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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자씨앗 Mar 31. 2022

[초정리편지] 어린이의 짐

청소년어린이문학_초정리편지

동네 놀이터엔 우리 아이들을 비롯해 10여 명 정도가 매일 나와서 논다. 인라인 스케이트 타기, 경도, 딱지치기, 피구, 좀바, 축구, 술래잡기, 샌드위치 등 해가 지도록 놀고 온다. 학원 갔다가 돌아와서 다시 합류하고, 초등 저학년 아이들은 내내 놀기만 한다. 크고 작은 일들이 일어나면 호출 신호로 "엄마, 형아가 막 밀고 때려요." 하면 "한 번만 더 그러면 내가 내려간다고 해라. 어머님께 말씀드리겠다고 하렴." 그러면 사건 종결된다. 집이 놀이터가 바라보이는 위치라 베란다로 내려다보며 상황도 확인한다. 좋은 때다. 좋은 날이다. 나도 아이들이 노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흐뭇하고 즐겁다.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더라도 2시 30분에 학교에서 돌아오면 바로 학원이 기다린다. 그들의 자유는 많지 않다.  


놀이가 성장에 중요하고 반드시 필요하다는 인식도 몇 년 되지 않았다. 아이들을 개별적인 존재 자체로 보기보다는 미완성 작품, 노동과 재산, 국가 인적 자원, 가문의 운명을 책임지는 도구 수단으로 봤다. 능력주의 사회, 학벌주의, 입시 전쟁, 학원폭력과 우울증, 자살 등은 자녀들을 수단으로 본 결과이다. 우리 사회는 어른들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초정리 편지>엔 11살 장운이란 소년이 나온다. 장운이 어머니는 몹쓸 병에 걸려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석수 일을 하다 그만 손이 작살났다. 소년소녀 가장이 된 장운이와 누이 덕이는 나뭇짐, 품팔이, 심부름 등을 해가며 근근이 입에 풀칠하지만, 일 년에 한 번 쌀밥, 고깃국 한 번 먹을 수 없는 처지다. 부모님 약재 값 대신 팔려가는 덕이를 보내야 하는 조선 시대 신분사회의 비극도 고스란히 그려져 있다. 노비 출신인 장운이네는 할아버지가 양반집 아들을 구한 덕에 양민이 되지만 중인과 양반에게 천대받고 눈총 받는 처지다. 약재 할아버지네 손녀 난이는 장운이에게 마음이 있지만, 드러내진 못한다.


예나 지금이나, 짐은 달라도 여전히 십 대에게 무게가 있다. 자신이 짊어지든, 남이 지어주든, 가볍든, 무겁든 그렇다. 요즘 아이들, 세상 살기 편해졌지, 무슨 걱정이 있겠냐는 말은 시대를 모르는 말이다. 소아비만, 당뇨, 고혈압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먹고사는데 걱정은 없어졌다는 뜻이지만, 마음의 병, 정신심리상담에 줄지어 서있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 지혜가 아닌 지식의 황폐화, 유리천장을 뚫고 나가려는 부모의 바람과 기대로 여전히 아이들은 멍들어 있는 것 같다.


세종대왕의 애민 정신이 빛나는 이유는 당시 하층민의 억울함, 원통함을 알아주었기 때문이다. 훈민정음해례본 서문에서도 밝혔지만 '우매한 백성'이  '뜻을 펼치지 못하는 일'이 많아 불쌍하게 여겨 쉽고 편리한 28자를 만들었다고 쓰여있다. 장운이가 이렇게 가장의 역할을 하게 된 것도 까막눈인 부모가 땅문서에 파는 것이 아니라 빌리는 것이라고 되어 있어 결국 속아 넘어가게 된 것이었다. 글을 알지 못하는 자들은 눈뜨고도 당하게 되는 것이었다. <초정리 편지>엔 이런 하층민의 소년을 통해 세종대왕이 보여주려는 정신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세종대왕이 간직한 '인간답게 사는 것'에 대한 근심을 하고 싶다. 왜 배워야 하는지, 배워서 어디에 쓰여야 하는지, 아무런 편견 없이 그저 뛰어노는 친구들에게 커서도 외식과 허영이 아닌 본질을 볼 수 있는 눈을 드리우고 싶다.  


추천 연령: 초등학교 고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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