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우리가 가장 힘들 때 온다.
매서운 겨울 추위가 시작되고, 찬바람이 골목을 스치고, 대지는 메말라 갈라지고, 거리에는 버려진 쓰레기들이 나뒹굴고, 하늘은 잿빛으로 물들어 이 세상이 끝날 것처럼 느껴질 때, 눈은 온다.
그래서 눈은 가장 아름답고 가장 따뜻하다.
무심코 문을 열었을 때, 하얀 눈이 소리도 없이 내려앉아 있는 걸 볼 때만큼 신기한 경험이 없다.
하얀 지붕들과 하얀 거리와 하얀 차와 하얀 나무들……. 눈이 만들어 낸 이 놀랍고도 경이로운 매직에 누구나 미소를 띠게 마련이다.
하지만 눈이 와서 하얗게 세상을 덮어 봐야 한순간이라는 것도 우리는 안다.
추운 겨울이 아직 많이 남았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현실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월급이 두 배 오를 일도 없고, 안 되던 사업이 갑자기 번창할 일이 없고, 없던 조상 땅이 갑자기 생길 일도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우리 인생에 가끔은 ‘서프라이즈’가 필요하다.
이 우울하고 어두운 현실 속에서 한 번쯤 환하게 웃을 일이 있다는 것. ‘반전’이나 ‘역전’은 아니라 하더라도 잠시나마 현실을 잊고 서로 마주 보고 웃어볼 수 있는 ‘깜짝쇼’는, 그래도 한 번쯤은 필요하다.
하얀 눈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