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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홈스테이 호스트

게스트 말고 호스트

by 권냥이
두근두근, 홈스테이 호스트


여행 유튜버 곽튜브를 좋아한다.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과 교감하며, 진심으로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대리만족감이 든다고 할까.

얼마 전 그의 영상에서 일본의 홋카이도의 한 어학원을 다니며 일주일간 일본인 가정에서 홈스테이를 하는 영상을 보았다.

일본어는 잘 읽지 못해도 다년간의 애니 덕후질로 그는 기초 회화에는 별 무리가 없어 보였다. 그의 언어능력을 새삼 부러워하며, 나도 언젠가 아이들이 더 크면 저렇게 일본의 어느 가정집에서 홈스테이를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초등학생을 키우는 아이 엄마가 언어 교환을 하고 싶다고 타국에서 여러 날 홈스테이를 하러 가는 것은 사실 꿈같은 이야기다. 현재는 홈스테이는커녕, 일본 여행조차 계획이 없다. 그런데, 일본 방송을 보는 것이 매일의 습관이 되다 보니 이거 얻다 써먹어?

말하고 싶은데 (못한다) 말할 곳이 없다. (못하잖아!)


나도 열심히 공부한 일본어를 써먹고 싶은데, 써먹을 곳이 없어서 고민하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홈스테이 게스트가 되지 못한다면, 호스트가 되어보자!

(꾸준함은 좀 부족해도) 추진력은 꽤 좋은 편인 나다.

당장 한국에 있는 홈스테이 관련 업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역시 있었다!

홈스테이 호스트를 처음 해보는 나에게 부담스럽지 않은 딱 1박 2일의 일본인 홈스테이 공고였다.

사실 그 이상의 시간이었다면 도전해 볼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공동주택에 살면서 장기간의 홈스테이를 한다는 것은 아랫집에도 여러모로 민폐가 아니겠는가.


일본인과 교류도 하고, 한국 문화도 알려주기엔 턱없이 짧은 시간이지만, 홈스테이 호스트를 처음 해보는 나에겐 1박 2일이 딱 적당했다. 홈스테이 업체에 구글 폼으로 신청서를 작성해서 제출하고 두근두근 결과를 기다렸다. 곧 업체 담당자로부터 전화가 왔고, 며칠 뒤 집을 답사하러 오겠다고 했다.

홈스테이 집을 선정할 때 다른 업체에서는 집 내부 사진을 호스트가 찍어 보내기도 하던데, 이곳은 직접 집으로 찾아와서 다음 일정 숙소까지의 거리나 집안의 분위기나 상태 등을 모두 꼼꼼히 체크하는 듯했다.

안 그래도 집안 꼴이 엉망이었는데 잘되었다 싶다. 대청소를 할 기회다.

홈스테이 직원들이 집에 오는 날, 아침부터 열심히 청소를 하고 맞이했다.

사실 우리 집이 명동, 종로 등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서울의 관광지에서 가까운 곳도 아니고, 그냥 주거지 밀집 지역이라 혹시 위치 때문에 까이지는 않을까 내심 걱정했지만, 다행히 그들의 기준에 합격되었다. (이쯤 되면 신청자가 별로 없었을 거라는 합리적 의심)


이번 홈스테이는 일본 고등학교 교원 단체에서 한국 학교와의 학술 교류를 위해 온 행사로, 우리 집에 배정될 일본인은 20~30대 정도의 젊은 여자 선생님 두 분이라고 했다.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고 여름방학은 정신없이 지나 한 달의 시간이 흘러 드디어 일본인들이 우리 집에 오는 날이 되었다.

홈스테이를 하러 오는 날짜는 8월 말.

아이들의 여름방학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간 첫 번째 주였다.

천하 태평하던 나도 그 주부터는 마음이 불안하고 두근두근 대기 시작했다.

아니, 어쩌자고 외국인을 집에 들이려고 한 거지?

고작 1년 남짓 외국어 공부한 걸로 홈스테이 호스트라니, 무슨 자신감인가?

게스트와 만나는 장소(송파 소재의 한 초등학교)로 차로 픽업도 가야 하는데 내부 세차는커녕 외부도 먼지투성이잖아. 집안 꼴은 또 왜 이러나. 대청소한 게 대체 언제인지 생각해 보았지만,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결단을 내렸다.

이번 주는 <외국인 방문 기념 대청소 주간>이다. 주야장천 청소만 하는 거다!

이 기회에 팬트리도 다 엎어버리자며 하루 날 잡고 버리고 또 버렸다.

가끔 집에 손님이 올 필요는 있다. 안 그러면 못 버리는 병이 낫지 않는다.


일본인들에게 2층 침대가 있는 우리 아이들 방을 내어주기로 했다.

아이들 코피 자국을 비롯해 각종 얼룩이 묻어있는 6년 된 공룡 매트리스 커버와 이불도 이 기회에 치워버렸다.

심플한 네이비 단색 이불 세트를 구입해서 깨끗하게 세탁하고 세팅을 했다.

아이들 옷이 잔뜩 걸려있던 옷걸이의 옷들도 다 비워내고, 게스트들이 옷을 걸 수 있도록 준비했고,

수건과 새로 구입한 샤워볼도 방에 비치했다.

그리고 A4 한 장 짜리 분량의 웰컴 안내문을 작성했다.

호텔이나 게스트 하우스 등에서 볼 수 있는, 각종 유의 사항과 와이파이 정보 등이 담겨있는 내용의 안내문.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외국인들이 궁금해할 내용들을 적어서 정리했다.

대략 내용은 아래와 같다.



환영 안내문 (한국어 & 일본어)

우리 집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1. 화장실

게스트 두 분이서 편하게 쓰세요.

우리 가족은 안방 화장실을 사용합니다.

화장실 휴지는 변기에 버려주세요.

물티슈나 다른 용품은 쓰레기통에 넣어주세요.

トイレはゲストお二人で自由にお使いください。

私たち家族は寝室のトイレを使います。

トイレットペーパーは便器に流してください。

ウェットティッシュやその他のものはゴミ箱に捨ててください。


2. 수건 & 세면도구

수건, 칫솔, 치약은 방 안 바구니에 준비되어 있습니다.

여분 수건은 화장실 선반 안에 있습니다.

タオル、歯ブラシ、歯磨き粉は部屋のかごに用意してあります。

予備のタオルはトイレの棚にあります。


3. 세탁

세탁이 필요하시면 말씀해주세요.

洗濯が必要な場合は声をかけてください。


4. 산책

동네 산책을 원하시면 말씀해주세요.

올리브영, 다이소 등이 도보 가능한 거리에 있습니다.

近所を散歩したい場合は声をかけてください。

オリーブヤング、ダイソーなどは徒歩で行ける距離にあります。


5. 식사

아침 식사는 9시에 한국 음식을 함께 만들 예정입니다.

朝ごはんは9時に韓国料理を一緒に作る予定です。


6. 기타

편하게 지내세요. 집처럼 사용하시면 됩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말씀해주세요.

どうぞご自由に、家のようにくつろいでください。

何か必要なものがあれば、いつでも声をかけてください。


7. 와이파이 비밀번호

Wi-Fiパスワード: __________



이 중 가장 중요한 건 7번. 와이파이 비밀번호가 아니었을까.

어쨌든, 그날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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