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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자씨앗 Oct 23. 2021

 [초원의 연꽃] 거스르는 담대한 용기

초원의 연꽃_린다 수 박


코로나가 터지기 몇년 전부터 나는 캄보디아, 베트남, 중국, 몽골, 러시아 등지에서 온 어린 자녀들을 1주일에 2시간 정도 돌보는 봉사를 해왔다. 언어 장벽, 문화 충격, 낯설음이란 관계를 어떻게 이겨낼지 걱정하면서 말이다. 예상과 달리 그들은 어눌하지만 한국어로 또박또박 이야기했고 적응하는 데도 별 무리가 없었다. 나의 세 자녀도 함께 데려갔는데, 혹여 다름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함부로 대할까봐 걱정했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오히려 서로 어울리면서 잘도 놀았고, 장난감으로 투닥거리긴 했지만 금방 잊고 딱지치기, 팽이돌리기, 종이접기 등을 함께했다. 다름은 호기심으로, 외모나 어투는 그저 ‘각자개성’이었다. 적어도 놀이에선 그랬다.


그러고보면 편견과 차별은 어릴 적부터 타고난 것이 아니다. [초원의 연꽃]은 1800년대 미국 초기 개척시대 미국인 아버지와 중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한나의 고된 여정을 들려준다. 어머니는 유색인종 폭동이 일어났을 때, 화재로 인한 연기로 페를 심하게 상하여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곳저곳을 떠돈 부녀는 라포지에 당도하지만 한나의 교육 기회는 부당한 제도와 편견 덩어리인 주민들로 인하여 제지당한다. 한나를 이해해주는 건, 친구 샘과 베스, 그리고 월터스 선생님이다. 아이들의 편견은 어른들이 만들어낸다. 중국인은 더럽고, 함께 공부하는 것은 공평하지 못하다는 것, 범죄자에 사고를 일으키기 쉽고, 종교와 문화가 다르니 위험하다는 것, 백인과 유색 인종의 결혼은 불법이라는 것들 말이다.

 

낯설음은 왜 부당함으로 이어질까. 한나의 아버지가 보여주는 시각은 이를 더욱 뚜렷하게 보여준다. 자신의 아내와 딸이 유색인종 차별받는 것을 괴로워하면서도 인디언들이 생계를 위해 거주 지역을 벗어난 것은 신고한다. 이렇듯, 상대방이 어떠한 위협과 공격을 가하지 않았음에도 선입견과 뿌리 깊은 인종 차별적 견해는 무섭고 치명적이다. 한 집단에 대하여 법과 제도로 틀을 가두고 학살과 불공정한 대우로 공평의 기회를 박탈하는 모습이 지금도 우리에게 얼마나 만연해 있는가.

 

한나가 꿋꿋하게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용기와 강단있게 헤쳐나간 정신력도 중요했지만, 여전히 개인의 한계를 보여준다. 스웬슨이 한나를 폭행하는 사건은 도리어 피해자 한나가 주민들의 동요와 반발을 사게 되고, 그녀의 드레스 가게 개업조차 어려워진다. 이들의 오해를 푼 것은 같은 주민이었던 베스와 월터스 선생님 덕분이었다. 이렇듯, 의식있고 깨어있는 사람들이 나서서 편견을 하나하나 거둬내는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그 어떤 교육보다 더불어 함께 평화로 나아가는 길을 모색해나가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빅토르 위고는 [레미제라블]에서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는 나쁜 풀도, 나쁜 사람도 없소. 다만 나쁜 농부가 있을 뿐이오.”


여전히 세상은 천부적인 인권을 파괴하는 괴롭힘으로 가득하다. 프랑스 저널리스트인 엠마 스트라크는 [세상 모든 괴롭힘]이라는 책을 썼다. 괴롭힘의 종류는 위협, 비방, 구타, 비난, 굴욕, 경멸, 공갈, 배제, 강탈, 협박, 압력, 비방, 적대적, 루머, 고립, 모욕, 상처주는 말, 비하, 반복되는 공격 등  수십 가지며 정신, 신체, 정서적 학대로 이어진다.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미얀마, 홍콩, 아프가니스탄 사태 등 인권 탄압과 은근하고도 부지불식간에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행위를 포함한다.

 

이 책을 쓴 작가 린다 수 박 역시 미국과 한국의 혼혈인으로 자라 한나와 같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녀는 로라 잉걸스 와이더의 [초원의 집]을 읽으며 미국인처럼 되려고 애썼지만 어른이 되어서야 그토록 동경했던 책이 인종차별적 편견의 벽을 극복하지 못했음을 깨닫는다. 그러곤 자신의 책에 [초원의 연꽃]이란 제목을 붙인 것은 의미심장하다. 동심 속에 순수한 초원의 세계와 중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상징하는 연꽃(한나는 자신이 완성한 드레스 안쪽에 연꽃을 수놓는다.)을 버무려 자신을 잃지 말기를 당부한다. 거대한 흐름을 거스르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뚫고 나가는 당사자든, 뚫어주는 조력자든 이 책을 읽으며 좋은 농부로서의 삶을 견지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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