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녀부전나비

날개옷 입고 훨훨 날아간 선녀

by Eco archivist

초여름, 숲의 생명이 가장 치열하게 피어날 무렵이면 전래동화 같은 나비가 생각난다. 선녀부전나비.

날개를 펼쳤을 때 짙고 화려한 청람색을 띠며 마치 신비로운 선계의 옷자락을 연상시킨다.

반면, 숲의 나뭇잎에 내려앉아 날개를 접을 때면 은은한 순백의 뒷면은 숲과 어우러 진다. 그 드러냄과 감춤의 미학이야말로 '선녀'라는 이름에 걸맞은 아름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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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부전나비


이름처럼 아름다운 이 나비의 생활사를 온전히 기록하는 일은 난이도 최상의 까다로운 작업이다. 특히 쥐똥나무 줄기에 낳아둔 1mm 남짓한 작은 알을 찾아내는 것은, 광활한 숲에서 모래알을 찾는 것만큼이나 고도의 집중력과 인내를 요구한다.

선녀부전나비가 관찰되는 숲 속을 샅샅이 뒤진 끝에 마침내 그 작은 알을 발견했을 때의 환희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큰 기대를 품고 겨울을 지나 봄이 오고 생명이 깨어나기를 간절히 기다렸으나, 시간만 무심히 흘렀고 그 알은 끝내 부화하지 못했다.

최근 해외의 나비목 생태 연구들을 살펴보면 선녀부전나비는 알에서 갓 깨어난 1령 애벌레 시기의 생존율이 아주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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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부전나비 알(쥐똥나무)


수많은 알 중 아주 적은 수만이 살아남아 애벌레로 성장하는데, 어렵게 살아남은 녀석들의 삶은 '선녀'라는 우아한 이름과는 거리가 멀다.

이들은 실로 잎을 엮어 자신만의 은밀한 은신처를 만들고 거점으로 삼아 지낸다. 때로는 개미들을 유인해 보디가드로 삼는 영악한 공생의 지혜까지 발휘한다.

숲의 으슥한 곳에서 개미와 호형호제하는 선녀라니, 곤충의 세계는 늘 상상을 뛰어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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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부전나비 2령 애벌레와 은신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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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부전나비 종령 애벌레


최근에는 숲에서 이 매력적인 곤충을 마주하는 일은 눈에 띄게 드물어졌다. 흔히 사람의 간섭 없이 방치되어 자연성이 높아진 울창한 숲이 모든 야생 동식물에게 천국일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생태계는 그런 단순한 공식으로 설명되지 않으며, 선녀부전나비가 바로 그 씁쓸한 역설을 증명한다.

일본에서 선녀부전나비는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사토야마(Satoyama, 전통적 마을 숲)' 환경에서 번성한다는 보고가 있다. 사람들이 땔감을 구하거나 길을 내며 숲에 적당한 간섭이 이루어지는 곳에 햇빛이 스며드는 숲 가장자리(임연부)가 형성되고 그곳에서 기주식물인 쥐똥나무가 번성하는 것이다. 나비 역시 그 밝은 틈새에서 함께 춤을 췄다.

하지만 숲이 빽빽하게 우거져 빛이 차단되어 쥐똥나무가 쇠퇴하면, 선녀부전나비 역시 숲 밖으로 밀려나고 마는 것이다. 고도화되고 방치된 숲이 이들에게는 오히려 서식지를 빼앗는 환경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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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부전나비


여기에 기후변화로 인한 온도 상승과 환경의 급변은 이 우아한 나비의 생존을 더욱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숲의 틈새가 사라지고 기후마저 요동치는 지금, 어쩌면 우리는 이 초여름의 동화가 현실에서 지워져 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진 속에 담긴 알과 애벌레, 그리고 번데기가 내년 초여름에도 무사히 날개를 펼치기를.

숲의 작은 빈틈에서 그 씩씩하고도 우아한 선녀의 날갯짓을 오래도록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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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부전나비 번데기(은신처에서 번데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