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람독서

고전문학을 왜 읽어야해요?

사람독서

by 겨자씨앗

부끄러운 일은 아니지만 문학작품은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굿바이였다. 필수로 읽어야 할 소설은 모두 입시를 위함이었다. 문학 시간이 제일 흥미로웠지만 교과서가 선정한 작품들은 하나같이 내 감정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운수 좋은 날', '감자', '표본실의 청개구리', '물레방아', '메밀꽃 필 무렵', '수난이대' 등 필수 단편 소설을 읽고선 흥미가 뚝 떨어졌다. 재미없어, 우울해. 감정이입이 안돼. 답답해. 남자들 왜 이래. 뭐야.... 딱 거기까지였다. 고전문학은 손댈 생각도 안 했다. 편독이 심해 자기 계발과 종교서적만 줄기차게 읽어댔다. 그래도 끄적끄적거리기 좋아했던지라 읽은 책은 기록을 남겼다.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고 주부가 되고 육아를 하고 정신없이 살던 어느 날, 내 책 보다 아이들 책 빌리러 도서관에 갔다가 게시판에 '함께 읽고 서평 쓰기'라는 포스터를 봤다. 한참을 서서 들여다봤다. 갑자기 뇌리에 번개가 치는가 싶더니 가슴속에 뭉글한 뭔가가 솟아나 이거 아니면 나는 (행복하게) 살 수 없을 것 같은 의욕과 불같은 뜨거운 것이 솟구쳤다. 세 남매를 저녁 시간에 두고 전투적으로 서평 쓰기 모임에 참석했던 빛 한줄기가 '사람 독서'를 하게 된 첫 시작이었다. 지금까지 독서토론의 매력에 빠져 허우적대며 헤엄치는 계기가 됐다.


문학을 놓은 지 몇여 년인데, 서평 쓰기 모임에 <변신>(프란츠 카프카, 문학동네)을 읽고 토론을 하시겠단다. 불길한 첫 문장.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침대 속에서 한 마리 흉측한 갑충으로 변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모야? 우화인가? 환상인가? '쉿 쉿'소리를 내며 방안을 배회하는 갑충을 대하는 가족들도 험악해지고 급기야 사람 갑충이 아닌 징그러운 벌레 취급하며 홀대한다. 결국 사람 갑충은 그렇게 생을 마감한다는 이야기다. 도대체 작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메시지가 무엇인지 소화가 잘 안됐다. 여전히 고등학교 때 문학 시간이 떠오르면서 역시, 고전문학은... 넘기 힘든 산이야... 이해가 되어야 말도 하지.


결론적으로 말하면, 내게 <변신>은 중고등학생 필독 독서토론 책이 됐고, 인간 실존의 의의가 무엇인지 항상 언급하는 명작이 됐다. 문학이란 우물의 깊은 샘은 파고 또 파도 넘쳐흐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질의 기능을 상실한 자, 인간의 역할이 물질로 연결되고 그 고리가 끊어진 그레고르는 가족들에게조차 철저히 고립당하여 종국엔 쓸모없는 존재, 치워버려야 하는 존재가 된다. 이는 카프카가 살던 1900년 대 산업혁명 시대 부속품이 되어버린 인간의 모습이었고, 유대인이면서 서구 기독교 문화에 동화되지 못한 이방인으로 배척당하는 민족 정서의 반영이기도 했다. 카프카는 지금도 여전히 살아서 질문한다. 자분 주의 계급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이제 로봇으로 대체될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들은 어떤 존재의 의의를 발견하겠냐고. 인간의 기능과 역할이 무엇이며 변하지 말아야 할 가치가 어떤 것인지 일깨워준다. 이것이 내가 문학작품 독서토론을 하면서 머리를 깬 도끼 같은 거였다. 인문사회과학철학 서적이 정의하고 논하는 인간이라는 것에 대한 고찰보다 <변신>에 나온 한 마리 갑충이 되어버린 인간 이미지가 비 존엄성, 비루함과 비참함, 자괴감을 부각하면서 문제의식을 일으켰던 것이다.



이야기의 힘, 언어 예술이 빚어내는 상상의 힘과 이미지는 DNA에 저장된 세포처럼 몸 구석에 박힌다. 이러이러한 어른이 되라고 얘기하기보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나 '어린 왕자'를 읽으면 어떤 작은 소년소녀에게 다정한 어른이 되어주고 싶다. 문학의 맛은 건조하고 밋밋한데 마지막 장을 덮을 때 휘몰아치는 감정에 며칠을 앓기도 했다. 나는 한 작품을 읽고 쉬이 다음 책을 손에 들지 못하였다. 음미하고 싶고 묵상하고 싶고 다시 만나보고 싶었다. 그냥 거기에 머무르고 싶었다.


여느 날과 같은 토요일 오전, 남편의 호통 소리에 책에 집중하다 말고 상황 파악에 나섰다. 첫째 아이의 눈이 붉게 충혈되어 갖가지 감정을 가진 채 아버지를 보고 있었다. 이성적인 남편 말이 옳았지만, 아이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다. 보드게임을 하던 첫째는 동생들과 함께 적용하던 룰을 게임에 적용시킨 것이었지만 곧이곧대로 룰을 따르지 않는 남편은 화가 난 것이었다. 묻는 말에 가만히 대답도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쳐다보기만 하니 남편은 부아가 치밀었고 결국 "이 자식이, 왜 묻는 말에 대답을 안 해!!!" 급기야 "너 따라와!!!"까지 된 것이다. 그때 공교롭게도 내 손에 들린 책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이었다

내가 읽은 대목이 이거였다.

"나는 부모님이나 형제들에게 핀잔을 들으면 뭐라고 한마디라도 말대꾸를 한 적이 한 번도 없니다. 그 대수롭지 않은 잔소리가 내겐 청천벽력과도 같이 큰 충격이었고, 미쳐버릴 것만 같아서 말대꾸는 천만의 말씀. 그 잔소리야 말로 천하에 둘도 없는 인간의 '진리'다, 내겐 그 진리를 행할 능력이 없으니, 인간과 함께 살 수 없는 건 아닌가라고 까지 생각했습니다. 나 스스로 그리 생각했으니, 말대꾸도, 자기변명도 할 수 없었지요. 다른 사람에게 안 좋은 소리라도 들으면, 나는 나 자신이 그동안 어쩌면 그렇게도 잘못 생각하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 언제나 타인의 공격을 잠자코 받아들이고, 속으로는 미쳐버릴 정도의 공포감을 느꼈습니다. "

나는 그때 첫째의 속마음을 읽어버렸다. 억울하고 분하고 미쳐버릴 공포감으로 말문이 닫혀버린 순간을.


난 문학이야말로 강력한 힘과 여운이 파동치고 있음을 체험한다. 내 안에 잠든 거인을 깨우라는 말보다 <달과 6펜스>의 스트릭랜드만 생각하면 가슴 한편이 뜨거워진다. 결혼과 사랑의 순결을 이야기할 땐 설교 한편보다 <제인 에어>, <쿠어바디스>를 떠올린다. 인간관계에 대한 오해가 생길 때 <오셀로>를, 고결하고 장엄한 인생은 <칼의 노래>를, 용서와 참회는 <레미제라블>을, 재앙 앞에서 인간이 연대하는 아름다움은 <페스트>를, 사랑에 대한 수치심과 죄의식은 <책읽는 남자>의 한나와 미하엘을 생각한다. 누구를 닮으라고 하기보다 <큰바위 얼굴>을 들려준다. 문학은 내 영혼과 감정, 마음에 스며들어 인생관, 세계관, 가치관을 형성한다. 문학의 힘을 알고 믿기에, 나는 오늘도 자라날 아이들에게 심겨줄 작품을 신중하게 선택한다. 짧은 인생 동안, 꼭 만나야 할 책을 소개해주는 것이 나의 몫이자 사명이라 여기며 작은 발걸음을 내디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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