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과 열정도 서려 있었다.
빠바바바바바밤~ 팡파르 같은 신시사이저 소리로 노래는 도입부부터 웅장함을 뽐냈다. 이어 등장하는 드럼 연주는 곡을 묵직하게 느껴지도록 했다. 몇 초 뒤 템포를 올려 빠르게 나아가는 진행을 통해 경쾌함도 내보였다. 마무리는 발라드 형식으로 꾸며서 독특함까지 갖췄다. 지루할 틈이 없었으며, 확실히 비범했다. 그룹 '무한궤도'는 리드 싱어 신해철이 만든 '그대에게'로 1988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거머쥐었다.
신해철에게 대학가요제 대상 수상은 설욕의 승리라 할 만했다. 신해철은 같은 해 여름 '아기천사'라는 그룹으로 MBC <강변가요제>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최종 예선에서 떨어지며 고배를 맛보고 말았다. 이때 불렀던 록 발라드 '기다림은 사랑의 시작이야'는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충분히 흔들지 못했다.
대학가요제 참가 지원서를 제출한 신해철은 심사위원들을 단번에 사로잡을 곡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여러 대의 신시사이저를 이용해 성대하고 화려한 전주를 완성했다. 또한 그해 열린 강변가요제에서 이상은의 '담다디'가 참가자들 사이에서 우승 후보로 점쳐지던 이상우의 '슬픈 그림 같은 사랑'을 제치고 대상을 받는 광경을 보면서 신나는 곡이 좋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대에게'는 전략적 연구의 산물이었다.
뚜렷한 계획은 세웠으나 제작 환경이 좋지 않았다. 평소 아버지는 아들이 음악을 하는 것을 극구 반대해 왔다. 집에 있던 악기를 내다 버릴 정도였다. 신해철은 아버지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멜로디언을 불면서 곡을 지었다. 음악에 대한 열정은 어려운 여건을 극복하는 동력이 됐다.
'그대에게'는 흥겨운 분위기, 충만한 원기 덕분에 축제 배경음악, 운동경기의 응원가로 두루 쓰이고 있다. 오랜 세월 여기저기서 꾸준히 울림으로써 한국인이 사랑하는 명곡 반열에 올랐다.
<강변가요제> 탈락은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아기천사로 불렀던 노래는 1990년에 출시된 신해철의 솔로 데뷔 음반에 수록돼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 노래가 바로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다. 강변가요제에서 입상해 가수로 데뷔했다면 '그대에게'는 만들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실패 덕에 길이 남을 명작이 탄생했다.
월간 <좋은생각> '듣고 싶은 노래' 2020년 8월호
https://www.youtube.com/watch?v=SVxiqGiLMCM&t=203s