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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일 Nov 07. 2019

단어의 진상 #11

전생에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기에


사지가 둘둘 말린 채

입술마저 빼앗기고


마침내 활활 타 죽고도

무정한 구둣발에 짓밟혀

흔적도 없이 사라져야 하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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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진상의 진상> 담배     


피고인, 최후 진술하세요.    

 

저는 그저 초원 한 자락에 푸른 잎사귀 사이로 분홍색 꽃을 피우는 일개 식물이었습니다. 저를 그냥 가만히 놔뒀으면 고향땅에서 애들 키우며 오순도순 살았을 겁니다.   

    

그런 저를, 아무것도 모르는 저를 여기까지 끌고 온 게 누구인가요? 저를 찢고 말리고 가루로 만든 게 누구인가요? 둘둘 말아 불까지 붙인 게 누구인가요? 발로 짓밟고 침까지 뱉은 게 누구인가요? 

그래 놓고도 온갖 욕설과 비방으로 저를 모욕한 게 도대체 누구인가요?     


피고인! 그만하세요!     


잠시만 요! 말 나온 김에 조그만 더 할게요.

제 친구들, 대마나 양귀비…….  가만히 있는 애들을 꺾어다가 온갖 몹쓸 짓을 다 하고, 이제 와서 악마 취급하잖아요. 

그게 걔들 잘못이에요? 걔들이 걔들 몸에 어떤 치명적인 약점이 있는지 어떻게 알았겠어요? 걔들의 몸을 빨아 독을 마신 건 바로 당신들이잖아요.

당신들의 더러운 욕망이 일으킨 당신들의 범죄입니다.    

      

피고인!!!     


당신들의 이기심, 당신들의 그 끝 모르는 탐욕이 푸른 초원을 쓰레기 산으로 만들고, 바다를 빌어먹을 플라스틱으로 가득 채우고, 하늘을 더러운 먼지로 뒤덮은 거라고요. 

당신들의 그 더러운 욕망이. 우리가 아니라 당신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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