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람독서

어른의 프레드릭, 어린이의 프레드릭

사람독서_프레드릭

by 겨자씨앗

예상이 빗나갔다. 프레드릭으로 토론했을 때, 어른들은 동경할 줄 알았고, 어린이들은 열광할 줄 알았다. 그러나 어른이나 어린이나 둘 다 현실적이었다. 프레드릭보다 들쥐 가족에게 주목했다. 먹을 양식과 예술을 도마 위에 올려놓은 결과, 양식의 승리였다. 자본이 우리 삶을 지대하게 차지해버렸다. 프레드릭이 빛나기보다는 들쥐 가족이 프레드릭을 이해해주고, 배려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에 더 공감했다. 겨울을 나기 위해 들쥐 가족은 뼈 빠지게 봄, 여름, 가을 동안 일한다. 반쯤 눈을 감고 일하지 않는 프레드릭에게 "넌 왜 일을 안 하니?"라고 묻는다. 프레드릭이 하는 말은 "나도 일하고 있어. 어두운 겨울날들을 위해 햇살을 모으는 중이야."라고 대답한다. 점점 나무라듯이 말하는 들쥐 가족의 목소리엔 짜증이 묻어난다. "너 꿈꾸고 있지?" 프레드릭은 짤막하게 '색깔'과 '이야기'를 모으고 있단다. 햇살과 색깔, 이야기는 겨울에 없는 것들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며 정신세계다.


겨울철, 양식이 다 떨어져 프레드릭이 굴 속에 따스한 온기를 내보내고 휘황찬란한 색깔을 뽐내며, 시를 들려주니 들쥐들은 "너는 멋진 시인이야!"라며 극찬할 때, 프레드릭은 "나도 알아~."라며 수줍게 대답한다. 멋진 결말이다. 적어도 그림책이니까. 그러나 보이지 않는 세계를 추구하며 창작의 고통을 감내했던 예술의 삶에 대중의 인정과 지지를 받지 못한 삶도 많다. 암울하고, 외롭고, 처참하고, 고독했다. 번민하고 고뇌하여 자신의 영혼을 털어 이것 아니면 안 되기에 그 길을 걸었던 사람들이다.


발칙한 '청소년 불가' 그림으로 숨김없이 솔직하게 그렸던 에곤 실레는 선정성으로 인해 구금되기도 하고, 엄청난 지탄을 받았다. 12년간 드로잉 2,000점, 유화 300점을 그리며 치열한 삶을 살다 스페인 독감으로 아내와 태아를 잃고 자신도 28살에 사망한다. 오로지 혼자 기초부터 쌓아 올렸던 그의 '신예술가'적 정신을 후대는 비로소 알아본다.


고흐야 말로 사후에 알려진 대표적인 화가다. 정신질환, , 압생트 중독, 가난과 외면 속에 죽음마저도 미스터리가 되어버린 그이지만, 그의 그림들은 너무나 감미롭고 황홀하며 생기가 넘친다. 그가 그린 별과 달이 보이는 노란 테라스에 앉아 '미드나잇 인 파리'에 나온 길 펜더처럼 고흐와 마주 앉아 그의 괴로움이 무엇이었는지 묻고 싶다.


견고하고 영원한 박물관 같은 인상주의를 남기고 싶었던 세잔은 29년간 엑상프로방스에서 은둔 생활을 했으며, 33세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던 고갱은 용기도 재능도 부족한 자신을 한탄하며 매일 목매는 게 나은 건 아닌지 갈팔질팡이었다.


나는 앙리 루소의 작품을 좋아한다. 강렬하고 꿈꾸는 듯한 묘한 신비감과 야생의 매력이 메마르고 건조한 삶 가운데 활발함을 채운다. 49세 때야 비로소 전업 화가의 길을 걸었던 그는 비평가와 대중의 야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구현했다. 다행히 죽기 3년 전, 인정받긴 했으니 보람도 느꼈을 것이다.


어린아이는 모두 예술가다. 아이는 말을 배우기 전, 그림을 묘사하고, 클래식을 모르더라도 리듬과 노래를 좋아한다. 천부적이자 원시적 심미안이 있다. 흥겹게 흥얼거리던 몸짓이 점점 나이가 들면서 예술은 고급 세계고 왠지 교양과 지식을 잔뜩 머금어야 하며, 조예와 안목이 없기에 점점 멀어진다. 봐도 뭔지 모르겠고, 설명하기도 난해하며 의도적으로 찾지 않는 한, 예술을 즐기는 것은 부하고 여유로운 사람이나 하는 것이라 여긴다. 하긴 그렇다. 미술사도 음악사 지식도 없다는 거 인정한다. 그러나 예술을 즐기는 건 지극히 개인적 체험이다. 작품이 말을 걸어 내게 손짓할 때, 그때부터 보이기 시작한다. 이 행위는 몸이 반응하는 것이며 꿈틀대기 시작하는 영혼의 끓어오름이. 작가가 의도한 것을 알아채든, 무시하든 온전히 주관적이고 나만의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창세의 순간을 목격할 때 느낄 법한 기쁨과 외경을 느꼈다고 할까

무섭고도 관능적이고 열정적인 것.

그러면서 또한 공포스러운 어떤 것.

그를 두렵게 만드는 어떤 것이 거기에 있었다.

그것은 감추어진 자연의 심연을 파헤치고 들어가, 아름답고도 무서운 비밀을 보고 만 사람의 작품이었다.

그것은 사람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신성한 것을 알아버린 이의 작품이었다.

화가 고흐를 모티브로 한 [달과 6펜스]에서 그의 그림을 보고 기이하고도 신비한 감정을 적어 내려 간 것이다.


그림과 음악과 문학은 들쥐 가족들이 열심히 양식을 모으는 중에도 우리 곁에 꼭 있어야 할 존재들이다.

한 학생이 이렇게 썼다.

"나는 색깔이 세상의 꽃이라고 생각한다.

이야기는 세상의 즐거움이라 생각하고,

햇살은 세상의 주요 원소(근원)라고 생각한다. 프레드릭은 즐거움과 마법을 주었다.

프레드릭과 들쥐 모두 일을 잘했다. 모두 칭찬해주고 싶다."라고.


맞다. 세상살이, 들쥐도 프레드릭도 모두 필요하다. 아이들은 들쥐를 선호했지만, 결국 프레드릭이 몹시 창의적이고 곁에 있었으면 했다. 어른들은 자신은 들쥐이지만 프레드릭 같은 삶을 살고 싶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양식은 꼭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지만 우리의 성장은 예술에 기반하고 있음을 이제는 알 나이가 됐다. 예술이란 자체 발광하기에 팍팍하고 메마른 현실을 감내하는 힘과 위로를 준다는 것도 안다. 불모의 땅이었던 섬을 개간해 아름다운 동산을 만들었던 이가 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나도 나름대로 예술가였소. 내게도 그런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이 있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그 친구가 그걸 그림으로 표현했다면, 나는 인생으로 표현했을 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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