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람독서

집안일을 하찮다고 생각하는 분들께

사람독서

by 겨자씨앗

구청이 지원해주는 보조금으로 운영하는 독서모임을 꾸리게 됐다. 책 선정부터 일정 수립, 강사 섭외 등을 의논하는 자리였다. 어떤 책을 나눌지 의견을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공동 관심사는 '마음'이었다. 부모 된 우리 마음이 변하면 물 흐르듯이 자녀에게도 흘러갈 것이었다. 감정코칭과 대화법에 대한 수많은 육아서들이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부모의 마음 됨이 가장 핵심인 것이다. 멤버 중 한 명은 네 자녀를 충실하게 기르는 온유한 성품을 가진 분이었다. 갑자기 그분이 책 선정을 하다 말고 자신의 심정을 토로했다.


"책 읽을 시간이 없어요. 밤에 자기 전에 잠시 책이라도 볼라치면, 남편이 그렇게 눈치를 주는 거예요. 책 읽으면 밥 나오냐, 쌀 나오냐 하면서요. 빨리 눈 붙이고 내일 에너지나 비축하지, 밤에 뭘 책을 읽냐는 거죠. 책 사면 그것도 어찌나 아까워하는지... 요즘은 배송도 밤늦게 오잖아요. 진짜 벨이라도 누르면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니까요. 하유. 낮에 살짝 주든가 하지."

속으로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어이없음을 넘어 분노가 치솟는 걸 꾹 참아야 했다. 이 남편을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는 거지?

경제권이 없는 전업 주부에게 책 사는 건 사치다. 뼈 빠지게 일하며 생활하기도 버거운 돈을 새 책을 자꾸 들여 책장에 꽂아놓으면 미안한 마음에 쭈뼛쭈뼛하게 된다. "이거, 이번에 엄청 유명한 책이더라고. 베스트셀러를 넘어 스테디셀러고, 이 작가 책이 요즘 많이 읽혀~"

육아서나 실용서라면 살림에, 양육에 보태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인문학이나 문학작품을 부부가 공유한다는 게 쉬운 일일까 싶다.



이렇게 눈치를 보게 되는 이유는 아마 '경제력'이 없어서이지 않을까. 자본 중심 사회에서 집안일에 대해서도 자본 가치를 매기기도 하지만, 정작 생활에 보탬이 된다고 여기진 않는다. 경제력 있는 사람이 집안의 권력자가 되어 은연중에 다른 가족들을 함부로 대하거나 존중하지 않는다. 부모가 자녀에게 "내가 어떻게 너를 키웠는데~ 먹여주고 재워주고~ 그렇게 할 거면 이 집에서 나가!"라고 외치는 것과 같다. 집안일은 하찮다, 쉽다, 단순하다, 성실성의 문제다, 편하다, 스트레스가 적다, 에너지가 적게 든다고 치부하여 밖의 일을 하는 사람보다 덜 수고롭게 여겨진다. 주변에도 주부로 있다가 일을 하게 되면 그때부터 남편 목소리가 줄어들고, 힘든 것을 인정해주고, 집안 일도 나누는 시도를 하는 가정을 여럿 본다.


집안일의 종류를 열거해보자. 청소의 카테고리는 엄청나다, 각 방, 거실, 욕실, 베란다, 창틀, 부엌 등. 빨래, 세탁, 요리, 정리정돈, 계절 별 옷 정리, 분리수거, 인테리어, 재정관리, 곰팡이 제거, 주부 가이버(맥가이버 역할, 각종 고장 나고 수리해야 할 것들), 양육, 정보 습득, 이웃집과의 관계... 이 모든 일을 나름 돈으로 계산해보았다. 청소, 요리, 빨래 등 1시간 최저 시급 8720원 * 5시간 * 30일 = 1308,000원(5시간이라는 건 말도 안 되지만 아무튼), 자녀들 학원 보내지 않고 내가 가르치는 교육비용(한 과목만 생각해서) 20만 원 * 3명 = 60만 원, 정부 수당 30만 원, 총 한 달 2,208,000원. 내 보이지 않는 월급명세서다. 그런데 왜 위안도 되지 않고 석연치 않은 건지.


여성 인권신장의 다른 말은 집안일을 덜하고 밖의 일을 하게 된 상황을 그리게 된다. 로봇이 대체될 부분 중 집안일이 각광이다. 세탁기, 건조기, 냉장고, 김치냉장고, 로봇청소기, 식기 건조대, 스타일리시, 프레쉬하게 배달되는 신선식품류와 혼밥족을 위한 다채로운 인스턴트 요리들이 모두 주부의 일을 줄여나가고 있다. 그럼에도 전업주부들의 이중고는 자괴감, 자기 발전 기회의 저해, 시간과 에너지의 압박, 공간의 한계, 사회 경험과 관계의 단절, 우울감과 소외감 등으로 점철되어 있다. 은연중에 잘 나가는 파워 우먼, 1인 기업을 운영하고 N 잡러 여성들에 대한 부러움과 동경이 나를 '허드렛일 하는 하녀'로 비하시킨다. 내가 이 집에 하녀가 되려고 왔던가..

우리나라 5 마원 권 지폐에 여성 인물 중 '신사임당'을 결정했을 때 진보주의 여성단체들이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가부장적 현모양처의 이미지라는 게 이유였다. 현숙한 어머니와 아내. 집안일을 잘 보살피면서도 재능과 지혜가 특출했던 신사임당. 사실 신사임당의 삶을 들여다보면 현모양처라는 의미가 단순히 순종과 복종의 이미지는 아니다. 남편 이원수에게 학업을 종용하여 공부시키고, 영의정 당숙의 집에 들락거리자 관계를 끊으라고 하고(후에 을사사화를 일으킨다.), 첩을 들이려 하자 금강산으로 가출하기도 했다. 4남 3녀를 훌륭하게 키워 율곡 이이를 배출해내었고, 시화, 서예, 사서삼경 등 학문에도 능했다. 성경 잠언에서도 현숙한 여인의 모습이 나온다. 이 여인은 양식과 옷과 밭과 자녀와 남편을 돌본다. 하인을 거느리며 밤이 새기 전에 일어나며 밤늦게까지 일한다. 그녀는 궁핍한 이웃을 돌아보고, 남편을 성문(높은 귀인)에 세우며, 자녀들을 자부심과 존귀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집안일을 하는 것에 대해 절대 폄하하지 않았다.

집안을 다시 들여다본다. 방구석을 훑어본다. 내 손이 거치지 않는 곳이 없다. 집안일이 잘 되어야 밖의 일도 잘된다. 집안일은 종합예술이다. 부엌엔 인류의 역사와 여권 신장이 있고, 요리엔 창의와 예술이 있고, 플래너이자, 미학자, 박물학자, 지휘자다. 집안일을 없애라, 로봇에게 다 맡겨라, 집안일을 탈출해라, 당장 꿈을 갖고 자기 계발을 해라, 새벽부터 일어나서 달려라, N 잡러 가 돼라 하고 싶지 않다.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일이고, 그 일이 내가 해야 하는 거라면 인식을 전환해보자고 하고 싶다. 관점을 달리하는 것이다. '베란다를 정원'으로, '거실을 서재'로 붐이 일었듯이, 어떤 공간은 게임방, 세계여행 방, 미술관, 과학실험 방, 작가 방 같은 특색 공간을 마련해보자. 소설가 김중혁 씨는 [일일 창의력]에서 제일 먼저 자신이 거하는 공간 이야기를 꺼낸다. 집안 위치를 수시로 바꿔보라는 거다. 세상에 제자리란 것은 없다. "내 시선의 방향을 재조정하기 위해 벌이는 여행"을 시작하면 창의력과 감수성이 일어난다. [내 방 여행하는 법]에서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는 42일 동안 자택 감금을 당하는 동안 "자신의 방을 여행하면 거기서 얻는 기쁨이 사람들의 성가신 질시에 잡칠 일도 없으며 무슨 대단한 경비가 들지도 않는다."며 "그들은 내게 어떤 곳도 가지 못하도록 했다. 대신 그들은 내게 이 우주 전체를 남겨 놓았다. 무한한 공간과 영원한 시간이 내 뜻에 좌우되었다."라고 말한다. 집안일을 하는 자들은 어쩔 수 없이 감금된 기분일 수도 있다. 감금시킨 상대방에게 화나고, 싸우고, 대들 수도 있다. 설득과 이해, 분담을 요구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먼저 내 자신이 핍절하지 않고 당당함과 예술가적 심미안을 가진 가정 예술가로 자부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책도 안 읽으려는 남자분께 책을 권하는 것이 참 아이러닉 하지만, 올해 5월에 출간된 박정훈 기자의 [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를 읽으시고, 나는 왜 가부장적인 권력의 수단이 되었는지 한 번 생각만이라도 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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