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질은 계속된다 - 삿포로

남편과 함께 쓰는 홋카이도 여행 이야기 12

밤에 그렇게 마셨으니 아침 분위기는 상당히 고요하다. 특히 남편분... 그 와중에 나가서 이것저것 사 들고 들어온다. (호스트 사사키 상이 대문 앞에서 반갑게 인사해 주셨는데, 꼴이 말이 아니라 후다닥 "오하이요"만 외치며 도망치듯 들어왔네. 죄송합니다... 대화하기 싫어서 그런 건 아니었어요 ㅠㅠ)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강황이 든 숙취 해소 음료도 사 와 챙겨 마시고.


우리가 묵었던 숙소는 쓰레기통이 세 가지로 분리되어 있었는데, 타는 쓰레기와 안 타는 쓰레기를 구분하는 게 좀 까다로웠다. (삿포로의 쓰레기 분리는 10종류로 나뉜다고 한다.) 다행히 (산처럼 쌓인 ㅠㅠ) 술병과 캔 수거는 무료라고 한다. 정리를 어느 정도 마친 후, 친구가 부른 우버 택시에 짐을 실었다. 이전 글에 썼던 것처럼 메구미 상이 나와서 따뜻하게 배웅해 주셔서 감사했다.






오늘은 며칠간 즐거운 시간을 함께했던 친구 부부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만날 때마다 유쾌한 두 사람. 소소한 일에는 말이 많아 보여도, 큰 결정은 망설임 없이 내리는 모습이 늘 감탄스러운 친구 녀석. 한번은 정말 어려운 부탁을 한 적이 있었는데, 0.1초 만에 흔쾌히 수락해 주어 큰 감동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혹시나 해서 덧붙이자면, 돈 얘기는 아니었습니다... 껄껄)과 세상 현명한 아내 H씨.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배울 점도 많고 무엇보다 정말 재미있다. 언제 만나도 기분 좋은 사람들.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작별 인사를 나눴다.


건강히 지내다 곧 또 만나요!






자 이제 우리 숙소를 찾아갈 시간.

남편은 숙취에 낑낑거리는 와중에도 계획했던 대로 휴대용 카트에 배낭을 장착하며 준비를 한다.





역과 가까운 곳에 숙소를 잡는다고 잡았는데 지상과 지하를 오르내리고 헤매느라 꽤 걸은 느낌이다. (나중에 보니 실제 거리는 가까웠다). 남편은 숙취로 더 힘들었겠지. 체크인 시간이 안 되어서 호텔에 짐만 맡겨두고 우선 좀 쉬기로 했다. 커피숍을 찾아보니 길 건너편인데, 남편은 거기까지 가는 것도 힘겨워 보인다. 아이고, 이 웬수 덩어리. 놀 때는 좋았지.



다시 지하로 내려갔다. 삿포로는 겨울의 혹한 때문에 지하도가 아주 잘 마련되어 있다. 내려가자 마자 의자를 발견하고 앉아 버리는 남편(놈). 잠시 쉬어야겠다기에 그 사이 나는 지하도에 있는 식당들을 둘러보고 왔다. 돌아오니 기운을 조금 차렸는지 어제 다녔던 도큐백화점으로 가보자고 한다. 꼭대기 층 식당가에 가니 넓고 편한 소파가 있어 쉬기 딱 좋았다. 사람도 별로 없어서 좋았다.


남편을 소파에 널어놓고 혹시 9층에 피크민 가챠가 재입고 되었나 확인하고 (안 됨) 화장실도 들르고 돌아오니, 그 와중에 밀린 Inktober 그림을 그리려던 남편이 가방 안에 애플펜슬이 없다고 한다?! 뒤지다 결국 포기를 하고, 마침 편리하게도 아래층에 있는 빅카메라에서 다른 아이패드용 펜슬을 산다. 역시 삽질도 돈으로 하는 남편.






그러다 보니 점심 때다. 아카렌카 테라스의 푸드코트에서 스프카레를 먹기로 한다. 사람들이 꽤 많았지만 줄을 서지 않는 게 어디냐 하며 마침 난 창가 자리를 잡았다. 푸드코트 특성상 한 명은 자리를 지키고 한 명은 주문을 해야 하는데, 남편은 아직 뭘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기에 가서 한 번 더 둘러보라 하고 미리 생각해 둔 내 주문을 맡겼다. 나중에 보니 엉뚱한 걸 오더했지만, 그래, 이 정도의 삽질은 귀엽다고 쳐 주자. 치킨 카레를 먹었는데 카레는 괜찮았지만 닭조각이 너무 크고 질겼다. 남편은 햄버그 카레를 시켰고, 컨디션이 별로라며 밥은 작은 사이즈로. (치킨 카레, 햄버그 카레, 작은 밥 두 개 해서 3,250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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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넘 잘 드시는데? ㅋㅋㅋㅋㅋ


진실의 미간. 화난 거 아님 주의


웃기기는 해도, 이렇게 잘 먹어주면 마음이 놓이고 고맙다. 못 먹을 때가 진짜 문제지.


카레 한 그릇을 뚝딱 비운 남편은, 힘이 나서 돈을 더 쓰러 가셨다는 이야기. 펜슬을 잘못 샀단다. 더 비싼 걸로 바꿔야 한단다.


삽질은 계속된다.






펜슬을 사고도 아직 시간이 남았다. 백화점 지하로 가서 녹차 아이스크림을 사 조금씩 떠먹으며 남편은 그림을 그리고 나는 영수증 정리를 했다. 이 곳에는 유명해보이는 커피가게도 있어서 소분된 드립 팩도 좀 구매했다. 우리는 산미가 강한 커피를 좋아하는데 그쪽 계열은 아니었지만 포장도 예쁘고 원두에 홋카이도 지명으로 이름을 붙여 선물용으로도 좋아보였다.


자릿세 개념 녹차 아이스크림. 컵에 그림이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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