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스테이 호스트 신청을 하고 어느덧 한 달의 시간이 흘러, 드디어 후쿠오카에서 온 나나세상과 야마나시현에서 온 쿠미상을 만나는 날이 되었다.
여름더위가 아직 가시지 않은 햇살이 뜨거운 8월 말, 오랜만에 깨끗히 세차한 차를 끌고 미팅 장소로 향했다.
오늘 만나게 된 둘에 대해서는 나이와 성별, 출신지, 기본적인 정보(알러지 있는 음식이 있는지 등)만 받은 상태였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이 우리집에 오게 될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게스트의 성별 뿐이었는데, 나는 한치의 고민 없이 여성분들 택했다.
가와이~ 스고이~ 오이시~ 같은 호스트를 춤추게 할 리액션을 해주지 않을까 기대하며.
송파 소재의 한 초등학교 대강당이 오늘의 만남의 장소였다.
일본과 한국의 학술교류 행사가 한 초등학교 대강당에서 진행되었고, 행사를 마친 후 진행 요원이 호스트와 게스트를 짝지어 호명하면 각자 홈스테이할 집으로 가는 시스템이었다.
생면부지 초면인 그들은 호명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어색한 채로 강당을 빠져나와서 각자의 집으로 간다.
생각보다 행사 시간이 길어진대다 거의 모든 이들이 짝지어 나간 후 마지막으로 이름이 호명당해 한참이 지난 후에야 그녀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렇게, 귀여운 그녀들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인 나나세상과 역시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인 쿠미상은 이번 학술 교류를 통해 처음 만난 사이다.
후쿠오카는 워낙 한국인들이 많이 가는 유명한 관광지이고, 야마다현은 후지산이 있는 시골 마을로 와이너리가 유명한 곳이다. 이 두 곳은 꽤 거리가 멀다.
외국인인 나보다야 덜하겠지만, 그녀들도 어색하긴 마찬가지일터.
처음 만난 일본인 둘과 한국 아줌마 하나. 강당을 빠져나오며 무슨 말부터 해야하나 망설이고 있을 때, 그녀들이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라고 먼저 인사를 건네주었다.
나도 “하지메 마시데, 요로시쿠 오네가이시마스”(처음뵙겠습니다. 잘부탁드립니다.)로 일본어 첫걸음 교재 첫 페이지에 있는 대사들을 로봇처럼 읊어대기 시작했다.
각자의 캐리어는 교원 단체 차량에 두고 1박2일의 짐만 추려서 온다고 했는데 그녀들은 배낭에 크로스백에 쇼핑백에, 이고 지고 온 짐들이 꽤 많았다.
음, 뭐가 들었을까 잠시 궁금해하며 운전석엔 짐들을 싣고, 그녀들을 택시 손님들처럼 뒤에 태워 집으로 출발했다.
일본어를 공부했다고 하더라도 이건 순전히 책으로 배운건데, 정신이 운전대에 가 있으니 무슨 말을 해야할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녀들은 알수없는 빠른 일본어로 이야기를 나누었고, 중간 중간 신호가 걸려서 차가 잠시 섰을 때, 나에 대한 질문을 했다.
아이들이 몇 살인지, 초등학생인지 등등. 나중에 알고 보니 그녀들은 아이들을 위한 선물을 준비했었고, 준비한 선물에 맞는 연령대인지 확인했던 것 같다.
나는 뭐가 먹고 싶은지 뭐가 하고 싶은지 물어보았지만 어색함은 좀체 가시지 않았다. 빨리 집에 도착해서 나의 동시통역사 파파고를 켜놓고 자유롭게(!) 대화하고 싶은 맘이었다.
집에 도착해, 술과 커피를 하지 않는다는 그녀들을 위해 일본인들이 좋아한다는 (어디서 주워들은 정보인지는 모른다) 갈아만든 배를 한잔씩 내어주고,
이 어색함을 조금이나마 희석시키기 위해, 일본 여행 후에 만들었던 포토북을 주섬주섬 꺼내와 분위기를 환기 시켰다.
후쿠오카와 도쿄편 뿐이지만, 후쿠오카에서 온 나나세상은 사진들을 보며 장소들을 기가 막히게 맞추었다.
그녀들이 사진을 보며 수다를 떠는 틈에 나는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 저녁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일본인들에게 어떤 저녁을 대접해야할지 며칠을 고민했지만 역시나 평소 먹던대로 있는 그대로의 밥상을 준비하기로 했다.
라고 말해놓고 나는 그녀들이 오기 전 갈비찜, 잡채, 김치전, 육회 등 흡사 생일상에서나 볼 수 있는 음식들의 재료를 사두었다.
원래 치즈 닭갈비도 준비했는데, 쿠미상이 신라면 정도의 매운 음식을 전혀 먹지 못한다고 하여 닭갈비는 그녀들이 가고 난 후 우리 가족 뱃속으로 들어갔다.
핏물뺀 돼지갈비를 압력솥에 넣고 시판 돼지갈비 양념을 아낌없이 부어준다.
내가 만들어도 되지만 빠른 시간 안에 고기 양념 배게 하는 건 시판 양념이 최고다.
마트 반찬코너에서 산 잡채에 야채와 양념, 들기름을 좀 더 추가 한 후에 마구 볶아준다.
육회는 뭐 동봉된 소스만 잘 버무려주면 끝!
김치는 혹시 매울 수도 있으니 양념을 씻은 후에 김치전으로 만들었다.
사골곰탕에 조랭이 떡을 넣어서 떡국도 끓였다.
그녀들은 모든 음식들을 정말 맛있게 먹어주었다.
그녀들이 기가막히다고 한 돼지갈비 양념은 시판양념이었고,
먹어본 잡채 중에 가장 맛있었다고 무려 “인생잡채” 라고 이야기 해준 잡채는 반찬코너 잡채가 베이스였는데,
그녀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 내가 만든 줄 알고 폭풍 리액션을 해주었다.
역시 포토북으로 시선을 돌린 후 안볼 때 만들길 잘했다.
오이시~ 스고이~ 실컷 들은 모두가 행복한 저녁 식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