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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일 Nov 09. 2019

단어의 진상 #12  

니가 가장 외롭고 힘들 때 갈게     


가장 어둡고 

가장 메마를 때     


찬바람에 온 몸이 휘청거리고

뼛속까지 저려오는 통증이 너를 휘감을 때

거리가 온갖 오욕과 갈등과 패배감으로 얼룩질 때  

   

내가 가서

잠시라도 위로해 줄게 

    

한때 우리도

이렇게 순수했었지

이렇게 맑은 색깔을 가지고 있었지  

   

잠깐이라도

어린아이처럼 하얀 이 드러내고 웃어보라고

어제와 내일은 잊어버리라고

오늘은 그냥 웃어보라고   

  

내가 가서

하얗게 안아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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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의 진상> 눈     


눈은 우리가 가장 힘들 때 온다.      


매서운 겨울 추위가 시작되고, 찬바람이 골목을 스치고, 대지는 메말라 갈라지고, 거리에는 버려진 쓰레기들이 나뒹굴고, 하늘은 잿빛으로 물들어 이 세상이 끝날 것처럼 느껴질 때, 눈은 온다.       

 

그래서 눈은 가장 아름답고 가장 따뜻하다.

무심코 문을 열었을 때, 하얀 눈이 소리도 없이 내려앉아 있는 걸 볼 때만큼 신기한 경험이 없다. 

하얀 지붕들과 하얀 거리와 하얀 차와 하얀 나무들……. 눈이 만들어 낸 이 놀랍고도 경이로운 매직에 누구나 미소를 띠게 마련이다.       

 

하지만 눈이 와서 하얗게 세상을 덮어 봐야 한순간이라는 것도 우리는 안다. 

추운 겨울이 아직 많이 남았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현실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월급이 두 배 오를 일도 없고, 안 되던 사업이 갑자기 번창할 일이 없고, 없던 조상 땅이 갑자기 생길 일도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우리 인생에 가끔은 ‘서프라이즈’가 필요하다. 

이 우울하고 어두운 현실 속에서 한 번쯤 환하게 웃을 일이 있다는 것. ‘반전’이나 ‘역전’은 아니라 하더라도 잠시나마 현실을 잊고 서로 마주 보고 웃어볼 수 있는 ‘깜짝쇼’는, 그래도 한 번쯤은 필요하다. 

하얀 눈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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