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와 나의 부끄러움

<시인 동주>/ 영화 <동주>

by 겨자씨앗


지금 내가 보는 저 하늘의 별은 이미 수만 년 전에 있었던 빛이라 했는가. 그렇다면 윤동주나 송몽규가 바라보았던 별과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 별을 보며 라이너 마리아 릴케, 프란시스 잠, 백석 시인을 읊조려본다. 그의 시를 한 달 여간 필사하며 그와 마주 앉았다. 차분하고 서정적이며 침잠해지는 조용한 희망을 느꼈다. 송몽규는 선생님이 어울리고, 윤동주는 동주님이 어울린다. 하늘에서 만나도 그는 새파란 젊은 청춘에 자상하고 그윽하고 고요하게 "이제 왔어?"라며 미소를 머금고 안아줄 것 같고, 송몽규 선생님은 막 달려와 부둥켜안으며 큰소리 지를 것만 같다. 다른 성격에 다른 반응이지만 그들이 품었던 절규와 고민은 같았다. 민족을 사랑하고, 겨레의 얼을 지키고, 무너져가는 대한제국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 자포자기하고 실망하고 원망하기보다는 일제의 징병제도를 이용해 약한 조선을 세울 수 있는 기회를 삼자고, 조선어 말살정책에 굴하지 않고 세상에 단 3부만 존재하더라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출판하겠다고.


창씨개명을 하고 나서 참회하며, 부끄러운 시대에 태어나 자화상을 바라보며 누추한 걸음을 떼는 육첩방 남의 나라에서 견뎌야 하는 고뇌.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지칠 대로 지친 영혼이 28년, 짧은 생애, 누구도 기억하지 않을 것 같은, 책 한 권 내지 못한 시인이었지만 자신이 살아내야 할 시대를 끝까지 완주한 사람들을 마주한다.(나는 영화 '동주'<2014년, 이준익 감독>를 보고 난 이후, 동주와 몽규를 항상 함께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2022년 대선처럼 뜨거운 박빙은 없었던 것 같다. 20여만 표로 갈라진 당선의 운명은 기대와 불안을 동시에 안고 있다. 이번 투표 역시 지역의 한계를 뛰어넘진 못했지만 이념, 남녀, 연령, 진보 보수 간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민주시민 의식의 성숙도도 많이 향상되고 있다. 특히 젊은 20~30대에서 보여주는 지지는 분명한 그들만의 생각이 있고, 무조건 보수, 진보 편 가르기가 아닌, 정책과 비전에 맞춘 소신 있는 선택이었다고 본다. 우리 부부 역시, 처음 찍고 싶었던 후보가 사퇴하고 난 후, 진퇴양난을 겪는 기분이었다. 1940~50년대 세대는 고정이 되어 있었고, 그분들의 의견은 한쪽으로 치우친 기분이었다. 나는 남편과 어쭙잖은 지식이지만 안보, 외교, 정책, 교육, 가치관과 후보자들 주위 사람들까지 계속 의견을 나누었다. 투표 결과는 나와 남편이 각각 다른 후보자를 찍게 됐다. 투표하고 나서도 상대방 후보에게 끌리는 점이 있었음을 뒤늦게 인정하기도 했다.


이제 대한민국은 지난 세대가 그토록 간절하게 염원한 나라가 됐다. 동주님과 몽규 선생님이 지금 살았다면 마음껏 시를 쓰고, 문학이 가야 할 길을 논하고, 자유를 누리며 꿈을 꾸었을 것이다. 모든 시대는 시대의 고민이 있고, 문제의식이 있다. 2022년을 사는 내가 대한민국에서 꿈꾸고, 바래야 할 길은 무엇일까.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고, 통찰하고 함께 살아가야 할 좋은 세상을 위해 고민하는 그 길은 어떤 길로 걸어야 할까.


나의 부끄러움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저 내 가정의 안위와 편안함, 안일함, 더 잘되기 위해 무언가를 바라기만 하는 내 모습이 가엾고 미워진다. 누군가 해주겠지. 애쓰겠지. 내가 하지 않아도 잘 굴러갈 거야. 어차피 내 힘은 너무 미약한데... 동주님이 내게 눈물과 위로의 악수를 건넨다. 우물 속 '여인'이 그리워지고, 감았던 눈을 뜨고 씨앗을 뿌리며, 신념 깊은 의젓한 양처럼,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며 오늘도, 내일도 주어진 길을 걸으라고. 내 영향력이 미미하다 못해 가치 없게 여겨질 때조차도 이국땅 후쿠오카 독방을 반추하며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고 껴안는 별이 되라고. 그럼, 시인이 걸었던 그 길에 함께 있게 될 거라고.......



<쉽게 쓰여진 시>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19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