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는 패배감 속에서 런던을 걷다

City of London

by 신재현


런던의 오피스가를 걸어간다.


저런 곳에서 일하려면 어떤 스펙을 가지고 있어야 할까.


차가운 금속과 유리로 이루어진 오피스들의 일원이 되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마치 태어나자마자 호그와트 입학 리스트에 오르는 마법사처럼. 내가 바꿀 수도, 정할 수도 없노라고 생각한다.


커튼월로 매끄럽게 곡선을 이루는 건물. 휘황찬란한 햇빛 아래 건물 안의 일원들이 보인다. 런던 한복판에 위치한 이런 건물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사람일지 짐작이 간다. 지금 부는 바람이 너무나도 강해서 로비의 회전문이 움직일 것 같지만, 가느다란 금속과 얇아 보이는 유리로 이루어진 높은 회전문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런 건물이 대개 그러하듯이, 회전문 너머 로비에 붉은 넥타이와 양복을 갖춰 입은 경비원이 허공 너머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그 뒤엔 차가운 리셉션과 은빛 금속으로 이루어진 허리 높이의 출입문 게이트가 보인다.


후드티와 바람막이를 입고 이스트팩 백팩을 멘 늙은이가 회전문을 밀고 걸어 들어간다면, 리셉션까지 갈 필요도 없이 경비원은 내 앞을 가로막고 Hello. Sir. May I help you?라고 정중한 체 묻겠지만, 나는 들어가지 않는다. 함정을 피해 가는 것이다.


저 멀리까지, 꼭대기까지 훤히 들여다보이는 창문 속 어딘가를 바라보며. 찬 바람 냄새를 맡으며.



나는 거리를 지나 트라팔가 광장으로 간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광장에서 다시 고뇌한다.


좋아. 이번엔 진짜 그럴듯한 것을 생각해 내자고. 이제 슬슬 깨달음을 얻고 여행 후 성공 계획을 짤 시간이야.


그러나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아무 생각도 안 든다.


대체 퇴사 후 여행을 떠난 다른 이들은 어떻게 깨달음을 얻었단 말인가? 특별히 다른 곳을 간 것 같지도 않은데. 내가 뭘 놓치고 있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어 그저 광장을 바라본다. 광장엔 해가 내리쬔다. 사람들은 사진을 찍고 어딘가로 걸어간다.



오늘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도 나와 같은 사람임을 이해하고,

기억하려는 것이 아닌 받아들이는 여행을 하고,

새로운 경험을 하고, 용기를 내고,

상처받을지라도 도전하고,

싫어하는 일이라도 필요하다면 하고,

혼자라는 것을 체감하고,

햇볕에 감사하고,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 것.

그게 내가 오늘 해야 하는 일이다.


내가 어떤 삶을 살든지 간에, 이 분수대와 청동 사자상과 기념비는 특별한 멸망이 있지 않는 이상 이곳에 서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확인하고자 수차례 이곳에 다시 방문했고, 이제는 그것을 안다.


그러나, 그러나,


은빛 손잡이와 대리석, 들어갈 수 없는 건물들. 차가운 금속제의 철문과 뾰족한 창살들. 토요일 아침에 하이드 파크로 산책 나온 사람들.


이것들을 부러워하지 않으려면 도대체 얼마만큼의 의지가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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