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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일 Dec 13. 2020

단어의 진상 #56

어느 날 아침 

무심코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도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멋쩍게 웃었다

그도 따라 웃었다

그것도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사실 오래전부터 그를 잘 알고 있었다

잘 알고 있었다, 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갑자기 깨달았다

조금 놀라웠다


검붉고 주름진 얼굴과 탁한 눈빛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동안 어떤 바람이 그를 흔들고 지나갔을까

그동안 어떤 파도가 그를 스치고 지나갔을까

그 긴 세월 동안 거기 그렇게 서서 

무얼 하고 있었던 걸일까

무얼 기다린 것일까     


왠지 낯설어진 그가 나를 서글프게 바라보았다

환하게 한번 웃어주고 싶었지만

어깨 한번 다독여주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다

한참을 바라보다 말없이 돌아섰다

하루 종일 

그가 자꾸 생각났다

.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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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거울


<진상의 진상> 거울     


나 자신을 알기란 참 어렵다.

나의 눈은 하루 종일 밖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정치판은 이게 문제고, 경제는 저게 문제고, 이 프로젝트는 이래서 안 되고, 저 프로그램은 저래서 안 되고, 이 사람은 참 약아빠졌고, 저 사람은 재수 없고…….

세상을 바라보고 사람을 바라보는 일에 도가 튼 사람이 되어간다.     


그렇게 세상일로 괜히 바쁘던 어느 날,

무심코 거울을 들여다보다가 참 익숙하면서도 낯선 나를 발견하게 된다.     


나란 사람은 도대체 어떤 인간일까?     


바깥세상을 바라보던 눈으로 나를 정확하게 들여다보기란 쉽지 않다.

그 잘난 판단력이 흔들린다.

나란 사람은…… 괜찮은 사람일까? 매력이 있을까? 평범한 사람? 무능력한 사람? 한물 간 선배? 아니면 아무도 관심 없는 존재……?     


그동안 그나마 잘 살아온 것일까? 아니면 괜한 헛짓만 하며 살아온 걸까? 

점수로 치면 몇 점일까?   

   

그 잘난 눈으로 아무리 나를 들여다봐도

현재의 나는 어떤 모습이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남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짐작하기가 겁이 난다.

이만큼이나마 살아온 것도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해주고 싶지만 선뜻 자신이 안 생긴다.

그 혼란이, 그 불안이 나 자신을 보는 걸 두렵게 만든다.   

  

거울 앞에 서서 나를 한참 바라보다가 돌아섰다.

더 이상 바라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세상을 바라보던 그 잘난 눈이 부담스러웠다.

나를 안다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 

아니, 무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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