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색 글씨는 인용문입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 세간에 가장 잘못 알려진 면모는 '종교 전쟁'이라는 이미지입니다. 종교적 갈등은 실제로 존재하지만, 이는 분쟁의 원인이 아니라 부산물에 불과합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분쟁의 핵심으로 착각하다 보니 잘잘못을 따질 수 없는 문제로 간주해 버립니다.
역사를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모습만 보고 종교가 분쟁의 원인이었던 것으로 오인한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유대교를 버리거나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슬람을 버리지 않는 한 계속해서 생길 수밖에 없는 해소 불가능한 갈등으로 치부해 버리고 누가 가해자고 피해자인지를 식별하지 않은 채 관심을 닫아 버린다.
1장에서 설명드렸듯이 팔레스타인에서 분쟁이 생겨난 원인은 식민주의입니다. 그런데 '종교전쟁'이라는 이미지가 '식민주의'라는 본질을 가려버리니 쌍방폭행처럼 비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일부 기독교계는 종파적 이해관계를 위해서 피해자와 가해자를 의도적으로 뒤바꾸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분쟁의 원인을 종교적 관점에서 설명하는 괴담이 일부 기독교도들 사이에 퍼져 있어 진실을 호도하고 분쟁의 책임을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지우는 용도로 이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괴담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우선, 성경을 근거로 유대인만이 팔레스타인 땅의 정당한 주인이 될 수 있고 따라서 분쟁의 책임은 땅을 내놓지 않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있다는 괴담을 들 수 있다. 그다음으로 팔레스타인인과 유대인의 갈등은 숙명적이라 해소가 불가능하다는 괴담이 있다.
유대교와 이슬람이 예루살렘을 공통의 성지로 두고 있기 때문에 분쟁이 생겨났다는 ‘성지 쟁탈전’설도 그중 하나다. 마지막으로, ‘폭력적인 종교’를 믿는 무슬림들이 분쟁을 일으켰다는 괴담이 있다.
종교계의 이런 운명론적 역사관과는 달리 어떤 주류 역사학자도 분쟁의 원인으로 종교를 거론하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무슬림 지배하에서 유대인 박해 사례가 있었다 정도에 그칩니다.
서구 학자들이 쓴 팔레스타인 학술서적 중 상당수는 종교 갈등에 대해 1페이지도 할애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잘못된 역사관이 교양서적이나 교양방송 등에서 주장되고 있기 때문에 고민 끝에 "종교는 분쟁이 원인이 아니다"를 증명하는 글을 썼습니다. (2장을 쓰는 데만 무려 2년이 걸렸...ㅠㅠ)
* 오해하실까 봐 미리 말씀드리자면 기독교라고 무조건 친이스라엘은 아닙니다. 천주교는 상대적으로 친팔레스타인에 가깝고, 개신교는 종파마다 크게 다르지만 대체로 친이스라엘입니다. 흥미롭게도,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양자의 입장은 정반대였습니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인도주의적 반성과 이스라엘이 서방 세계에 가져오는 정치적 이점이 변화를 가져왔지요.
제2장은 아래와 같이 3개의 절로 구성됩니다. 우선, 주제와 핵심 내용을 가볍게 살펴봅시다.
1절 : 유대인만의 팔레스타인은 없었다.
시기 : 성경적 역사 시대(기원전 10세기-기원후 1세기)
주제 : 성경이 아닌 실제 팔레스타인의 고대사에서 유대인이 차지하는 위상은 매우 약하다.
핵심 내용
누구도 위치를 알 수 없는 성경의 약속의 땅
고고학, 역사학, 성경학자들이 말하는 실제 고대사
현대 유대인의 정체성 논란과 땅에 대한 유산권 주장의 한계
2절 : 유대인을 구원한 이스마엘 왕국
시기 : 로마의 지배부터 이슬람 지배 초기(십자군 이전까지)
주제 : 팔레스타인 유대인들은 기독교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해 준 이슬람의 지배를 환영했다.
핵심 내용
기독교 로마의 박해
무함마드와 유대인의 관계
무슬림 지배로 달라진 점
3. 이슬람의 폭력성이 분쟁을 일으켰다?
시기 : 중세 - 근현대 20세기 초까지
주제 : 기독교 유럽이나 다른 이슬람권에서보다 팔레스타인은 유대인들에게 안전한 장소였고, 분쟁이 시작되는 19세기 말-20세기 초에는 평등권과 세속주의의 영향으로 무슬림-유대인 간의 관계가 더욱 개선되었다.
핵심 내용
기독교 유럽과 이슬람권의 박해 사례 비교
팔레스타인에서의 박해 사례
팔레스타인에서 분쟁이 생기기 직전의 개선된 상황
글의 흐름이 보이시나요? 1절에서는 팔레스타인의 주인이 유대인이었다는 주장의 그릇됨을 밝히고, 2절에서는 유대인들이 남긴 고문서를 인용해서 기독교보다 무슬림의 지배를 선호했던 사실을 증명합니다.
3절에서는 종교가 분쟁의 원인이라면 어째서 유대인 박해가 심했던 유럽이나 다른 이슬람 지역이 아니라 하필 관용적이었던 팔레스타인에서, 그것도 세속주의와 평등권이 강화된 20세기 무렵에 분쟁이 생겼느냐고 되묻습니다. 이렇게 보면 확실하지요? 종교는 분쟁의 원인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제2장을 쓰기로 결심하게 된 배경에는 기독교도 지인들로부터 받은 충격이 있었습니다.
가장 극단적인 예부터 들자면, 팔레스타인으로 출국을 앞두고 작별인사차 만난 지인이 교회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죽어 마땅하다고 배웠다며 팔레스타인으로 가지 말라고 만류했다.
몇몇 지인들은 기독교를 믿는 팔레스타인인들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어떻게 자신들을 사악하게 묘사하고 고향에 대한 권리를 부정하는 종교를 믿을 수 있는지 놀라워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을 좋아하는 한 지인은 그들의 처지에 동정하는 인도주의적 관점과 팔레스타인 땅의 ‘정당한 주인’이 유대인이라는 성경적 관점 중 어느 것을 우선해서 봐야 할지 모르겠다며 내적 갈등을 토로했다.
그래서 '아, 종교를 주제로 글을 쓰기는 해야겠구나'하고 생각은 했지만 처음부터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습니다. 기획안에서 2장의 분량은 고작 30페이지에 그쳤습니다. 그런데 두 가지 이유로 분량을 대폭 늘렸습니다. 하나는 역사를 왜곡하는 수많은 교양서적들 때문이었습니다.
집필을 시작하기 직전에 유대인 박해를 주제로 미국 기자들이 쓴 베스트셀러 책을 읽었다. 이 글은 십자군의 예루살렘 학살이라는 단 하나의 예외를 제외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무슬림의 사례만을 소개한 후 무슬림들이 기독교도보다 유대인을 많이 박해했다고 주장한다.
부끄럽지만 필자는 처음 읽었을 때 이게 사실에 가깝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왜냐면 이란에서 한 번, 모로코에서 한 번, 그다음에는 이라크에서, 시리아에서 등등 다양한 지역을 넘나들며 끊임없이 사례가 소개되다 보니 마치 박해가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일어났다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2장을 자세히 적기로 결심한 두 번째 이유는 '카이로 게니자'처럼 유대인들이 남긴 기록을 소개하고 싶어서였습니다. 무슬림의 지배에서 살아간 유대인들이 말하는 시대상은 대단히 가치가 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듯합니다. 무슬림과의 관계를 오늘날과는 다르게 조명한 중세 유대인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건 종교적 편견을 깨기에 좋을 듯하여 관련 연구서적을 찾아 읽고 정리하였습니다.
2장은 독자분들께 어렵거나 지루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한 번쯤은 꼭 읽어보셔서 우리 사회에 잘못 알려진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는 지식인으로서 발돋움하실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역사책을 읽는 가장 큰 기쁨이 이런 거 아니겠습니까.
다음 주부터는 2장의 1절부터 차례대로 '내용 분석'에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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