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람독서

[페스트] 코로나19 이후를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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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자씨앗

재난 영화를 보며 내가 저 안에 있었다면 살았을까 죽었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이름은 존재할 법한 수많은 생명체들이 죽는다. 물론 영웅과 관계된 이들 외엔 무더기일 뿐이다. 영웅이 된 주인공은 늘 머리가 좋고, 용감하고, 위기의 순간에 기발하고, 임기응변이 뛰어나며 마음도 따뜻하다. 늘 옆엔 그를 성심성의껏 도와주는 조연이 있다. 난 주인공일까. 무더기일까. 천재지변이든, 인위적이든 재난 앞에 인간들은 어떻게든 이겨냈고, 지금까지 이어왔다.



단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었던 팬데믹 시대를 맞았다. 4차 산업혁명이란 이름으로 온라인 노마드 시대를 예견했지만, 일부 미래학자들이 기후 변화와 전염병 등 위기를 경고했지만, 2021년을 살아가는 내게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다. 마스크와 강제 격리, 집합금지, 출국 금지, 상업 금지, 실업자 양산, 장례식과 결혼식 50인 참석, 면회 금지... 이렇게 사람을 회피해야 하는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다. 재난의 모습은 아비규환이 아니었고, 500, 600, 1000이란 숫자가 생명의 수인지, 그저 숫자인지 무감각해졌다. 여전히 해와 달과 별은 아름답고, 새는 지저귀고, 꼿꼿이 선 건물도 똑같은 일상의 모습이었다.

알베르 까뮈의 소설 [페스트]에선 재난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한다.

"옛날이야기에 등장하는 믿음직스러운 영웅이나 여러 가지 눈부신 인간의 행동 같은 것들이 없다는 이야기다. 재앙만큼 보잘것없는 구경거리는 없으며, 엄청난 불행은 그 불행의 시간 자체만으로도 단조로운 법이다. 그런 시간을 보낸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는, 페스트가 퍼진 그 끔찍한 나날들이 끝없이 잔인하게 이어지는 거대한 불길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지나가는 길 밑에 있는 모든 것들을 짓눌러버리는 끝없는 제자리걸음처럼 보였던 것이다.

페스트 초기에 그들은 남들에게는 존재 가치가 전혀 없지만 자신들에게 무척 중요한 자질구레한 일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에 놀랐다. 그것으로 개인적인 생활이라는 것을 체험한 셈이다. 그런데 이제는 반대로 남들이 흥미를 보이는 것에만 흥미를 느끼고 일반적인 관념만을 떠올렸다. 또 그들에게는 사랑조차도 가장 추상적인 모습을 띠게 되었다.

그들은 더 이상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았다. 페스트가 가치의 판단을 없애버린 것이다."


청소년들과 [페스트]로 토론했다. 코로나 전이나 후에나 변화가 없다는 학생도 있었지만, 가장 큰 변화는 '자신을 찾은 기회'였다고 대부분 이야기했다. 왜 이리 분주했을까, 매일 가야 할 곳이 없어지니 비로소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을 빼고 더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구분 짓게 됐다. 혼자 보내는 이 시간이 너무 좋다고 한 친구도 있었고,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식사도 같이 하고, 대화도 많이 하게 되어 좋다고 했다. 한 친구는 실내 체육관에 갈 수 없어서 집 주위를 둘러보다가 발견한 농구대에서 아버지와 함께 농구를 시작하게 됐고, 점점 흥미를 느끼게 됐다. 문화센터 농구부에 등록하여 지금은 이웃 형, 누나, 동생들 거의 30여 명이 함께 밤 10시까지 농구하면서 친구도 생기고, 심지어 농구 운동선수가 되어볼까 고민 중이란다. 많은 것들이 막혔지만 또 다른 것들이 열렸다. 분명, 코로나19는 누군가에겐 엄청난 기회를 준 셈이다.



[페스트]엔 재난을 당한 인물들이 어떻게 질병을 대하는지 나온다. 문학의 인물들은 우리와 다른 상황에 처해 있지만 닮은꼴을 보이면서 해소와 공감을 동시에 맛본다. 진절머리가 나다가도 어느 순간, 측은해지면서 인간이란 이렇게 연약한 존재임을 자각한다.


의사 리우는 페스트 발병부터 마지막까지 화자면서 각 인물들과 연결고리를 만든다. 아내가 죽어간 순간에도 그는 여전히 봉쇄된 오랑 시에서 끝까지 환자를 돌본다. 정부 관리들에게 경고하기도 하고, 혈청을 맞았지만 온 몸을 비틀어가며 마치 십자가 형을 당하는 듯한 자세로 죽어가는 어린아이를 지켜보며 과연 신이 존재한다면 이럴 수 있는지 울부짖는 것도 리우다. 우정을 쌓게 된 타루를 잃어버리면서 페스트가 단순히 질병 이상의 의미임을 깨닫는 것도 리우다. 현재 최전선에서 코로나와 사투를 벌이며 어떻게 해서든지 국민과 가족의 안위를 위하여 밤낮 달려가는 그들 모두, 리우다. 엄연한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면서도, 희망을 놓지 않고 돌보는 그들이다.


기자 랑베르는 갖은 노력으로 도시를 탈출하려고 시도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보지 못하더라도 이곳에서 리우를 돕겠다고 남는 인물이다. 소중한 것을 제쳐두고, 나의 상황은 잠시 접어둔 채 그들이 달려가는 곳이 있다. 나보다 더 어려움 당하고 힘들어하는 이웃들에게 손 내미는 그들이 모두 랑베르다. 소외되고 고독하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이들에게 소망을 전하는 이들이다.


신부 파늘루에겐 오직 '신'이 희망이다. 신에 대한 사랑과 전적인 믿음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며, 이 재앙 앞에서도 초연하며 정의롭지 않은 순간에도 진리를 찾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신'앞에 기도하며 이 순간을 버티고 견디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공무원이자 작가 지망생 그랑 같은 사람들이 대부분 평범한 사람의 모습이다. 페스트가 오든, 오지 않든 일선에서 자신의 일을 묵묵히 감당하며 미래를 위해 충실하게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그랑이다.


코타르 같이 페스트 사회에 오히려 기분 좋게 성장하면서 사람들과 더 사교적이 되고, 부를 쌓다가 페스트가 잦아들 즈음, 예전에 자신이 저지른 악한 일들을 못 견뎌하며 은둔하는 사람들도 생길 것이다. 코로나 생활을 마음껏 즐기다 다시 사람들과의 모임이 재개되고, 회사나 학교, 종교단체에서 일정하게 요구되는 의무들을 요구받을 때, 그들은 코로나 시대가 더 좋았는데 하며 복귀가 힘든 무리들이다.


마지막으로 타루를 이야기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타루의 죽음이 어린아이의 죽음보다 훨씬 안타까웠다. 그는 페스트라는 질병이 오기 전부터 자신이 병에 걸려 있었다고 말한다. 인간이 만든 부조리와 악, 사형을 집행할 수 있는 법, 범죄와 모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엄청난 권력과 힘,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죄와 실수... 페스트에 짓눌려 안식을 구했던 타루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사람을 살려내는 일이라며 리우와 환자를 돌보고, 그렇게 스러져갔다. 코로나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민낯을 드러냈다. 가까이는 그동안 각자의 시간에 파묻혀 살았던 가족의 민낯을, 의무와 시스템에 억눌렸던 인간의 본성을 끄집어냈고, 학교에서 주는 급식 외엔 먹을 도리가 없었던 고독한 이웃들을, 자영업자들이 겨우 한 달 한 달 이어갈 정도였음을 알게 됐고, 연대해야 풀 수 있는 많은 모임들이 금지당했다.


어는 누구도 코로나 이전 상황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우리의 상상력은 코로나가 잦아드는 그 시점에 맞닿아 있어야 한다.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타인이 요구하는 대로 더 이상은 맹목적으로 살지 않아야 함을 알게 됐을 것이다. 나 자신에 대한 실망과 기대를 맛봤을 것이다. 오롯이 나를 바라볼 수 있었던 이 시기를 잊지 말고, 후회와 미련 없이 배우고 습득한 것을 기록해 나가야 할 것이다. 리우가 그랬다. 공포와 지칠 줄 모르는 공격에 대항해 계속 수행해야 했던 것, 성자가 될 수도 없고 재앙을 허용할 수도 없는 의사였기에 괴로움에도 여전히 수행해 나가야 할 것만 생각했다. 언젠가 코로나는 독감 정도로 볼 환희의 날이 오겠지만 또 다른 코로나가 올 것이며 어떠한 위협에도 불구하고, 살아내고 버티고 견디는 '나'만의 힘을 길러가는 것, 그것이 우리에겐 코로나 이후의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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