다. 이는 서구 문명의 뿌리로 삼는 ‘우월한’ 유일신 신앙의 탄생지로서의 가치를 부각하고 현대 이스라엘 국가의 팔레스타인 정복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서라고 휘틀럼은 지적한다.


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서구 기독교도와 유대인들이 절대적으로 맹신하고 있는 가치관입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인들의 목숨은 하찮게 보고, 유대인들이 테러를 해서 이들을 죽일 때는 잠잠하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천인공노할 짓이라고 욕합니다.


이번 전쟁 역시도 마찬가지이지요. 2023년 10월 7일의 하마스의 기습은 선제공격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1967년 이래 계속해 온 식민주의에 대한 저항이었습니다. 그런데 식민 지배에 대해 저항하는 것을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서구 국가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 하마스의 선제공격과 이스라엘의 보복이라는 프레임을 조성해서 사태를 편파적으로 봅니다.


이와 같은 성경적 역사관, 즉 유대인이 팔레스타인 땅의 정당한 주인이고 비유대인보다 우월한 집단이라는 사상은 현대 이스라엘의 건국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도구로 사용됩니다. 가령, 1936년에 영국이 팔레스타인에 유대 국가를 만들자고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선언했을 때도 팔레스타인의 역사는 유대인이 지배했을 때는 인류 발전에 기여했으나 아랍인들이 지배할 때는 "역사에서 사라졌다."고 폄하했습니다.


1.3. 땅에 대한 권리는 계승되는가


마지막으로 살펴볼 것은 고대 유대인과 현대 유대인 간의 관계입니다. 유대 역사관에 따르면, 유대인들은 기원후 70년경에 로마의 박해를 피해 팔레스타인을 떠나 유럽과 중동을 떠도는 '이산'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 2천 년 가까이 흐른 1900년경 무렵에 팔레스타인으로 '귀환'했습니다.


자, 그렇다면 2천 년 만에 돌아온 유대인이 팔레스타인 땅을 계속해서 지키며 살아온 팔레스타인인을 쫓아낼 권리가 있을까요? 특히, 고대 유대인들이 현대 유대인과 동일한 집단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는 크게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우선, 유대인의 정체성에 대해서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유대인이란 누구일까요? 흔히 유대인은 유대교를 믿는 신자로 상상됩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렸듯이 현대 유대인의 상당수는 세속적이고, 스스로를 종교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겨우 20% 남짓합니다.


유대인이란 개념은 시대에 따라 변화해 왔습니다. 가장 처음에는 유대 지방 사람이라는 지역적 의미였습니다.  그런데 하스모니안 왕국 시기에 유대인들은 주변 지역을 정복한 후 주민들을 강제로 개종시키고 왕국에 복속시켰고, 이들을 자신들과 같은 '유대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즉, 유대인이 정치적, 종교적 의미로 변화하게 된 것입니다.


하스모니안 왕국이 멸망하면서 정치적 의미의 유대인은 사라집니다. 그러나 당시에 개종한 사람들이 유대교를 계속해서 믿었기 때문에 종교적 의미로서의 유대인은 계속되고 이러한 의미가 19세기까지 주류로 정착합니다. 다만,  유대교는 원칙적으로는 '혈통적 자손'도 유대인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유대교 신자 + 유대인으로서의 혈통이 부가적으로 혼합된 형태로 보는 게 더 정확합니다.


현대에는 반대입니다. 유대인으로서의 혈통이 중요시될 뿐 유대교를 믿는지 여부는 중요치 않습니다. 무신론자도 유대인으로 간주됩니다. 이스라엘 정부는 유대인이 다른 종교로 '개종'할 때만 유대인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한다고 봅니다.


이처럼 유대인들은 역사적으로 단일한 혈통이 아니었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단일한 종교 집단도 아니게 되었습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야기합니다.


유대교를 믿지 않는 사람이 약속의 땅의 권리를 주장하거나 반대로 혈연적으로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이 개종으로 유대인이 되었을 때 역사적 권리를 내세울 수 있을까? 전자의 사례는 사실상 없다. 쟁점은 후자다. 현대 유대인의 상당수는, 어쩌면 과반수가 개종한 유대인의 후손일지도 모른다고 의심받고 있다.


성경에서 팔레스타인 땅을 약속받은 것은 아브라함-이삭-야곱으로 이어지는 '혈통'입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개종'으로 유대인이 된 사람들은 무수히 많습니다. 그런데도 팔레스타인 땅에 대한 신의 약속을 '온전히' 계승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요?


특히, 현대 유대인의 90%를 차지하는 유럽계 유대인 아슈케나지가 논란의 중심에 있습니다. 유전학 연구에 따르면 이들은 유럽인들과 매우 유사합니다. 마찬가지로, 아랍 지역에 살았던 유대인들은 아랍인들과 유전적으로 유사하고, 아프리카 유대인들은 아프리카인들과 유사합니다. 친팔레스타인계에서는 이를 근거로 현대 유대인들을 고대 유대인의 후손으로 볼 수 없다고까지 주장합니다.


만약 먼 훗날 유전학이 발전하여 유대인의 혈통을 정확히 파악하게 된다면 모든 논쟁이 해소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불가능하겠지만 만약 과학자들이 고대 이스라엘인과 현대 유대인 간의 유전적 일치를 수치화하더라도 몇 % 이상 일치해야 양자를 혈연 공동체로 인정할 수 있을지는 순전히 주관적인 판단에 달렸고 정치적 시비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유전적으로 100% 일치하지도 않는데 땅에 대한 권리는 100% 물려받을 자격이 있는지도 끝없는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마지막으로,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이 아닌 '해외'에서 2천 년 간 살았던 것이 자발적 선택이었다는 점도 팔레스타인 땅에 대한 현대 유대인들의 권리 주장을 약화시킵니다.


세간에서는 널리 진실로 믿어지고 있지만 기원후 70년에 로마가 유대인을 추방해서 이산이 시작되었다는 유대교의 전승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 로마의 어떤 문헌에서도 유대인을 추방했다는 기록은 찾을 수 없다.


70년경에 로마가 유대인을 추방한 곳은 팔레스타인이 아닙니다. 예루살렘입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의 다른 지역에서는 유대인들이 계속해서 살았습니다.


70년 이후로도 팔레스타인에서 상당한 규모의 유대 공동체가 계속해서 존재한 것을 증명해 주는 기록들은 무수히 많다. 심지어 4세기에는 팔레스타인 북부의 티베리아스(Tiberias)에서 예루살렘 탈무드(Jerusalem Talmud)를 편찬했다.


70년 이산설은 거짓이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의 수는 어쨌든 감소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유대인들이 기독교나 이슬람으로 개종했기 때문으로 보고, 다른 학자들은 유럽으로 이주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전자는 대규모가 아닌 소수의 개종 사례만 근거로 제시는 한계가 있고, 후자는 유대 역사관 외에는 다른 근거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팔레스타인의 문이 70년 이후에도 언제나 열려 있었다는 점입니다. 유대인들은 언제 어느 때나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해 와서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러지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팔레스타인에서 살아야만 한다는 사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산이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수많은 유대인(대부분이 개종자로 추정)들은 팔레스타인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6세기에 만들어진 바빌로니아 탈무드에서는 팔레스타인으로 집단적 귀환을 하지 말라는 종교적 금기까지 등장합니다.


6세기에 바빌로니아 유대 공동체가 편찬한 탈무드는 이산이 신의 징벌로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메시아(Messiah, 구세주)가 도래할 때까지 이산 생활을 이어가야 하며 팔레스타인으로 집단적으로 이주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이는 유대교의 핵심 교리가 되었고, 랍비들은 구원의 날이 빨리 오기를 기도하는 것조차 신의 의지에 간섭하는 행동이라는 이유로 금지했다.


자연히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에서 살아야 한다는 어떠한 강박 관념도 없이 자기가 거주 중인 지역을 '고향'이라고 부르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 유럽에서 세속주의가 대두하고 종교가 힘을 잃자 금기를 깨고 팔레스타인에 유대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세속적 유대인들이 나타나 분쟁을 일으게 됩니다.




읽어보니 어떠신가요. 원래는 요약 + 추가 정보를 적으려고 했는데 언급해야 할 내용이 많다 보니 추가 정보를 적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독서가이드의 본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듯하여 몇주간 고민해보고 경험을 쌓은 뒤 고쳐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끝으로, 기독교도 독자분들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종교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조우하는 여러 일들에 대한 평가나 선택 좋은 기준이 될 수 있지만,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실'을 정하는 도구아닙니다. 그러니 교회나 성당에서 말해주는 역사가 아니라, 우리 시대의 전문가들 - 고고학자, 역사학자, 성경학자- 이 말하는 고증적 역사를 배우셔야 합니다.


종교가 타인을 핍박하는 도구가 되어서 안 됩니다. 너무나 당연한 원칙인데도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유럽에서 19세기말-20세기초에 이주해 온 유대인들이 정말로 팔레스타인인들보다 땅에 대한 우선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팔레스타인인은 유대인이 이곳을 떠나기 전에도 후에도 계속해서 이곳에서 살아온 집단의 후손이다. 특정 인종이나 민족, 종교 등에 대한 차별적 편견을 배제하고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관념을 인정한다면, 팔레스타인인에게 땅에 대한 우선적 권리가 있다는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이스라엘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의 권리를 부정하는 도구로 악용되고 있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팔레스타인인들은 '블레셋인'의 후손이라고 배우셨을 겁니다. 그리고 블레셋인은 착한 다윗에 대항해 싸운 골리앗이 속한 '사악한' 집단이고요. 그러나 이는 역사적 사실이 아닙니다.


현대 팔레스타인인들이 블레셋인의 후손이라는 발상은 용어의 의미가 변화하면서 생겨난 오해다. 기원전 6세기에 블레셋이란 정치 공동체는 멸망했고 역사 속에서 다시는 등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블레셋을 뜻하는 그리스어 필리스티아(Philistia)는 블레셋인이 살던 연안 지대의 지명으로 남게 되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필리스티아는 연안 지대를 넘어 내륙지방까지 포함하는 뜻으로 확장되었고, 내륙지방에 사는 사람들도 필리스티아에 사는 주민이라는 뜻의 필리스티노이(Philistinoi)라 불리게 되었다. 필리스티아와 필리스티노이는 영어로 각각 팔레스타인과 팔레스타인인에 해당한다. 그래서 현대 팔레스타인인들의 기원이 블레셋인(=필리스티노이)이라는 발상이 나오게 된 것이다.


하지만 지명이 확장하면서 사람들을 부르는 명칭이 함께 바뀐 것일 뿐 내륙지대의 주민들이 어느 날 갑자기 블레셋인으로 변신하거나 그들에게 동화된 것은 아니었다. 블레셋인은 팔레스타인의 다른 주민들과 혈연적, 문화적으로 융합되었고 스스로나 타자에 의해 블레셋을 계승한다고 믿어지는 집단은 사라졌다.


자연히 유대인들은 2천 년이 훨씬 넘는 기나긴 세월 동안 블레셋인과 투쟁해 오기는커녕 그들의 후손이 누군지 조차 알지 못했다. 그런데도 블레셋인을 현대 팔레스타인인에 투영시켜 유대인과 숙명적인 갈등이 있다는 괴담이 만들어진 것은 성경적 역사관을 강조하고 팔레스타인인을 폄하하기 위해서일 뿐이다.


나중에 자세히 다루겠지만, 19세기까지는 '팔레스타인인'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블레셋인과 팔레스타인인을 동일시하는 주장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20세기 들어 유대 민족과 아랍 민족의 갈등이 커지고, 후자에서 팔레스타인인이라는 정치적, 민족적 집단이 탄생하자 갑자기 블레셋인과 연결 지어 '선과 악의 숙명적 대결'이라는 괴담이 제기됩니다.


솔직히 말해서, 기독교 신학이 이런 단순한 어원적 변화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정치적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대단히 실망스럽고 안타깝습니다. 여러분이 믿는 것이 신앙인지 아니면 정치적 인종차별주의인지 고민해 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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