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만원이라는 숫자가 내게 남긴 것
첫 원고료 10만원을 받기까지의 이야기다. 그때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웃기다. '원고료'라는 단어조차 낯설었고, SEO가 뭔지도 몰랐고, 사진 한 장 제대로 찍을 줄도 몰랐다. 그런데 그 모든 걸 모르던 그날이, 내 인생에서 가장 선명하게 기억나는 날 중 하나가 되었다.
"10만원? 쪼잔하네"
"나 첫 원고 의뢰 들어왔어!
해장국집 가서 후기 쓰는 건데 10만원 준대!"
에디터님의 전화를 받고 나서 설레는 마음에 남편에게 말했다.
"10만원? 그걸로 뭘 해. 쪼잔하네."
그 한 마디에 가슴이 철렁했다. 나는 그동안 네이버 블로그에 여행 후기를 써왔지만, 그저 취미였다. 누군가 내 글에 돈을 준다는 게 신기했고 기뻤는데, 그에게는 그저 '쪼잔한' 돈이었다. 하지만 나는 가기로 했다. 사실 그때는 왜 가야 하는지도 명확하지 않았다. 그냥... 누군가 내 글에 값을 매겨줬다는 게 신기했고, 나에게 연락을 준 그 사람을 실망시키기 싫었다.
총체적 난국
토요일 오후, 온 가족이 골목 안쪽 해장국집으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딸아이가 징징대기 시작했다.
"엄마, 여기 냄새나! 가기 싫어!"
해장국 냄새와 술 냄새가 섞인 그 공간이 5살 아이에게는 견딜 수 없었던 모양이다. 징징대는 아이 너머로 옆 테이블 아저씨들의 피하고 싶은 시선이 느껴졌다. 남편은 더 노골적으로 불쾌해했다.
"진짜 이런 데서 밥 먹으려고? 10만원 받으려고 이런 데까지 와야 해?"
나는 당황스러웠다. 괜스레 뒤에 있는 사장님께 들릴까 싶어 손에 식은 땀이 났다. 핸드폰을 들고 해장국을 찍으려는데 손이 떨렸다. 어떻게 찍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주변 시선도 신경 쓰였다. 가족이 함께 온 해장국집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이상한 여자가 된 기분이었다.
밥인지 숙제인지
해장국이 나왔다. 뜨끈한 국물에 선지와 콩나물이 들어있는 평범한 해장국이었는데, 나는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으면서도 머릿속은 온통 다른 생각들이었다. '이 맛을 어떻게 표현하지? 진하다? 깔끔하다? 아니면 시원하다가 맞나?' 밥을 먹으면서도 계속 분석하려고 했다. 김치는 어떤 맛인지, 깍두기는 아삭한지, 반찬은 몇 개나 나오는지. 밥을 코로 먹는 건지 눈으로 먹는 건지 모를 지경이었다. 옆에서 남편은 "그냥 먹어"라며 한숨을 쉬었고, 아이는 여전히 칭얼거렸다. 나는 그 와중에도 계속 메모를 했다.
새벽 2시의 절망! SEO? 키워드?
집에 돌아와서 진짜 지옥이 시작됐다. 마케팅 업체가 보내 온 가이드라인을 다시 읽어봤다. "SEO를 고려해서 키워드를 자연스럽게 넣어주세요. '제주 해장국', '24시간 해장국', '제주 해장국 맛집' 이런 식으로요." 아무런 지식도 없는 나는 곧바로 검색을 시작했다. 나는 'SEO 뜻'을 검색했다. 그리고 '키워드 넣는 법', '맛집 후기 쓰는 법'까지 검색했다. 첫 문장을 쓰려고 하는데 손가락이 떨렸다. '00에 위치한 이 해장국집은...' 지웠다. '24시간 운영하는 해장국집을 소개합니다...' 또 지웠다. 2시간 동안 첫 문단만 수십 번 고쳤다. 뻘뻘 땀을 흘리면서. 새벽 2시가 되어서야 겨우 1,500자를 완성했다. 다시 읽어보니 어색한 문장투성이였다. 키워드는 억지로 박아넣은 티가 났고, 맛 표현은 진부했다. '이걸 진짜 돈 주고 살까?' 그래도 블로그 글을 발행했다. 다른 선택이 없었다.
100,000원
글을 발행한 링크를 전송한 뒤, 통장사본과 계좌를 달라는 문자를 받았다. 얼마 뒤, 띠링 하는 경쾌한 소리. "고생하셨어요. 원고료 입금해드렸습니다." 통장을 확인했다. 제세공과금 3.3%를 제외한 입금 96,700원. 그 숫자를 보는 순간,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남편은 '쪼잔하다'고 했고, 나는 그 돈을 받기 위해 아이 울음소리를 들으며 냄새나는 해장국집에서 고생했고, 새벽까지 뻘뻘 땀을 흘리며 어색한 글을 썼지만. 그 10만원이 내게는 특별했다. 내가 쓴 글이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가치가 있다고 인정받은 순간이었으니까.
그 이후
1년 후, 나는 월 1000만원의 원고료를 받는 전업 작가가 되어있었다. 그 시작이 바로 그날, 해장국집에서였다.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사실 그날의 해장국 맛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날의 떨림, 그날의 당황스러움, 그리고 그날 밤 새벽까지 글을 쓰던 나의 절망감은 생생하다. 지금 원고료는 그때보다 훨씬 많아졌지만, 그 첫 10만원만큼 특별한 돈은 없었다. 그 돈이 내게 가르쳐준 건, 내 글이 누군가에게는 가치가 있다는 것이었다. 비록 서툴고 어색해도, 누군가는 그 글을 읽고 돈을 지불할 만하다고 생각한다는 것. 그게 나를 계속 쓰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싶다.
사회생활을 첫 시작했던 20대, 강의를 처음했을 때의 나는 너무 떨려 목소리가 입밖으로 나오지 않았었다. 불끈 쥔 두손에는 땀이 가득차고 머리는 백지화되듯 새하얘졌었다. 또 결혼식날은 어떠했던가? 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입장했었는데, 어느새 뒤돌아보니 결혼식이 끝나있었다. 딸아이가 태어나고 집으로 데려오던 날, 그날 또한 나는 어설펐다. 조리원에서 나오자마자 첫날 아이를 옆에다 두고 자는데 익숙지 않은 내 손길이 아이에게 느린 대처가 될까 싶어서 뜬눈으로 밤을 새우기도 했다. 누구나 익숙하지 않은 과거, 그런 순간들이 있다. 그런 작은 하나하나가 모여 현재가 되고, 나아갈 미래가 되는건 아닐까?
그 후로 모든 게 달라졌다는 건 거짓말이다. 여전히 서툴렀고, 여전히 헤맸다. 일단 나아지기 위해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다른 맛집을 쓰는 사람들 글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원하는 키워드로 다른 사람들 글을 지속적으로 검색하면 위에 글들이 어떤 식으로 글의 흐름을 가져가고, 정보를 기술하는 지에 대한 것에 대한 감을 익힐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단순 무식한 방법이었지만, 그것만큼 훌륭한 방법이 없지 않았나 싶다. 부자가 되려면 부자를 따라하는 말처럼, 맛집 의뢰를 많이 받는 블로거가 되고 싶었다면, 많이 받는 블로그들이 어떤 식으로 글을 쓰는 지 보는 게 가장 빠르게 목표에 도달하는 방법이었던 거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두 번째 의뢰에서도 실수했고, 세 번째에서도 아쉬운 점이 많았다. 하지만 하나씩 달라지긴 했다. 더 이상 '그냥 취미'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이제 '원고료를 받는 사람'이었다. 그 정체성이 내 안에서 조금씩 자라나기 시작했다.
나에게 처음 받았던 10만원, 나에겐 그런 의미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