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진보초 거리를 둘러본 것 외에도 신주쿠 교엔, 포켓몬의 성지 아키하바라 등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한 하루였다. 저녁이 다 되어서야 비아네로 돌아왔는데 평소의 나였다면 그대로 곯아떨어져 버렸겠지만, 도쿄의 빛나는 밤을 이대로 보낼 수 없어 방전 직전의 몸뚱아리에 잠깐의 급속 충전만 해준 후 다시 집을 나섰다.
버스를 타고 도쿄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 중 하나인 시부야에 하차했다. 엄청난 인파가 몰리기로 유명한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를 건너 시부야역 앞에 세워진 충견 하치코 동상 앞에서 기념사진도 찍고, 가부키초 거리를 걷다 어느 이자카야 야장이 펼쳐진 곳에서 나마비-루 도 한 잔 걸쳐보았다. 그리고 한국인지 일본인지 헷갈릴 정도로 한국 체인점이 즐비한 한인타운 거리를 걷다 발견한 한신포차에서 짬뽕으로 마무리 해장을 하고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호스트가 차려준 안주와 사케까지 먹고 나서야 드디어 (역류성 식도염을 걱정하며) 잠이 들었다.
이만보는 가뿐히 찍었을 하루지만 요점은 맥주 먹고 소주 먹고 사케 먹었다는 이야기.
너무 반주의 흐름이었나.
여행 3일 차인 오늘은 도쿄 근교 소도시 가와고에에 가보기로 (가이드님이 결정)했다.
가와고에는 에도 시대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한 전통 마을로 도쿄에서 북쪽으로 3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전철로 50분가량 이동하는 동안 정류장을 지날 때마다 승객 수는 점점 줄어들어 도착했을 즈음엔 몇 명 안 되는 숫자만 남아 있었는데, 생각보다 편히 관광할 수 있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막상 가와고에 입구에 들어서니 이미 엄청난 인파가 몰려 있었다. 대체 이 사람들은 어디에서 왔으며 뭘 타고 온 것인가 의아함도 잠시… 일본 전통적인 건물들과 다양한 잡화점, 간식거리 등 볼거리가 즐비한 이 길고 긴 거리에 이내 시선을 빼앗겨버렸다.
역사적으로 ‘작은 에도’로 알려진 이곳은 거리의 일부가 에도시대 옛 성시가 보존된 지역으로 전통 상점이 많은 데다 인기 있는 다양한 이벤트도 많아 주말이면 엄청난 인파로 붐비는 곳이다.
기타인사원, 히카와 신사, 다이쇼 낭만 거리, 가와고에성, 그리고 가와고에 축제까지…
우리가 찾았던 날 열 보 전진이 힘들 정도로 인파가 많았는데 안 그래도 북적이는 주말 가와고에가 더 붐볐던 이유는 가와고에 축제 수레가 열리는 기간이기 때문이었다.
걷고 또 걸었지만, 아이들은 어제 진보초 거리를 걸었던 것만큼 힘들어하지는 않았다.
(서점이 이렇게나 아이들에게 무서운 존재인 건가!) 재미난 캐릭터가 있는 상점 앞에서는 서로 사진도 찍어주고, 처음 보는 신기한 간식도 한 입씩 맛보고, 어느 사원 입구의 지압 자갈길에서는 맨발로 왔다 갔다 하며 아이들 스스로 신체 건강을 확인하기도 했다.
여행 내내 한시도 떨어져 있지 않은 비아와 현이. 3년 만에 만난 아이들의 뒷모습에서 어색함은 고사하고 마치 삼십년지기 같은 아우라가 느껴진다.
어른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걸었기에 무슨 이야기를 하며 그렇게 즐거워했는지 다 알지는 못하지만, 아이들 나름의 인생사의 즐거움과 고충을 이야기하며 함께 걷지 않았을까?
이 멋스러운 소도시를 비아네는 우리와 함께 가려고 아껴두었다고 했다.
도쿄로 온 지 만 3년 동안 아껴두었던 이곳을 우리와 함께 해주었다.
다시 전철을 타고 밤이 되어서야 숙소로 돌아왔지만, 오늘은 어제처럼 도쿄의 빛나는 밤을 볼 체력은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내 몸은 이미 방전되어서 곧 꺼져버릴 것 같았다. 집 근처 덮밥집에서 텐동을 사고, 마트에서 초밥과 맥주를 사고, 한식당에서 김밥과 떡볶이를 사서 정신없이 먹고 마시고 이내 잠들어버렸다. 역시나 오늘도 역류성 식도염을 걱정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