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현이 생일, 전 님(남편) 생일, 전 님과 나의 결혼기념일까지 나름 중요한 행사가 세 개가 있다 보니 뭘 거창하게 챙겨주는 것은 딱히 없을지라도 나의 머릿속은 늘 복잡하고 몸은 분주한 그런 달. 게다가 올해(2023년)는 결혼 10주년이 되는 해였다.
10년 전 신혼여행지는 이탈리아였다. 난생처음 가본 이탈리아의 분위기 -스테이크, 와인- 에 반한 우리는 결혼 10주년이 되면 꼭 다시 이곳에 오자고 이야기했었다.
그러나 말만 그렇게 하고 우린 이탈리아행 비행기를 다시 타기 위한 어떠한 행위도 하지 않았고 (예를 들면 여행자금 모으기, 외국어 공부 등) 어영부영 현생을 바삐 살다 보니 10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흘렀다. 무엇보다 우리 집에는 아직 유럽 여행을 함께 하기에는 조금 벅찬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이 있다.
우리는 이탈리아가 아닌 일본 도쿄에 가기로 했다.
10년 전 약속했던 곳은 아니었지만, 현이의 소울메이트 비아가 살고 있는 도쿄는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곳이었다.
우리 네 가족의 해외여행은 첫째가 5살, 둘째가 15개월이었을 때 떠났던 2018년 여름의 후쿠오카가 마지막이었다. 그 후 코로나가 터졌고, 우리 가족의 여권도 자연스레 모두 만료되었다. 우리는 여행보다는 매주 캠핑을 다녔고 아이들은 본인들도 비행기를 타본 적이 있다는 걸 마지막 여행 때 만들어 주었던 포토 북을 통해 기억할 뿐이었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부터 착륙할 때까지 칭얼대며 울며 온갖 민폐를 끼치던 15개월의 아기는 어느덧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형아가 되어버렸다.
기저귀도, 이유식도 아기 띠와 유모차도 필요 없는 일본 여행이라니! 아이가 자란 만큼 나는 늙었지만, 어쨌든 감개무량하다.
하늘 길이 열린 올 초 본격적으로 도쿄 여행 계획을 세웠고, 7월 즈음부터 비아네와 여행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뒤로 한 달은 지나서야 비행기 표를 예약했고, 비행기 표를 예약한 뒤로도 한동안은 그 뒤로의 일정을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 못한 채로 시간이 흘렀다.
우리 집에서 그나마 한가한 내가 여행 일정과 예약을 주도해야 하는데 마침 10월 중순까지 그려야 하는 책 삽화가 있어 여행 계획 짜는 것은 계속 미뤄졌다.
결국 세부적인 여행 일정은 제대로 짜지도 못하고 꼭 하고 싶은 큰 틀 안에서 항공, 교통, 환전 등을 번갯불 콩 볶아 먹듯이 벼락치기로 해치워버렸다.
만료된 아이들 여권을 다시 만드는 과정도 우당탕탕이었다.
두 아이 다 돌 무렵 여권을 만들었었는데 그 어렵다는 ‘집에서 여권 사진 찍기’에 둘 다 성공했던 터라 이번 갱신 때도 당연히 집에서 촬영해서 당당히 시청 여권과에 가져갔다.
그러나 나름 심혈을 기울여서 촬영하고 인화해 간 아이들의 여권 사진은 정면응시를 하지 않았고 얼굴이 그늘졌고, 귀와 눈썹이 미묘하게 가려져있다는 각종 사유로 반려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