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발라드는 싫어!
"한 곡. 딱 한 곡만 더 녹음합시다." 프로듀서가 노래 하나를 추가하자고 주장했다. 애초에 앨범에 싣기로 계획한 노래들은 이미 다 만든 상태에서 성에 안 찼는지 느닷없이 고집을 부렸다. 김빠지고 귀찮은 일이었지만 신인인 신디 로퍼(Cyndi Lauper)는 프로듀서의 제안을 고분고분 따를 수밖에 없었다.
프로듀서는 신디에게 한때 같은 밴드에서 활동했던 롭 하이먼(Rob Hyman)을 창작 파트너로 소개해 줬다. 롭과 신디는 처음 만났음에도 대화가 잘 통했다. 얘기를 나누면서 비슷한 연애 경험도 찾았다. 둘은 옛 연인과 겪은 일을 공유하며 일사천리로 가사를 썼다.
멜로디도 뚝딱 뽑았다. 그런데 작업 분위기가 좋아서 기분이 들떠 있던 것이 해가 됐다. 가사는 애틋한 반면에 선율이 너무 활기찼다. 처음 의도한 발라드는 사라지고 생뚱맞게 통통 튀는 레게 노래가 나왔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롭과 신디는 노랫말에 어울릴 음을 새로 지었다.
재정비 끝에 완성한 '타임 애프터 타임'(Time After Time)>은 꽤 근사했다. 곡을 이끄는 키보드 연주는 잔잔했지만 단출한 구성으로 강한 흡인력을 냈다.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며 헌신을 다짐하는 내용은 구슬프면서 아름다웠다. 롭과 신디가 함께 부른 후렴은 연인의 대화 같아서 노래는 한층 서정적으로 느껴졌다.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타임 애프터 타임'은 1984년 세계 여러 나라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
사실 신디는 앨범 발매 직전에 '타임 애프터 타임'을 두고 음반 회사와 마찰을 빚었다. 회사는 '타임 애프터 타임'을 앨범의 첫 번째 싱글로 내기를 원했다. 회사의 판단과 달리 신디는 '타임 애프터 타임'을 먼저 선보이면 대중에게 영원히 발라드 가수로 기억될 것 같아서 걱정스러웠다. 다행히 매니저가 신디의 뜻을 지지해 준 덕에 '타임 애프터 타임'은 '걸스 저스트 워너 해브 펀'(Girls Just Wanna Have Fun)에 이어 두 번째 싱글로 나오게 됐다.
두 노래 모두 히트했지만 대중음악 매체들은 '타임 애프터 타임'을 더 좋게 보는 편이다. '타임 애프터 타임'은 '1980년대 최고의 발라드 중 하나', '틀림없는 걸작' 등의 찬사를 들었다. 바란 바는 아니었으나 신디는 발라드로도 음악계에 굵직한 자취를 남겼다.
월간 <좋은생각> 7월호 '듣고 싶은 노래'
https://www.youtube.com/watch?v=VdQY7BusJNU
원곡이 아닌 턱 앤드 패티(Tuck & Patti)의 리메이크 버전이었지만 영화 <써니>에 'Time After Time'을 삽입한 것은 굉장히 탁월한 선택이었다. 특히 오프닝 시퀀스. 노래의 첫 열여섯 마디가 성인 나미의 현재 상황, 그녀가 앞으로 겪을 일을 서정적으로 나타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사에 쓰인 단어 침대와 시계가 알람을 듣고 침대에서 일어나는 찰나의 배경 묘사까지 도왔다.
그나저나 신디 로퍼 아줌마는 음반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지만 노래들은 차트에 들지 못하고 있다. 음악적인 변신도 하는 편인데 주목을 못 받는다. 그녀의 성공 운은 딱 80년대까지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