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소소한 일상
회사 사람들 점심 주문을 모아 픽업하러 파이브가이즈에 갔다. 가는 길에 처음 가보는 쿠키 가게 Crumbl에 들러 딸기 크림이 잔뜩 올라간 쿠키도 하나 사서 버거 가게로 들어갔다. 큰 주문이라 그런지 픽업 시간을 지나 들어갔는데도 족히 10분은 기다려야 픽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벽 쪽 자리에 앉아 전화기를 여는 순간 제법 떨어진 바 테이블에 앉아 있던 덩치 큰 흑인이 내 테이블 옆 콘센트를 쓰겠다며 다가왔다. 자리를 옮겨야 하나 순간 고민하다 그냥 앉았다. 꾀죄죄한 후디를 입은 그는 가게에서 나눠주는 공짜 땅콩을 가득 담은 종이 접시를 들고 내 맞은편에 앉았다. 그가 땅콩을 입에 넣을 때마다 침이 흘러 희끄무레한 수염에 맺혔는데, 주목해 보니 그는 땅콩을 껍질째 먹고 있었고 와그작와그작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그는 내가 근처 고등학교에 다녔냐고 물어보며 동창인 줄 알았다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의 이빨은 삐죽빼죽하고 검은 선글라스는 눈을 가리고 있었고 말도 조금 어눌한 데가 있어 기분 좋게 상대하기는 힘들었다. 어디서 왔냐부터 무슨 일 하냐 등등 이어지는 질문 세례에 얼버무리듯 대답하니, 그도 Why do you look intimidated 하며 물어왔다. I’ve seen you for the first time! 대답하니 수긍하는 듯했다.
그는 목이 마르다 하며 음료수 하나 사달라고 했는데 싫다고 하니 카운터에 가 공짜 물컵을 달라고 하여 소다 머신에서는 환타를 받아 마셨다. 다시 와서는 취미는 무엇인지 무슨 운동을 하는지 질문을 이어가다 통성명했다. 그의 이름은 드웨인. 그는 곧 선글라스를 벗고 대화를 이어갔는데 웅얼거리는 말은 모두 알아듣기 힘들었다. 드웨인은 내 쿠키 상자를 보더니 대뜸 줄 수 있냐고 물어왔다. 나도 처음 먹어보는 거라 싫다고 했다. 그는 여기서 친구와 점심 먹기로 했다고 말했다. 언제 오냐고 물어보니 soon이라곤 하지만 믿기 어려웠다. 선글라스 뒤에 숨어있었던 부리부리한 눈을 보며 그의 말을 경청하는 척하다 조리대에 음식 포장이 얼마나 남았는지 힐끗 쳐다보았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야... 속으로는 짜증을 내면서.
그가 물컵에 환타를 리필하러 갔을 때 나도 일어나 화장실로 대피했다가 카운터에 다시 가보니 드디어 음식 포장이 완료되었다. 음식 봉지 예닐곱 개를 움켜쥐고 나가려고 고개를 돌렸을 때 드웨인의 커다란 등이 눈에 들어왔다. 봉지를 내려놓고 햄버거 하나를 꺼내 그에게 건냈다. 그는 Thank you very much. Does it have a bacon in it though? 물어보길래 치즈버거라 답해줬다. 무슬림계였나? 회사에 돌아와서 햄버거 없이 감자튀김만 집어먹으면서 내가 한 행동이 맞는 거였나? 그렇게 고마워하는 거 같지도 않았는데.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드웨인은 허름한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난 예수님이었을지도… 그렇게 생각하고는 짭조름한 감자튀김을 하나 더 집어 입에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